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전쟁과 문학
4편 진영논리와 문화
이언 매큐언 「스위트 투스」
작가 포섭 임무 맡은 MI5 요원
감시하다가 연인 관계로 발전
결국 파국 피하지 못한 두 주인공
문화전쟁을 실패한 사랑으로 풍자
상대 악마화하는 어리석은 갈등

이언 매큐언이 2012년 발간한 「스위트 투스」는 1960년대 CIA가 은밀하게 추진한 ‘문화전쟁’을 풍자한 소설이다. 미국적 가치를 확산하고자 하는 CIA 직원 세리나 프룸과 그가 포섭해야 하는 신인작가 톰 헤일리의 사랑을 통해 CIA의 문화전쟁을 풍자한다. 공교롭게도 이 소설을 읽으면 우리나라의 ‘끝나지 않는’ 문화전쟁이 오버랩된다.

전세계가 냉전시대보다 더 혹독한 신냉전시대로 치닫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전세계가 냉전시대보다 더 혹독한 신냉전시대로 치닫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영국 역사학자 프랜시스 스토너 샌더스는 자신의 저서 「문화적 냉전: CIA와 지식인들(그린비ㆍ2016년)」에서 냉전 시기에 문화와 지식인을 둘러싸고 전개된 ‘소리 없는 전쟁’을 폭로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소련을 견제하고 미국적 가치를 확산하고자 지식인들을 순화하는 정책을 펼쳤다. 

CIA는 ‘세계문화자유회의(CCFㆍ현 국제문화자유협회)’ 등 민간 위장단체들을 만들어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35개국에 지부를 뒀다. 민간단체를 지원하면서 CIA는 수많은 잡지 발행을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조지 오웰, 레이몽 아롱, 버트런드 러셀, 이사야 벌린, 한나 아렌트, 솔 벨로, 레너드 번스타인 등 당대의 저명한 지식인 다수가 CIA에 포섭되거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용당했다.

냉전 시기에 사람들은 CIA의 심리전 각본에 따라 알게 모르게 포섭된 지식인들의 작품, 의견, 태도, 감정, 행동에 영향을 받았고, “누군가가 바라는 대로 움직인다 해도 스스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고 믿게 되는 상태”에 빠졌다. 

1966년 4월, 뉴욕타임스는 CIA가 영국 잡지 ‘인카운터’를 후원한 사실을 폭로하면서 CIA를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괴물 같은 존재”라고 비판했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 「스위트 투스(2012년)」는 이 폭로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 ‘세리나 프룸’이 40년 전 자신이 수행한 작전의 전말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진행한다.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프룸은 영문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케임브리지 대학 수학과에 진학한다. 어머니는 딸이 수학을 공부해 공학이나 경제 분야에서 번듯한 직업을 갖길 원했다. 

정작 프룸은 수학에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프룸은 역사학 교수 토니 캐닝과 사랑에 빠진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보안정보국(MI5) 요원으로 복무했던 토니 교수는 프룸이 보안정보국에 취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토니에게 역사와 사회 지식을 전수받은 프룸은 보안정보국 면접을 쉽게 통과한다.

미국 CIA는 냉전시기에 지식인을 순화하는 정책을 폈다.[사진=연합뉴스]
미국 CIA는 냉전시기에 지식인을 순화하는 정책을 폈다.[사진=연합뉴스]

1970년대 영국 보안정보국은 지극히 보수적인 집단이었다. 여성 직원들은 주로 사무보조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9개월 동안 말단 직원으로 지루한 나날을 보내던 프룸에게 드디어 임무가 떨어진다. 작전명 ‘스위트 투스(Sweet Toothㆍ달콤한 치아)’. 이 작전의 목표는 “중도 좌파 유럽 지식인들을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도록 꾀어내고 자유세계를 옹호하는 것이 지적으로 높이 평가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보안정보국 수뇌부는 소설을 좋아하는 프룸에게 갓 데뷔한 신인 작가 톰 헤일리를 감시하고 포섭하는 임무를 맡긴다.  

프룸은 작가들을 지원하는 ‘자유국제재단’의 직원으로 위장하고 톰을 만난다. 톰은 알 수 없는 재단이 왜 자신을 지원하는지 의심하면서도 너무도 호의적인 지원 조건을 받아들인다. 프룸의 임무는 톰의 소설에 담긴 체제 비판의식을 순화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프룸은 톰이 쓴 소설의 첫번째 독자가 돼야 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프룸은 점차 톰에게 빠져들었고, 두 사람은 곧 연인이 된다. “그는 나의 프로젝트, 나의 일, 나의 임무였다. 그의 예술, 그의 작품, 그리고 우리의 연애는 하나였다. 그가 실패하면 나도 실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간단했다. 우리는 함께 성공할 것이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프룸은 톰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진실을 얘기하는 순간 두 사람의 관계는 붕괴할 가능성이 높았다. 톰 역시 점차 프룸을 의심한다. 서로를 의심할수록 역설적으로 사랑은 뜨거워졌다. 그리고 두려움 역시 커졌다. 두 사람은 소설을 두고 토론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갈등하기를 반복한다. “이 사랑이 방향을 잡고 흘러가기 전에 그에게 나의 실체를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 우리의 사랑은 끝날 것이다. 그래서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말해야 한다.” 

밀고 당기는 두 연인의 줄다리기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소설은 첩보물의 외피를 빌려 사랑의 잔인한 속성을 정면으로 까발린다. 사랑은 대개 착각과 환상으로 시작한다. 사랑을 시작할 때 우리는 자신의 환상에 상대를 대입한 다음 그 사랑을 견고하게 뒷받침하는 서사를 덧씌운다. 그리고 거짓으로 균열을 땜질하면서 환상의 붕괴를 늦추려고 노력한다.

연인들의 갈등은 대개 자신의 결여를 상대의 결여 탓으로 돌리는 기만에서 비롯된다. 톰과 사랑에 빠지면서 프룸의 임무는 이미 실패가 예정된 것이었다. 프룸의 사랑은 ‘믿고자 하는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트릭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내가 알고 있는 삶이 책 속에 재현된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삶이 트릭 없이 책 속에 재현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언 매큐언은 과거에 벌어진 어리석은 문화전쟁을 프룸의 실패한 사랑으로 풍자한다. 곳곳에 배치한 유머 코드와 톰의 소설을 읽고 두 사람이 벌이는 설전은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그러나 이 소설을 마냥 편하게 읽기는 어렵다. 뉴욕타임스가 CIA의 활동을 폭로한 시기에 벌어졌던 간첩조작사건(인혁당 사건과 동백림 사건)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냉전시기의 ‘문화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상대를 악마로 낙인찍은 채 자신의 환상만을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이 소설을 권하고 싶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현실을 ‘낯설게 만드는’ 기발한 풍자다. 

이정현 평론가 | 더스쿠프
21cbac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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