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 경제공약 분석해보니…

일자리는 없고, 가계빚은 산더미다. 낙수효과는 실종됐고, 시장은 여전히 불공정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등장한 경제민주화 역시 후퇴한 지 오래다. 갑을 논란도 여전하다. 이런 상황에 발을 맞추지 않으면 표를 받지 못한다는 불안감 때문인지 여야 정치권은 20대 총선 포커스를 ‘경제’에 맞췄다. 하지만 공약은 공허했다.

▲ 총선 경제공약들이 각 정당의 지향점과 기조를 담고 있는지 의문이다.[사진=아이클릭아트]
‘4년’은 도도하게 흘렀고, 또다시 총선이 왔다.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공천으로 전선戰線이 흐트러지긴 했지만 이번 총선의 정체성은 확실하다. 바로 ‘경제’다. 유례없는 불황으로 정부도, 기업도, 가계도 힘겨운 시절을 보내고 있어서다.

지난 2015년 기준으로 가계부채는 1207조원(한국은행)에 달하고, 청년실업률은 평균실업률 3.6%보다 2.5배 더 높은 9.2% (고용노동부)다.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87. 9%(전경련은 76.2%)가 일하는 것으로 알려진 중소기업의 월평균 임금은 311만원으로 대기업 501만원의 62.1%(고용노동부)에 불과했다.

삼성ㆍ현대ㆍLG 3대 그룹의 자산은 895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60%(공정거래위원회)를 차지했다. 사회갈등지수는 1,043(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1년 기준)로 OECD 국가 중 다섯 번째로 높다. 4년 전과 별반 다를 것 없이 국민들의 삶은 힘겹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여야 정치권은 늘 그랬듯 ‘남탓 공방’만 벌이고 있다. ‘경제가 망가진 건 네 탓’이라면서 핏대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지난 1월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회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발언한 이후, 줄기차게 ‘발목론’을 내세우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선거 첫날인 3월 31일 출정식에서 “발목을 잡는 정당과 미래와 희망을 만드는 정당의 차이가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잘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민생족쇄정당’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반면 야당은 이미 올해 초부터 ‘경제심판론’을 앞세우고 있다. 그러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지난 3월 31일 선거운동 시작과 함께 “새누리당 정권의 ‘잃어버린 8년’을 끝내지 않으면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이 될 수도 있다”면서 “경제를 망친 새누리당을 확실히 심판하고 국민에게 삶의 희망을 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은 야당 탓만 하고 있고 새누리당은 집안싸움만 하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더 많은 의석을 달라고 하는데, 이제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책임론’은 20대 총선 공약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총선 무대에 올라선 주요 정당들은 이구동성으로 ‘침체된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어 민생을 안정화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중점 공약으로 ‘내수산업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 ‘미래성장동력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 ‘국민 맞춤형 일자리 창출’ 등을 내걸었다. 한마디로 산업을 키워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거다. ‘가계 부담 낮추기’ ‘사교육비 경감’ ‘주거 안정 도모’ ‘소상공인 지원’ ‘서민금융 보호’ 등 다소 뻔해 보이는 공약도 내세웠다.

공약의 핵심은 경제살리기

더불어민주당은 우선순위가 달라지기는 했지만 ‘청년을 위한 더 좋은 일자리 창출’ ‘경제민주화 실현’ ‘저소득ㆍ저신용자를 위한 가계부채 대책 마련’ ‘국민통합을 위한 한국형 복지국가 실현’ ‘777플랜을 통한 양극화 해소’ 등을 10대 공약에 넣었다. ‘777플랜’은 현재 60%대에 머물러 있는 국민총소득(GNI) 대비 가계소득 비중과 노동자(자영업자 포함)의 노동소득분배율을 70%까지 끌어올리고, 중산층(중위소득의 50~150%) 비중도 1997년 외환위기 이전 수준인 70%대로 복원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0대 공약을 경제ㆍ정치ㆍ복지 등 큰 카테고리로 묶고 세부항목을 별도로 설정한 국민의당 역시 1순위는 ‘경제’다. ‘불공정한 경제구조 탈피와 미래형 신성장산업 육성을 통한 미래먹거리 준비’라는 경제공약의 세부사항에는 ‘불공정거래 타파’ ‘이익공유제 도입’ ‘신성장산업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 등이 포함돼 있다.

정의당은 ‘내 월급이 오르는 경제’ ‘내 일자리가 좋아지는 경제’ ‘을 살리는 경제민주화 실현’ ‘OECD 평균복지국가 달성’ 등을 우선순위 상위에 올렸다. 타 정당들이 산업을 일으키는 데 반해 국민 소득구조에 변화를 주는 게 대부분이다. 세부내용에는  최저시급 1만원 이상 실현, 평균월급 300만원 실현, 대기업 임원 임금상한제, 대기업 초과이익 공유제, 골목상권 살리기, 정리해고 요건 강화, 비정규직 사용제한, 노동기본권 보장 등이 담겨 있다.

이처럼 주요 정당의 경제공약들은 대동소이하다. 양극화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불공평한 시장을 어떻게 공정하게 만들 것인지, 어떤 일자리를 어떻게 늘릴 것인지 방법론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문제는 여야 정치권이 이번 총선을 ‘경제 싸움’으로 규정한 것치곤 공약이 뻔하고, 얄팍하며, 공허하다는 점이다. 심지어 공약의 실천 비용을 산출하지 않은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일단 던져 놓고 뒷수습은 나중에 하겠다는 여야 정치권의 속내가 뻔히 읽힐 정도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는 “가계부채와 같은 위험요소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관리할 것인지, 성장과 분배를 어떻게 조화시켜 국민의 삶을 개선할 것인지가 핵심 문제라는 걸 누구든 모를 리 없다”면서 이렇게 꼬집었다.

엑기스 공약으로 실천해야

“각 정당은 어떤 지향점과 기조를 갖고 있는지를 공약으로 전달해야 하는데 대부분 정책적인 이슈에만 머물러 있다. 이념적 구호를 내세워야 한다는 게 아니다. 실생활과 관련돼 있으면서도 정당의 기조를 드러낼 수 있는 장기적인 공약을 제시하고, 국민에게 전달해서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다. 그런 걸 많이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정당 공약들의 문제다.” 쉽게 말해 정당의 기조가 담겨 있으면서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실생활 공약들을 제시하고, 그것들이 국민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확인시켜주는 정당들이 많지 않다는 지적이다.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팀장은 “각 당의 공천 과정이 원만하게 진행되지 못하면서 공약이 늦게 나왔다”면서 “그러다보니 공약들이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있는 것은 물론 체계적이지도 않고, 실현 가능성 측면까지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공약들도 많다”고 지적했다. 권 팀장은 “아직 구체적으로 공약을 더 분석해봐야 하겠지만 실현 가능한 것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면서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그칠수록 국민의 관심은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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