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자주 끊기는 초고속인터넷
원인 파악조차 쉽지 않아
지역 단위로 먹통 되기도
뒷짐 지고 보는 기업과 정부

# 현대인은 ‘인터넷과 한 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밤에 잠들기 전까지 스마트폰·PC를 통해 온라인 세상을 돌아다닙니다. 이런 인터넷이 갑자기 끊긴다면 무척 불편할 겁니다. 각종 업무는 물론이고 게임이나 OTT를 즐기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자영업자의 경우 하루 장사를 망칠지도 모릅니다.

# 문제는 ‘인터넷이 갑자기 끊긴다’며 불만을 표하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기자도 몇달 동안 인터넷이 간헐적으로 끊겨 큰 불편을 겪었습니다. 한국의 초고속인터넷,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더스쿠프가 초고속인터넷의 불편한 자화상을 짚어봤습니다.

최근 초고속인터넷 끊김 현상이 소비자 사이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최근 초고속인터넷 끊김 현상이 소비자 사이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인터넷 환경이 원활하지 않아 잠시 경기가 중단됐습니다. 시청자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 전해드립니다.” 2023년 12월 26일부터 30일까지 네이버의 인터넷 방송 플랫폼 ‘치지직’에서 e스포츠 대회 ‘자낳대(자본주의가 낳은 대회)’가 열렸습니다.

매년 수차례 열리는 이 대회는 평균 동시 시청자만 13만명(2023년 초 기준)으로 인터넷 방송 대회 중에선 규모가 가장 큽니다. 이번에도 수십만명의 팔로워를 가진 스트리머(인터넷 방송인·Streamer)들이 대거 참여해 누리꾼의 이목이 쏠렸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경기 중 몇몇 스트리머의 인터넷이 지속적으로 끊기는 바람에 경기가 수십 차례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진행을 맡은 MC와 캐스터들은 중단된 만큼의 시간을 멘트로 메우느라 진땀을 뺐고, 경기를 지켜보는 수만명의 시청자들도 불편함을 겪어야 했습니다. 한 스트리머는 경기 진행을 위해 택시를 타고 급하게 소속사 스튜디오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죠.

스트리머들이 특별한 인터넷 회선을 사용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유선 인터넷을 쓰고 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한 겁니다. 자, 이번 ‘자낳대 인터넷 끊김 사건’을 남의 일로 여기기엔 어딘가 찜찜한 기분이 들지 않나요? 맞습니다. 이같은 ‘인터넷 끊김 사태’는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누군가는 ‘인터넷이 잠깐 끊기는 게 뭐 그렇게 호들갑 떨 일이냐’고 되물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인터넷이 끊겼을 때 발생하는 피해는 생각보다 더 심각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여기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자영업자 A씨가 있습니다. 이 카페의 와이파이 서비스부터 카드 결제, 배달주문 접수 등은 모두 초고속인터넷을 통해 이뤄집니다.

그런데 인터넷이 간헐적으로 혹은 완전히 끊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와이파이가 끊기고 카드 결제가 되지 않아 매장 내 고객이 불편함을 겪는 것은 물론이고, 배달 주문을 제때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최근 치지직에서 열린 e스포츠 대회는 잦은 인터넷 끊김으로 인해 곤혹을 치렀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최근 치지직에서 열린 e스포츠 대회는 잦은 인터넷 끊김으로 인해 곤혹을 치렀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물론 통신사에 문의해 상담받거나 출장 기사를 불러서 문제를 해결할 순 있겠죠. 하지만 그러는 사이 영업이 사실상 불가능해져 최악의 경우엔 하루 장사를 망칠 수도 있습니다.

기자도 몇달 전 지속적인 인터넷 끊김 현상에 시달렸습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인터넷이 끊겨서 불편함을 겪었습니다. 무엇보다 답답한 건 기자의 상식만으론 인터넷이 왜 끊기는지를 파악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단 점입니다.

컴퓨터를 재부팅하고, 와이파이 공유기를 껐다 다시 켜고, 인터넷 선을 뺐다가 다시 꽂아 봐도 문제를 풀지 못했습니다. 인터넷에서 누리꾼들이 올려놓은 갖가지 해결 방법을 모조리 써 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죠. 통신사 AS센터에 문의해 인터넷 신호를 다시 받아봐도 끊김 현상은 계속됐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기자는 결국 1층에 있는 ‘공용단자함’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공용단자함은 세대별로 인터넷을 뿌려주는 역할을 하는데, 그중 기자의 집으로 인터넷을 배분하는 공유기가 문제가 있었던 겁니다. 출장 기사님을 불러 공유기를 새것으로 교체하고 나서야 인터넷 끊김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기자가 겪은 일은 무수히 많은 인터넷 끊김 사례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인터넷 연결이 자주 끊긴다’며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평소 인터넷이 자주 끊겨 출장기사만 10번 넘게 불렀다는 김석호(가명·26)씨는 “상담을 신청할 때마다 ‘해당 지역에서 과도한 다운로드가 발생해 트래픽 제한이 있었으니 지금 풀어주겠다’는 이상한 답변을 받았다”면서 “인터넷이 끊기는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답답했다”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아예 지역 단위로 인터넷이 ‘먹통’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2023년 11월 7일, 오후 3시 30분부터 경기 의정부와 고양의 일부 지역에서 LG유플러스 초고속인터넷 가입자들의 접속이 끊기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엔 “고객센터와 전화 연결도 되지 않았다”면서 불만을 표출하는 소비자들이 속출했습니다. 당시 LG유플러스는 “인터넷 주소인 IP를 할당해주는 장비가 오류가 나면서 일부 가입자의 유선 서비스가 장애가 일어났다”고 해명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문제는 이처럼 소비자들이 초고속인터넷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겪는 불편함이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익명을 원한 업계의 한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이통3사가 십수년째 초고속인터넷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다. 이 때문에 통신3사가 경쟁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서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는 작업을 알게 모르게 소홀히 하고 있다. 그것이 ‘인터넷 속도 저하’ ‘간헐적 인터넷 끊김’이란 악영향으로 이어지고 있는 거다.”

이 말은 과장이 아닙니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3사의 초고속인터넷 시장점유율은 90.9%(과학기술정보통신부·2023년 9월 기준)에 달합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점유율이 가능한 건 통신3사가 휴대전화 요금제 등과 결합해 할인해 주는 ‘결합상품’ 서비스로 소비자를 묶어두고 있어서입니다.

실실제로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2079만명 중 87.7%인 1825만명(2021년 기준)이 결합상품을 이용하고 있습니다(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당시 KISDI가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도 맥락이 같습니다. 총 988명이 ‘요금이 10% 올라도 그대로 쓰겠다’고 답했는데, ‘결합상품으로 묶여 있어서’란 답변이 46.7%로 가장 높았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정체된 초고속인터넷 시장을 마냥 지켜보는 모양새입니다. 2023년 7월 발표한 ‘통신시장 경쟁촉진 방안’에도 휴대전화에 쓰이는 무선 인터넷과 관련된 내용만 가득했고, 초고속인터넷 언급은 거의 없었습니다.

‘약정기간 후반부에 위약금을 대폭 인하한다’ ‘농어촌 초고속인터넷망을 조기 구축한다’는 정도만 담겨 있을 뿐이었죠. 이렇듯 정부마저 손을 놓고 있으니 통신3사로선 구태여 서비스 품질을 높이거나 가격을 인하하는 등 ‘경쟁’을 벌일 이유가 없죠.

정부의 미적지근한 대응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일례로 과기부는 2024년 ‘통신서비스 품질평가’ 사업에 14억1500만원의 예산을 편성했는데, 이중 초고속인터넷의 품질을 평가하는 사업비는 1000만원(비중 0.7%)에 불과합니다.

2023년에도 사업비 16억4500만원 중 1.2%(2000만원)만 10Gbps 인터넷을 모니터링하는 비용에 배정했는데, 이번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통신3사가 품질 유지를 게을리해도 사실상 이를 잡아낼 방법이 없는 셈입니다.

물론 인터넷 끊김의 원인은 무수히 많습니다. 통신사의 기기에 이상이 생겨 인터넷이 끊기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반대로 소비자 컴퓨터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 폭우나 폭설, 추위 등도 인터넷 품질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 때문인지 이통사들은 ‘모든 인터넷 끊김을 곧바로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통신사 업계의 한 관계자는 “통신망에 문제가 있으면 소비자 PC에 신호를 다시 쏴주고, 기기 결함이 있으면 설비를 교체하는 식으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면서도 “변수가 워낙 많아 곧바로 문제를 해결하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품질이 예전만 못하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요즘 들어 부쩍 많아졌다고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요? 수십만명이 보는 e스포츠 대회가 인터넷 끊김 때문에 진행이 마비된 것을 보면 그렇지만은 않은 듯합니다. 이같은 문제를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할까요?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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