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에 맞서는 과학」
참사에 대응해 온…
가장 강력한 연대체

2023년 10월 말까지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신고한 7877명 중 확인된 사망자만 1835명에 달한다.[사진=연합뉴스]
2023년 10월 말까지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신고한 7877명 중 확인된 사망자만 1835명에 달한다.[사진=연합뉴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장기간 피해가 확산한 일종의 ‘느린 재난’이다. 1994년 출시된 가습기살균제는 1000만개 가까이 판매됐다. ‘가정의 청결과 건강을 관리한다’는 이 제품은 2011년 원인불명의 폐 질환 사례가 수집되면서 전대미문의 환경재난을 부른 주범으로 지목됐다. 2023년 10월 말까지 피해를 신고한 7877명 중 확인된 사망자만 1835명에 달한다. 

「재난에 맞서는 과학」은 오랜 시간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연구해온 환경사회학 연구자 박진영이 정치와 과학이 부딪히는 장場에서 서서히 변화해 온 한국 사회를 이야기한다. 가습기살균제 개발을 준비하던 1990년대부터 2023년 현재까지의 과정을 훑어본다.

수많은 피해를 겪은 후 비로소 형성되는 지식이 있다. 사람이 다치고 병들고 나서야 만들어지는 약속들이다. 저자는 “가습기살균제의 위험성을 알리는 신호는 제품 출시 전에도, 사망자 발생 후로도 울렸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골든타임은 거듭 유예됐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원인을 이렇게 설명한다. 

“역학과 독성학 전문가의 의견이 갈렸으며, ‘가장 정확한 인과관계’를 밝히려는 절차는 계속 지연됐다. 기업은 거액의 연구비로 연구 결과를 조작하려 했고, 이 연구를 맡은 전문가는 자본과 결탁한 청부과학자로 비판받았다.”

하지만 이 답답한 경과만을 전부로 봐선 안 된다고 덧붙인다. 저자는 “참사 과정에는 피해자 가까이서 책임 있게 사건 해결에 나선 ‘다수의 참여하는 전문가’가 존재했다”고 말한다. 참사에 대응해 온 가장 강력한 연대체는 피해자와 시민단체, 전문가 사이에서 만들어졌다며, 완벽하지 않고 오래 걸렸지만 확실한 변화가 있었다고 강조한다.

7장으로 구성됐다. 1장에서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예고하는 경고 신호가 지난 세기부터 울리고 있었다고 말한다. 2장은 사건에 대응할 ‘골든타임’을 놓친 이유를 밝히고, 3장은 피해자와 시민사회, 전문가의 연대체가 과학 지식의 공백에 대처하는 과정을 소개한다.

4장은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구제 과정의 치명적 문제로 언급되는 ‘4단계 기준’의 세부 내용을 살피고, 5장에서는 문제의 실질적 해결의 주요 근거가 되는 법의 역할을 소개한다. 6장과 7장은 지금과 같은 재난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할 것인지, 과학적 사실과 법적 근거를 토대로 재난에 맞서는 과학의 모습을 그려본다. 

저자는 재난에 맞서는 과학이란 과학자 개인의 호기심이나 이해관계에 갇힌 과학이 아니라, 피해자들의 고통과 사회적 정의 차원에서 시작하는 과학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누구나 손 드는 과학’이라고 표현한다. 누구나 과학에 대해 손을 들고 말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세상에 알려진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저자는 “참사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는 약속의 목록은 ‘손을 들고 과학을 말하는’ 우리의 손으로 다시 작성된다”며, 차가운 과학이 아니라 정치와 뒤섞인 과학이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전문가들만의 과학이 아니라 피해자, 시민사회, 정부, 국회 모두의 과학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suujuu@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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