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갈수록 떨어지는 문해력
韓美日 모두 상황 비슷해
3국 정책적 대처 제각각
美 ‘평행 읽기’‘수직 읽기’ 교육
日 아침 독서와 필사하기 고수
韓 구체적인 대책 내놓지 않아

10대의 문해력 부족은 세계적인 문제다. 세계 각국은 문해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법적 시스템을 정비하고 있다. 미국은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문해력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일본은 전통적 방식의 문해력 교육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부는 2024년도부터 초등학교의 국어 시수時數를 늘리겠다는 계획만 발표했을 뿐 구체적인 정책적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2023년 11월 ‘한국출판학회 정기학술대회’에 참석한 학자들은 악화일로를 걷는 문해력의 문제점을 꼬집었다.[사진=Lab. 리터러시]
2023년 11월 ‘한국출판학회 정기학술대회’에 참석한 학자들은 악화일로를 걷는 문해력의 문제점을 꼬집었다.[사진=Lab. 리터러시]

학생들의 문해력 부족은 해묵은 논쟁거리다. 일례로, 2020년 EBS가 중학생 24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문해력 테스트에서 전체의 27.0%가 교과서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가 진행하는 학업성취도 평가에서도 이런 양상은 뚜렷했다. 2019년 77.5%였던 국어 보통 학력 이상 비율은 2022년 54.0%로 23.5%포인트 떨어졌다.

반대로 국어 기초 미달 비율은 2019년 4.0%에서 2022년 8.0%로 2배가 됐다. 서울 소재 고등학교에서 근무 중인 김동현 교사는 “‘동포’ ‘간과한다’ ‘간주한다’처럼 교과서에 나오는 단어를 몰라 수업을 진행하는 게 어려울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유엔전문기구 유네스코(UNESCO)는 리터러시(Literacyㆍ글을 풀어내는 힘)의 번역어인 문해력을 다음과 같이 풀어 설명했다. “다양한 맥락과 연관된 인쇄ㆍ필기자료를 활용해 정보를 찾아내고 이해하고 해석하고 만들어내고 소통하고 계산하는 능력이다.” 정의에서 보듯 문해력은 어휘력과 달리 사회적 소통과 이어진다.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바로 문해력의 요체란 거다. 

이 때문인지 학계 곳곳에선 “청소년의 문해력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2023년 11월 24일 출판전문업체 학지사에서 열린 ‘한국출판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도 문해력 문제가 공론화했다.

이 학술대회에 참석한 학자들은 ‘10대 청소년 문해력의 현주소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란 주제로 미국ㆍ일본ㆍ독일의 교육 사례를 분석하고 한국의 리터러시 교육의 현주소를 진단했다. 그렇다면 세계 각국은 청소년 문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어떤 정책을 펴고 있을까. 하나씩 살펴보자. 

■ 사례➊ 평행읽기와 수직읽기 = 미국은 급변하는 리터러시 환경에 맞춰 정책을 설계ㆍ추진하고 있다. 텍사스ㆍ플로리다ㆍ뉴저지ㆍ델라웨어 등 18개 주정부(2022년 기준)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기준을 수립했는데, 그 방향이 독특하다. 이들 주정부는 어휘력을 단순히 끌어올리는 데 치중하지 않았다. 독특하게도 미디어 소비자가 뉴미디어ㆍ소셜미디어 등을 비판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데 정책의 주안점을 뒀다. 여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미 시장조사기관 이마케터(eMARKE TER)에 따르면, 미디어 소비자가 하루에 전통적 매체를 이용한 시간은 2011년 7시간23분에서 2023년 4시간37분으로 2시간56분 줄었다. 디지털 매체를 이용하는 시간은 같은 기간 4시간(3시간34분→7시간34분) 늘었다. 

문제는 사용량이 급증한 디지털 미디어들이 정보 과잉ㆍ왜곡, 가짜뉴스의 원천으로 부상하면서 사회적 병폐로 자리잡았다는 점이다. 미국 주정부들이 뉴미디어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21세기 버전의 문해력을 키우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춘 건 이 때문이다. 

이정훈 대진대(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교수는 “디지털미디어들이 극단적이고 편향적인 뉴스를 노출하면서 뉴스를 제대로 해석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며 “미국 정부는 학생들에게 정보를 해석하는 방식을 가르치는 교육 기준을 법제화했다”고 설명했다. 

그럼 미 주정부들의 문해력 관련 정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이들은 문해력 평가시스템을 ‘평행 읽기(lateral reading)’와 ‘수직 읽기(vertical reading)’로 나눴다.  ‘평행 읽기’는 특정한 웹이나 소셜미디어 포스트에서 벗어나 동일한 주제나 이슈를 다룬 전통적 미디어의 자료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평행 읽기를 통해 학생들은 불확실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비교ㆍ검토할 수 있다.  ‘수직 읽기’는 뉴스 혹은 사이트의 정보를 그 자체의 순서나 구성에 따라 분석하면서 읽는 방식이다. 

이처럼 미 주정부는 문해력의 범주를 기존 매체를 읽고 해석하는 것을 넘어 디지털 매체까지 넓혔다. ‘평행 읽기’ ‘수직 읽기’를 통해 학생들이 글의 맥락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것도 주목할 만한 정책적 시도다. 

■ 사례➋ 독서와 필사 = 청소년의 문해력에 신경쓰는 건 미국만이 아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소장은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실시한 2018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조사에서 일본 학생들의 국제 독해력 순위가 직전 조사 8위에서 15위로 떨어졌다”며 “이 결과는 일본 사회에 문해력 문제가 다시 주목받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일본은 문해력 저하 원인으로 ▲SNS 중심의 커뮤니케이션, ▲SNS상에서 올바른 문장을 접할 기회가 적어진 것, ▲폭발적으로 증가한 정보와 스마트폰의 보급을 꼽았다. 이를 근거로 일본 문부과학성은 ‘어린이 독서활동 추진에 대한 법률’과 ‘제4차 어린이 독서활동 추진에 대한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여기서 어린이는 18세 이하를 가리키는데, 목표는 이들의 독서율 상승에 뒀다. 

일본 정부는 이를 위해 학교에서의 아침독서를 대표 정책으로 내세웠다. 그 결과, 초등학생의 월평균 독서량은 법을 제정할 당시인 2001년 6.2권에서 2022년 13.2권으로 2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중학생 독서량은 2.1권에서 4.7권으로, 고등학생은 1.1권에서 1.6권으로 각각 증가했다. 

일본의 정책은 독서뿐만 아니라 ‘필사筆寫’에도 맞췄다. 일본 정부는 일본신문협회와 함께 학생들에게 신문을 필사하게 했으며 50억엔의 예산을 들여 고등학생에게 신문을 보급했다. 

이처럼 일본은 디지털미디어에 방점을 찍은 미국과 달리 ‘전통적 신문매체’를 활용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방법은 다르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다. 2018년 독해력 15위였던 일본은 2022년 3위로 올라섰다(OECD 평가). 백원근 소장은 “초중고 학생들에게 아침독서를 시행한 결과 일본의 독서율이 상승하고 독서량은 늘어났다”며 “독서습관을 키우는 것으로 문해력과 비판적 사고를 키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

그럼 우리나라는 어떨까. 미국과 일본처럼 각각의 방법으로 문해력을 끌어올릴 정책을 펴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문해력이 신통치 않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있지만 정부는 아직 실질적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교육부가 문해력을 끌어올리겠다면서 2024년도 초등학교의 국어 시수를 기존 448시간에서 482시간으로 34시간 늘려놓은 게 사실상 전부다. 디지털 정보를 접할 때 사실과 의견을 식별하는 한국 학생(25.6%)이 OECD 회원국의 평균(47.0%)에 한참 못 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PISA 2022년), 이같은 구체적인 정책의 부재는 아쉬운 대목이다. 

문해력은 단순히 단어를 얼마나 아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콘텐츠를 제대로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 일이기도 하다. 2024년 우리에게 필요한 문해력 교육은 무엇일까.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않는 정부는 어떤 생각일까. 

이민우 더스쿠프  기자
 lmw@thescoop.co.kr

더스쿠프 Lab. 리터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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