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남양유업방지법, 핵심조항 우수수 껍데기만 남았다
[심층분석] 남양유업방지법, 핵심조항 우수수 껍데기만 남았다
  • 김다린 기자
  • 호수 170
  • 승인 2015.12.16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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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방지법 국회 통과했지만…

▲ 2013년 5월,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폭언이 담긴 녹취파일이 공개되자 국민들은 공분을 쏟아냈다.[사진=뉴시스]
2년 넘게 잠들어 있던 남양유업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야당은 “쾌거”라며 자축하고 있다. 하지만 대리점주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제조사인 갑甲의 횡포를 막기에는 핵심조항이 우수수 누락됐기 때문이다. 남양유업방지법,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이 법의 빈틈을 찾아봤다.

12월 2일. 일명 남양유업방지법(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국회 정무위원회(정무위)를 통과했다. 정무위는 이날 오후 법안심사소위와 전체회의를 열고 해당 법안을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겼다.

남양유업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한 배경에는 여야 원내지도부의 합의가 있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요구하는 남양유업 방지법과 새누리당이 요구하는 학교 앞 호텔법(관광진흥법)을 주고받은 것이다. 여론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던 남양유업방지법은 이런 ‘굴욕적인 트레이드’ 과정을 통해 빛을 본 셈이다.

남양유업방지법이 발의된 시기는 2013년 5월. 전국이 대기업의 갑甲질 논란으로 시끌벅적했던 때다. 남양유업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폭언을 하면서 ‘물량 밀어내기’를 한 녹취파일이 인터넷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갑질에 분노한 국민들은 공분을 쏟아냈다. 개선과 처벌 요구도 빗발쳤다.

갑의 횡포가 정말 사라질까

하지만 우리나라 법은 제조사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처벌할 수 없었다. 대리점 거래는 사적私的 계약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등은 대리점 거래의 문제점을 보호하지 못했다. 제조사가 대리점주에게 맘놓고 갑질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회에서 2년 넘게 낮잠을 자던 남양유업방지법이 통과되자 야당은 성대하게 자축했다. 우원식(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을지로위원회의 제1호 법안인 남양유업방지법이 통과됐다”며 “이 법은 우리 사회 경제민주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고 자찬했다. 언론 역시 갑의 횡포가 근절됐다며 법안 통과 소식을 중요한 뉴스로 다뤘다.

하지만 남양유업방지법이 빛을 보는 데 걸린 ‘2년’이라는 시간이 분위기를 바꿔놨다. 남양유업의 갑질 사건의 불똥이 자신들에게 튈까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제조업체들이 대놓고 불편한 심기를 표시한다. 특히 식품ㆍ화장품 등 대리점에 물건을 공급하는 제조업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익명을 요구한 제조업체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대리점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 제조사는 직영점이나 다른 유통채널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이 법 때문에 대리점 시장 전체가 위축되는 역효과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남양유업법이 규정한 처벌 수위가 높다보니, 제조사들이 대리점을 아예 멀리 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남양유업법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명문화했다. 이 제도에 따르면 물량 밀어내기, 영업비용 전가 등 불공정거래로 대리점이 피해를 입을 경우 제조사는 피해 금액의 최대 3배를 배상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우는 소리’에 불과하다. 2년 전만 해도 ‘입 밖에 꺼내기 힘든’ 이야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리점주ㆍ시민단체ㆍ전문가들이 핵심조항으로 요구한 것 가운데 유일하게 이 법에 적용된 내용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이기 때문이다. 익명을 원한 대리점주는 “제조사들이 이 조항에 불만을 갖는 건 ‘남양유업법’ 자체를 없애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남양유업방지법의 또 다른 핵심조항인 ‘대리점주 단체 결성권ㆍ교섭권’ ‘계약갱신 보장권’은 법안 논의 과정에서 쏙 빠졌다. 이 때문에 ‘을의 지위’를 보장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실패했다.

특히 대리점주의 단체결성권의 누락은 아쉽다. 단체결성권이 대리점주를 보호하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한 대리점주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보통 제조사는 지역별로 대리점을 둔다. 대리점별로 거리가 떨어져 있기 때문에 대리점주끼리의 소통이 어렵다. 제조사와 불공정한 거래를 하더라도 대리점주들이 갑의 횡포로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다. 단체결성권이 있으면 제조사에 한목소리를 낼 수 있어 갑의 횡포를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또 다른 대리점주는 “우리나라 제조사는 각 대리점주를 동등한 지위의 사업 파트너로 보지 않는다”면서 “대리점주에게는 제조사와 소통할 권리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단체결성권이 필요했다”고 꼬집었다.

이동주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정책실장은 “문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후진적 유통문화”라며 “손해배상은 강제력이 없는 고시로 제정해도 좋으니 대리점주들이 제조사와 소통할 수 있게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정작 법은 거꾸로 됐다”고 토로했다.

막혀있는 소통의 길

계약갱신 요청권이 빠진 것도 문제다. 제조사들이 계약갱신을 무기로 대리점주에게 부당한 거래를 요구하는 관행을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2일 발표된 서울시 ‘대리점 불공정거래행위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리점주 687명 중 20.1%에 이르는 138명이 재계약시 ‘갱신거절’이나 ‘해지위협’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박경준 변호사(법무법인 인의)는 “불공정한 갑을 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을의 지위를 높여주는 것”이라며 “처벌만으로는 불공정거래 행위를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사전적으로 불공정거래 행위가 개입되지 못하도록 제도를 정비할 필요성이 있다는 거다.

박경준 변호사는 “가맹점법 역시 가맹점주들의 자살 사건이 뉴스로 보도된 후에야 개정안이 발의됐다”며 “완전한 의미의 남양유업방지법이 언제쯤 만들어질지 알 수 없다”고 꼬집었다. 2년 넘게 국회에서 낮잠을 자던 남양유업방지법은 껍데기만 남았다. 더 큰 문제는 이 법을 보완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는 점이다. 야당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 대리점주는 아직 사각지대에 서 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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