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대교 아래를 지나는 울돌목의 물결은 오늘도 사납습니다. 울돌목에서 펼쳐진 명량해전 당일 이순신의 기록을 지난호에 이어 소개합니다. 2척의 배가 먼저 교전하고 있을 때 적장이 탄 배가 그 휘하麾下의 배 2척에 지령하니, 일시에 안위의 배에 개미처럼 달라붙어서 기어가며 다퉈 올라갔다. 이에 안위와 그 배에 탄 군사들이 각기 죽을 힘을 다해서 또는 능장稜杖, 몽둥이를 잡고 혹은 긴 창을 잡고 혹은 수마석水磨石, 반들거리는 돌덩어리를 무수히 난격하였다.배 위의 군사들이 거의 힘이 다하자, 내 배가 뱃머리를 돌려 곧장 쳐들어가서 빗발치듯
명량은 아주 좁은 바닷길입니다. 이순신은 그 좁은 길목을 이용했습니다. 액션영화의 주인공이 벽을 등지고 싸우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삼국지에서 장비가 조조의 10만 대군을 장판교에서 막아낸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울돌목은 장판교이고, 이순신의 13척 함대는 장비가 되는 것입니다. 이순신이 선조 임금에게 장계를 올렸을 때에는 함대가 12척이었으나 이후 1척을 추가로 만들어 참전했습니다. 이순신이 죽기를 각오하고 길목을 막지 않았다면, 적군은 탁 트인 바다로 쏟아져 나왔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제아무리 천하의 이순신이라고 해도 극적인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군량입니다. 아무리 강력한 무기가 있어도 군량이 없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토의 70%가량이 산지입니다. 길도 제대로 나있지 않던 시절에 험한 산골과 깊은 강을 건너 자원을 수송하는 것은 엄청난 고역이었습니다. 고생은 둘째 치고 너무 비효율적이었죠. 배에 실어서 바다로 운송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습니다.이순신 해전의 중요성은 여기에 있습니다. 임진왜란 초기에 승리를 거듭하던 왜군은 조선군이 아니라 물자의 부족 때문에 발이 묶이기 시작 했습니다. 이순신의 수군이 바다를 틀어막고 있어
공자의 가르침인 ‘효’는 시간이 지나면서 권위적이고 위선적인 억압으로 변질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순신은 달랐습니다. 그의 애틋한 효심과 가족애愛는 백성들과 부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확장됐습니다. 「난중일기」나 「이충무공전서」에는 하루살이 같은 백성들의 삶을 걱정하고, 백성들을 괴롭히는 관리들을 단호하게 처벌하는 이순신의 모습들로 가득합니다. 그의 사랑은 군주와 국가를 향한 충성심으로도 이어졌습니다.어머니를 모시고 같이 한살을 더하게 되니, 이는 난리 중에서도 다행한 일이다. 늦게 군사 훈련과 전쟁 준비로 본영으로 돌아오는데, 비
[뉴스페이퍼 = 정근우 기자] 해남은 땅끝이라는 수식때문이라도 한 번쯤 가보고 싶어지는 곳이다. 말 그대로 땅끝, 한반도 서남단에 위치해 손쉽게 닿을 거리는 아니어도, 꾸준히 여행객의 발길이 향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막상 떠나보면 해남은 그리 멀기만 한 곳은 아니다. 서울에서 나주까지 개통한 고속철도를 이용하면, 나주에서 해남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더해 3시간가량 소요된다. 부지런히 움직이면 당일치기 여행도 가능한 일정이 나온다.이처럼 한층 가까워진 해남은 즐길 거리도 전보다 풍부해졌다. 해남을 대표하는
영화 ‘명량’을 보노라면 어쩔 수 없이 영웅전을 읽는 느낌이다. 그것이 로마의 ‘플루타르크 영웅전’이든 요즘의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의 성공신화든 ‘영웅전’의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20대 80의 법칙’으로 유명한 ‘파레토의 법칙(Pareto’s Law)’이 떠오른다.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는 ‘
1597년 울돌목鬱陶項으로 해선 300척이 집결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이순신이 전라좌수영 참모회의를 소집한다. 같은 해 칠천량漆川梁 해전에서 대패해 달랑 12척의 배만 남긴 배설裵楔 장군은 어마무시한 왜적에 대항해 “그래도 나니까 12척이나마 건졌다”면서 이 싸움의 무모함을 설파한다. 배설 장군이 칠천량 해전에서 ‘12척이나’ 건져왔는지 ‘12척밖에’ 못 건
조선 함대와 일본 함대의 전투가 격해질 무렵 조수가 썰물로 돌아서고 있었다. 조선 함대는 물을 따라 싸우고, 일본 함대는 물세를 거슬러 싸워야 했다. 조선 함대는 쏜살같이 적선으로 향했지만 일본 함대는 아무리 힘껏 저어도 그 자리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명량해전의 승기가 조선 쪽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안위의 배와 김응함의 배는 새로운 용기를 발휘했다. 조총ㆍ
이순신은 자기의 장졸들이 당황하고 겁을 내어 모두 안색이 새파랗게 변하는 것을 돌아보며 또 한 번 명령을 내렸다. “적선이 1000척이라도 내 배 하나를 어찌하지 못하리라. 너희들은 동요하지 말고 힘껏 싸우라.” 그후 배에 초요기招搖旗를 높이 달아 뒤에 떨어진 제장선들을 불렀다. 제장들이 주춤하자 이순신은 혼자서 당당한 기세를 지으면서 명량목의 우수영 쪽의
이순신은 칼을 빼어 들고 배설 이하 제장에게 적선을 맞아 싸울 것을 명하고 스스로 선봉에 섰다. 탄우와 포연을 무릅쓰고 적진을 향하여 포를 쏘며 돌진을 하였던 거다. 순신의 장령을 어기지 못한 배설도 대장선의 뒤를 따라 진격하였다. 명량대첩, 그 서막이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이순신은 드디어 칼을 빼어 들었다. “진군하라.” 이순신의 명령이 떨어지자 모두
배설은 자기의 병선도 군사도 돌아보지 않고 단기로 도주하였다. 배설의 도주는 삼군의 장졸에게 큰 불안을 주었다. 새로 온 전라우수사 김억추까지도 무예는 있다 하나 아직 연소하고 전장의 경험과 학식이 전임 이억기에게는 비교가 되지 못한다. 위태롭구나, 백암 이장군이여! 삼도통제사라는 이름뿐이요, 병선이 있나 군량이 있나 군사가 있나 군기가 갖추어졌나. 나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