더스쿠프 천태만상
2022년 겨울 vs 2023년 겨울
원가 부담에 노점들 문 닫자
지난해 ‘붕세권’ 신조어 등장
하지만 원재료 가격 여전히 높고
서민마저 고물가에 지갑 닫아
상인들 한숨도 갈수록 깊어져

“여기서 더 오르겠어?”라는 질문이 무색하게 먹거리 물가가 끝없이 오르고 있다. 붕어빵ㆍ호떡ㆍ어묵 등 길거리 간식도 예외는 아니다. 1000원을 내면 붕어빵 4~5개를 담아주던 후한 인심은 이제 추억이 됐다. 호떡 1개 가격은 1000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깊어지는 고물가 국면에 거리의 상인들은 인심을 줄였고, 서민들은 지갑을 닫았다. 절기(입동)보다 더 빠르게 찾아온 상인들의 겨울 속으로 더스쿠프가 들어가봤다.

서민들이 고물가에 지갑을 닫으면 상인들도 그만큼 힘겨워진다.[사진=뉴시스]
서민들이 고물가에 지갑을 닫으면 상인들도 그만큼 힘겨워진다.[사진=뉴시스]

고물가 영향으로 길거리 간식마저 하나둘 사라지자 2021년 ‘붕세권’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붕세권은 역세권이나 숲세권처럼 붕어빵 가게가 인근에 있는 지역을 뜻한다. 물가 상승의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붕어빵 노점을 하던 상인들이 장사를 접으면서 붕어빵이 귀한 대접을 받는 시대상이 고스란히 담긴 신조어였다.

지난겨울, 붕세권에서 만난 상인들은 “원재료 가격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입을 모았다. 치솟은 원재료 가격 탓에 남는 게 없다는 하소연이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물가는 이후로도 상승세를 멈추지 않았다. 지금 이대로라면 먹거리 물가는 올해도 5% 상승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3년 연속 5%대 물가상승률인 건데, 이런 고물가 기조는 상인과 서민 모두에게 버거울 수밖에 없다.

점점 겨울과 가까워지는 늦가을, 붕세권에 세 들어 사는 상인들을 만나 그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지난 3일 만난 오순임(가명)씨는 영등포구의 한 건물에 작은 공간을 얻어 붕어빵 장사를 하고 있다. 3.3㎡(약 1평) 남짓한 공간에서 그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쉴 새 없이 붕어빵을 굽는다. 

기자는 먼저 와 주문하고 있던 20대 청년 뒤로 줄을 섰다. “붕어빵 사먹으려고 일부러 현금을 준비해왔다”는 손님에게 오씨는 “계좌이체도 가능하다”며 붕어빵 굽던 손으로 벽에 적힌 계좌번호를 가리켰다. 이 가게에선 팥붕어빵이 3개에 1000원, 슈크림 붕어빵은 2개에 1000원이다. 3000원을 건넨 20대 손님에게 오씨는 팥붕어빵을 안겨줬다.

오씨는 이번 겨울장사를 시작하며 가격을 올렸다. 지난겨울까지만 해도 1000원에 팥붕어빵 4개를 팔았지만, 거기서 한개를 줄였다. 올린 가격마저도 다른 붕어빵 가격에 비하면 충분히 저렴한 가격이지만 오씨는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사실 지난해부터 주변에서 ‘가격을 올려야 하지 않느냐’는 얘길 많이 했어요. 하지만 겨울장사를 시작했을 때라 중간에 올리는 게 내키지 않아 계속 같은 가격에 팔았죠.”

하지만 올해까지 가격을 동결하자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밀가루뿐만 아니라 모든 게 다 올랐어요. 요새 안 오른 게 있어야죠.” 오씨는 결국 올겨울 장사를 시작하면서 가격 인상을 결정했다. “가격을 올렸는데도 마진은 예전보다 박하네요.”

영등포구의 또 다른 붕어빵 상인 최연아(가명)씨도 올해 가격을 올렸다. 지난해 2개에 1000원 하던 붕어빵을 올해는 3개 20 00원으로 올린 거다. “전기요금, 가스요금, 재료비까지 안 오른 게 있나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인지 물가가 끊임없이 오르네요.” 붕어빵 틀에 반죽을 붓던 최씨가 말을 이었다. “여기는 주택가이기도 하지만 초등학교 옆이라 아이들 손님이 많아요. 학교 끝난 아이들이 지갑에서 꼬깃꼬깃한 돈을 꺼내 간식을 사 먹으러 오는데, 그런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하죠.”

꼬마 손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최씨가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었던 건 그만큼 원재룟값이 올라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붕어빵 반죽에 쓰이는 밀가루 가격은 지난해 1분기부터 두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38.8%)와 4분기(33.3%)엔 30% 이상 치솟았다. 올해 2분기(9.7%) 다시 한 자릿수를 회복하고 3분기(0.5%)엔 안정궤도에 접어들었지만 그동안 오른 물가 탓에 가격을 인상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어디 밀가루뿐이랴. 붕어빵의 또 다른 재료인 붉은팥 가격도 올랐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3일 기준, 수입 붉은팥 40㎏의 도매가격은 27만4400원이었다. 평년(5년간 해당일의 최곳값과 최솟값을 제외한 3년 평균값) 가격 20만6100원보다 33.1%나 치솟았다. 오씨와 최씨가 지난해보다 붕어빵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일까. 최근엔 “차라리 집에서 만들어 먹겠다”며 홈베이킹에 나서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그와 관련한 붕어빵기계(틀)와 홈베이킹 재료도 온라인상에 많이 등장한다. 주부 하민지씨도 붕세권을 검색하다 홈베이킹으로 붕어빵을 만들어 먹는단 글을 보고 곧장 재료를 구매했다.

“집 근처에 치즈ㆍ피자붕어빵을 파는 노점이 있었어요. 1개에 1000원이라 다소 비싸긴 했지만 그래도 가까워서 종종 가곤 했는데 올해는 아예 보이질 않네요. 이것저것 재료 장만하느라 돈이 좀 들긴 했지만 올겨울 내내 먹을 생각을 하면 사먹는 것보단 가성비 측면에서 나을 거 같아요.”

길거리 간식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사진=뉴시스]
길거리 간식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사진=뉴시스]

손님들이 지갑을 닫으면 상인들은 그만큼 힘겨워질 수밖에 없다. 중랑구 한 전통시장에서 호떡을 굽는 김정애(가명)씨. 그는 얼마 전 이 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품목은 두 종류의 어묵(小 700원, 大 1300원)과 호떡(1300원)으로 단출하다.

반죽기계에서 동그랗게 빚어 나온 반죽을 뜨겁게 달궈진 철판에 올리던 그에게 중년의 손님이 “호떡 한 개에 얼마냐”고 물었다. “1300원이요.” “얼마요? 1300원?” 손님이 잘못 들었다는 듯이 재차 묻자 김씨가 작은 목소리로 가격을 다시 알려줬다. 그러자 양손 가득 들고 있던 짐을 내려놓으려던 손님이 슬그머니 인파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게 차리려고 일부러 호떡 만드는 기술을 배웠어요. 그런데 지금 이 시국에 장사를 하는 게 맞나 싶어요. 물가가 비싸니 손님들이 지갑을 안 열잖아요.” 시장 안에 염원하던 가게를 냈지만 종업원까지 둘 여력은 없었던 김씨는 그 대신 일손을 덜어줄 자동반죽기계를 장만했다. 그런 속 타는 김씨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들은 그의 가게 앞을 무심히 지나쳤고, 반죽기계는 뽀얗고 동그란 반죽을 자꾸만 토해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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