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마켓분석
Lab. 리터러시가 간다➊
독립서점 #경원동 르포
서점 주인 될 수 있는 특별한 서점
공간 임대해 내 서점 만들 수 있어
동네서점의 수익 문제 해결책 제시
내 서점 콘셉트, MZ세대에 통할까

전북 전주시에는 ‘특별한 독립서점’이 있습니다. 내 서재를 옮겨놓고, 나만의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는 ‘경원동#’입니다. 지역의 도심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이 독특한 서점을 두고 ‘돈을 만들 수 없어 사라지는 지역 독립서점에 의미 있는 해법을 제공할 것’이란 기대감이 흘러나옵니다. 그럴 수 있을까요? ‘Lab. 리터러시가 간다’ 첫번째 편 경원동#입니다. 

독립서점 경원동#의 콘셉트는 ‘서점 주인이 될 수 있는 서점’이다. [사진=Lab. 리터러시]
독립서점 경원동#의 콘셉트는 ‘서점 주인이 될 수 있는 서점’이다. [사진=Lab. 리터러시]

2023년 12월 15일 전주시 완산구 경원동에 들렀습니다. 경원동은 한옥마을에서 10여분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관광지로서의 전주가 아닌 옛 시가지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전주 사람들은 이곳을 중고서점이 모여 있던 중고책방 거리로 기억합니다. 

중고서점을 찾는 것은 일종의 보물찾기와 같습니다. 절판돼 사라진 책을 찾고 인생을 바꾼 한권의 책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전 보물이라는 말보다는 인연이란 표현이 더 좋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의 경험을 ‘중고책’이란 이름으로 만날 수 있으니까요.

경원동에는 중고책방 거리가 사라졌습니다. 이제 경원동에는  한국전통문화전당 건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자리에는 1960년대 도립병원이 있었습니다. 이질적이고 거대한 건축물은 그 스케일과 디자인이 경원동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바로 이 건물의 맞은편에 ‘경원동#’이란 독립서점이 있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해 넘어온 젊은 가게들과 수십년의 세월을 지켜온 가게들이 뒤섞인 이곳에 2023년 11월 둥지를 틀었습니다. 중고책방이 떠나간 자리에 새로운 독립서점이 생긴 셈입니다.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작가와 독자들이 만나고 문화와 사람이 만나는 공간입니다. 서점이 일종의 문화 플랫폼의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문화 소통의 공간이 사라진 이곳에 10여년만에 다시 새로운 서점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깊습니다.

경원동#이 위치한 건물 3층에는 어반베이스캠프가 있습니다. 전주시의 도시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창업한 1인 기업과 프리랜서가 모인 공유 오피스입니다. 이들은 단순히 공간만 나눠 쓰는 것이 아니라 사단법인 어반베이스캠프를 함께 만들어 전주시의 도심 문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함께 마련한 공간이 바로 서점 경원동#입니다. 이 서점의 특별함은 ‘서점 주인이 될 수 있는 서점’이란 독특한 콘셉트에서 나옵니다. 경원동#에서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작은 공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서점 안쪽 40㎝×40㎝×40㎝ 크기의 책장 한 칸을 월 3만5000원에 대여할 수 있습니다. 이 공간에선 개인의 취향과 ‘덕심(오타쿠+마음)’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게 가능합니다. 실제로 서점을 방문하자 작가, 학생, 일본 여행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꾸며놓은 책장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중 인상 깊은 것은 ‘윤 작가의 이야기 카페’라는 책장입니다. 역사·커피·고양이를 사랑하는 윤여태 작가(2009년 데뷔)는 자신의 책으로 작은 책장을 꾸며 놓았습니다. 이 ‘카페’에선 1900년 11월 24일 횡성신문에 실린 가피차(커피)를 파는 집 이름을 맞혀보라는 이벤트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경원동#에서 제공하는 이 공간의 임대 기간은 6개월, 12개월, 24개월로 다양합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임대’만 하는 건 아닙니다. 경원동#에서는 책장 주인들이 원한다면 커뮤니티 모임도 개최할 수 있습니다.

서점에 있는 모던한 회의 공간에서 자신이 만든 책장의 책과 콘셉트로 오프라인 행사를 열 수 있는 거죠. 40㎝×40㎝×40㎝ 크기의 책장 한 칸은 단순히 작은 책장 공간이 아니라 전주시에 있는 수많은 커뮤니티들의 상징입니다. 

유현준 건축가는 사람과 사회·사물·자연과의 관계를 디자인하는 것이 건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도시 역시 그러할 것입니다. 전주라는 도시에 중고서점 거리가 없어졌다는 것은 사람들이 모여 사회·사물·자연을 자연스럽게 논의하는 공간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현준 건축가는 건축을 설계하기 앞서 사람과 세상을 이해해야 하고 서로 간의 소통을 어떻게 개선해나가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관광지로서의 전주에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임을 열고 소통할 공간이 생긴다는 점에서 경원동#은 인상 깊습니다.

경원동#은 또다른 측면에서는 서점이 품은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서점이 생존하지 못하는 건 책을 팔아선 돈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엔 구조적 문제가 깔려 있습니다. 서점들이 책을 받아오는 금액을 공급가라고 부릅니다. 예컨대 공급가 비율이 60%라면 1만원짜리 책을 6000원에 받아와 판매하는 겁니다.

#경원동 속 다양한 책장. [사진=Lab.리터러시]
#경원동 속 다양한 책장. [사진=Lab.리터러시]

문제는 이 구조는 대형 서점 중심이란 겁니다. 지역의 작은 서점들은 극단적인 경우 책을 공급받지 못합니다. 책을 받더라도 공급가 비율이 90%에 달하는 경우도 숱합니다. 인터넷 서점의 공급가 비율이 60%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역 작은 서점들이 책을 팔아 생존할 수 없는 건 분명합니다. 

경원동#은 작은 책장을 대여해 최소한의 자본적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서점에 생존은 현실이고 문화허브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자본이 필요합니다. 경원동#은 사람들의 모임과 소통을 위한 문화허브 역할을 하는 동시에 자본 문제를 해결했으니 다음 행보도 기대가 됩니다. 예쁘고 모던한 데다 ‘나만의 서점’이란 독특한 콘셉트를 갖고 있어 전주를 찾는 MZ세대에게 인기를 끌지도 모릅니다. 

책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매주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작은 소모임 형태인 모임 주제는 페미니즘과 에코주의, 도시재개발, 소설쓰기, 커피까지 다양하고 폭넓습니다. 전주에 찾아올 때 이곳 경원동#에 들르면 어떨까요?

당신의 고민이나 취미에 맞는 새로운 인연을 만날지도 모릅니다. 전주 사람이 아니더라도 좋습니다. 플랫폼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요. 잠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면서 서로에게 뚜렷한 자국을 남기는 것. 여긴 경원동# 기차역입니다. 

이민우 더스쿠프 기자
lmw@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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