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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3대 모순
고금리 국면서 대출 더 늘어
상속세 없애면 주가 상승할까
횡재세 안 된다면서 상생금융은 왜?

고금리가 문제라는 데 가계‧기업 대출은 증가한다. 주가 하락을 막는 해법이 대주주의 상속세 면제라는 경제학적으론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 나온다. 횡재세는 안 되면서 법적 근거조차 없는 상생 금융은 또 환영한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한국 경제 3대 모순을 알아봤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모순➊ 긴축과 완화=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11일에도 기준금리를 현행 3.50%로 8회 연속 동결했다. 우리는 기준금리를 지난해 1월 0.50%포인트 인상한 후 1년 동안 유지하고 있다. 과거와는 다른 고금리 상태가 지속하면서 고통받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도 지난해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증가했다. 가계부채는 2022년 8조8000억원 감소했지만, 2023년에는 오히려 10조1000억원 증가했다. 

가계부채만이 아니다. 지난해 기업대출도 매월 증가했다. 지난해 1월과 2월에 각각 7조9000억원, 5조2000억원 늘어난 기업대출은 10월 8조1000억원, 11월 7조3000억원으로 증가폭이 오히려 커졌다. 지난해 11월 기준 우리나라 기업대출 잔액은 1253조7000억원으로 증가했다. 

우리나라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의 지난해 의사록을 보면 긴축의 시기에 부채가 오히려 증가한 원인을 알 수 있다. 금통위원들은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조치, ▲정책금융, ▲은행들이 일시적으로 기준금리 이하로 가계대출 금리를 책정한 점을 부채 증가의 원인으로 꼬집었다. 정부가 지난해 1월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고, 50년 주택담보대출, 특례보금자리론을 시행해 부동산 부양에 나선 결과라는 지적이다. 

한 금통위원은 지난해 7월 의사록에서 “전 세계적인 고금리 기간에 유일하게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하락하지 않은 나라가 우리나라와 일본”이라며 “규제 당국이 예전 방식대로 가계부채를 관리하면 가계부채 비율을 낮추기 어려워 보인다”고 평가했다. 한 위원은 지난해 10월 의사록에서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이 외환위기 수준을 상회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 모순➋ 상속세와 지배구조=“소액주주는 회사의 주식이 제대로 평가를 받아서 주가가 올라가야 자산을 형성할 수 있는데, 대주주 입장에선 주가가 너무 올라가면 상속세를 어마어마하게 물어야 한다. 할증세까지 있어서 재벌기업,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상장한 어지간한 기업들도 주가가 올라가면 가업 승계가 불가능해진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10일 민생토론회에 꺼내든 발언 내용이다. 상속세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항상 찬반양론이 존재한다. 한 가구 구성원이라는 전제 아래에서 부모와 자녀가 같은 소득에 두번 세금을 내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데다, 상속받는 금액에 따라서 세율이 달라지는 게 공정하지 않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1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1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자료 | 금융위원회, 참고 | 전년 대비]
[자료 | 금융위원회, 참고 | 전년 대비]

그런데, 상속세‧증여세‧양도소득세는 그렇게 작용해야 목적을 달성하는 제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드시 발생하는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상속세 폐지든 강화든 충분히 논의해서 정해진다면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상속세 폐지라는 주장에 이르는 경로다. 윤 대통령이 상속세 폐지를 언급한 건 민생토론회에서 나온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였다. 질문은 “기업들이 대주주를 위한 결정을 내리면서 소액주주의 손실을 감수하도록 하는 결정을 내리곤 했다”며 “제도적‧법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배경인 거버넌스(기업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거였다. 그런데 정작 답변의 요지는 상속세를 없애면 저평가된 주가가 높아진다는 거였다. 

기업 지배구조가 주가의 발목을 잡는 건 사실 상속세보단 ‘쪼개기 상장’일 경우가 많다. 대기업들이 회사를 분할해 상장하면서 투자금을 확보하고, 오너 일가의 자회사 지배력도 유지하는 게 쪼개기 상장이다. 2022년 LG화학에서 분할 상장된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가 그렇고, 카카오가 그렇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상속세 폐지’는 기획재정부가 2022년부터 추진하던 상속세 재편과도 결이 다르다. 기재부의 유산 취득세는 유산을 받은 자녀 각각에게 과세하는 대신 유산 전체에 세금을 매겨 부담을 덜어준다는 방향이었다. 문제는 이마저도 공감대를 충분히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이보다 ‘앞선 주장’을 제기했다는 점이다. 

■ 모순➌ 횡재세와 상생금융=“에너지 위기와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국가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요구를 하는 것은 법의 주요한 목적에 부합한다.” 스페인 대법원은 지난해 2월 정유회사 렙솔이 정부의 횡재세 부과를 금지해 달라는 소송에서 이처럼 판결했다. 

유럽 24개 나라가 에너지회사‧은행 등에 일회성 부담금인 횡재세를 도입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건 횡재가 발생한 원인이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명확했고,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고통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해 7월 상생친구 협약식에 참석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해 7월 상생친구 협약식에 참석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횡재세 도입 논의 자체가 이미 지나치게 늦게 시작된 데다, 야당이 은행을 대상으로 일회성 부담금이 아닌 사실상 증세안을 내놓으면서 결국 실패했다. 횡재세‧상속세 등 어떤 과세도 사회적인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면 부과하지 않는 것이 적절하다. 

그런데 정부가 횡재세 대신 상생금융이라는 카드를 들고나왔다. 지난해 말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을 만나 상생 금융을 주문했고, 은행들은 지난 18일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위해서 2조원에 상당하는 돈을 내놓기로 합의했다. 정식 명칭은 ‘은행권 민생금융 지원방안(상생 금융)’이다. 이름만 상생금융인 횡재세라고 봐도 무방하다. 더구나 상생금융은 법적 근거조차 없다는 점에서 태생적 결함까지 갖고 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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