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 ESG와 기업가 정신
더스쿠프-가톨릭대 공동기획
제3막 소비자 권리와 기업의 책임➋
진실과 거짓 교묘히 섞는 기업들
캐시미어 목도리 속 캐시미어 0%
소비자 ‘알권리’ 이대로 괜찮을까

바쁜 하루를 보내는 직장인에게 온라인 쇼핑몰은 참 편리한 유통채널이다. 실물을 보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소비자는 ‘설마 기업이 속여가며 장사할까’란 생각에 구매 버튼을 습관처럼 누르곤 한다. 문제는 이런 소비자의 믿음을 악용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더스쿠프 視리즈 ‘소비자 권리와 기업의 책임: 원동력일까 재앙일까’ 2편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자.

거짓 정보로 소비자를 기만하는 판매업자들이 적지 않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거짓 정보로 소비자를 기만하는 판매업자들이 적지 않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우리는 대학생 기사취조단 「소비자 권리와 기업의 책임: 원동력일까 재앙일까」 1편에서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이통3사의 면모를 살펴봤다. 이들 기업은 2019년 4월 5G를 상용화할 당시 ‘LTE보다 20배 더 빠르다’ ‘영화 1편 받는 데 1초밖에 걸리지 않는다’며 5G를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통사 홍보에 끌려 5G에 가입한 소비자들은 느린 속도, 잦은 끊김 현상 등의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

뛰어난 가성비로 서민에게 친숙한 알뜰폰에서도 문제점이 드러났다. 알뜰폰은 간혹 전산상의 오류로 지하철 와이파이가 작동하지 않는 기술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 하지만 통신 기술에 밝을 리 없는 소비자는 이런 사실을 눈치채기가 어렵다.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아도 ‘너무 싸서 그런가 보다’ 하고 이를 감수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문제는 알뜰폰 서비스센터에 문의해도 정확한 안내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알뜰폰 업체는 “알뜰폰은 원래 지하철 와이파이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황당한 답변을 하기도 했다.

5G와 알뜰폰의 사례는 기업과 소비자 간의 ‘정보 불균형’이 초래한 결과다. 전문적인 기술과 지식을 갖춘 기업들이 정보를 왜곡하면, 평범한 소비자로선 이를 파악하는 게 쉽지 않다. 문제는 이런 피해 사례가 통신 같은 전문산업분야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란 점이다. 소비자의 생활과 밀접한 유통업계에서도 ‘알 권리’를 침해하는 사례가 숱하다. 하나씩 살펴보자.

■ 사례➊ 1+1의 함정= 지난해 11월 6일 한국소비자원은 “국내 주요 38개 쇼핑몰과 76개 모바일 앱의 ‘다크패턴’을 조사한 결과, 총 429개, 평균 5.6개의 다크패턴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참고: 다크패턴은 소비자의 착각이나 실수를 유발해 비합리적인 지출을 유도할 의도로 설계한 사용자인터페이스(UI)를 뜻한다.]

그중에서 소비자의 ‘알 권리’를 제한한 다크패턴이 적지 않았다. 429개 중 ‘의도적인 정보 숨기기’는 34개(7.9%)였고, ‘거짓 추천’ ‘거짓 할인’은 각각 20개(4.7%)·15개(3.5%)를 차지했다. 이 세 가지는 지난해 8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다크패턴에 관한 가이드라인 발표 시 ‘소비자 피해를 유발할 우려가 큰 유형’으로 꼽힌 바 있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이 찾아낸 ‘거짓 할인’의 사례를 살펴보자. 여기 하나를 사면 하나를 더 주는 ‘1+1’ 프로모션을 적용한 보디로션이 있다. 그 옆엔 기존 가격보다 10% 할인이란 안내 문구도 있다. 이런 구조는 소비자에게 ‘한 개를 사면 한 개를 공짜로 더 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국회에서도 다크패턴을 근절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사진은 지난해 4월 열린 ‘온라인 다크패턴 근절 대책 당·정협의회’.[사진=뉴시스]
국회에서도 다크패턴을 근절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사진은 지난해 4월 열린 ‘온라인 다크패턴 근절 대책 당·정협의회’.[사진=뉴시스]

문제는 가격이다. 1+1 제품의 가격은 2만6820원으로 1개당 1만3410원에 판매하고 있는 셈인데, 실제 단품 가격은 이보다 4000원 더 저렴한 9410원에 불과하다. 1+1 상품을 산 소비자로선 무려 8000원을 더 비싸게 지불한 꼴이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보고서에서 “소비자가 거래조건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업들에 사용자인터페이스를 좀 더 중립적으로 설계할 것을 권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사례➋ 가짜 캐시미어= 아예 잘못된 정보를 대놓고 표기해 소비자를 기만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11월 한국의류시험연구원(KATRI)은 국내 의류 브랜드인 ‘247 서울(247 SEOUL)’이 판매하는 캐시미어 머플러의 원단이 실제 표기된 정보와 다르다고 발표했다.

247 서울은 쇼핑몰 상품정보에 고급 천연섬유인 캐시미어가 30%가 함유됐다고 적었지만, KATRI의 성분 시험 결과 목도리는 합성섬유의 일종인 폴리에스터 70.4%, 레이온 29.6%로 구성돼 있었다. 캐시미어는 단 1%도 없었다. 저렴한 합성섬유로 만든 제품이 ‘고급 머플러’로 둔갑해 시중에 풀린 거다.

이 제품은 무신사·W컨셉·29CM 등 내로라하는 유명 온라인 쇼핑몰에서 인기를 끌었다. 일례로, 무신사에서 한해 판매한 수량만 8만6000개에 달한다. 제품 가격이 2만~3만원대였던 걸 감안하면 247 서울은 무신사에서만 1년에 17억~25억원의 매출을 올린 셈이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247 서울은 사과문을 게시한 뒤 해당 제품 판매를 중단하고 환불 절차를 진행했다. 캐시미어 목도리를 판매한 무신사의 한 관계자는 “입점 브랜드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면서도 “수십만개에 달하는 상품의 정보가 잘못됐는지 쇼핑몰에서 검사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처럼 소비자의 ‘알 권리’를 침해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문제는 그런 ‘알 권리’를 보호할 만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없는 게 아니란 점이다. 예컨대, 소비자기본법 제4조 2항에 따르면 소비자는 제품을 구매할 때 필요한 지식·정보를 제공받을 권리를 갖고 있다. 법망을 갖췄는데도, 알 권리가 침해받는 일이 줄줄이 터지는 건 심각한 문제다. 이를 역으로 풀면, 틈만 나면 ESG 경영을 입에 담는 기업이 이젠 ‘실질적 ESG’를 펼칠 때가 됐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사실 앞서 언급한 사례의 대부분은 모두 소비자가 먼저 문제를 제기해 공론화한 케이스다. 5G 과장 광고 문제는 ‘5G의 품질이 나쁘다’는 소비자의 불만이 꾸준히 제기되자 정부가 뒤늦게 움직인 사례다. 247 서울의 캐시미어 논란도 한 소비자가 KATRI에 혼용률 검사를 맡기면서 시작됐다.

[사진 | 무신사 제공]
[사진 | 무신사 제공]

결국 소비자의 알권리를 충족하려면, 기업의 진정성 있는 ESG 경영이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포장술’은 되레 알권리의 충족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ESG 경영이 기업에 손해인 것도 아니다. 요즘 젊은 소비자는 ESG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을 선호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옛 전경련)가 2022년 MZ세대(1981~2010년생) 827명에게 ‘ESG 경영이 기업 호감도 개선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물어본 결과, 전체의 57.1%가 ‘그렇다’, 18.8%가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소비자가 ‘ESG 우수기업 제품에 경쟁사 제품 가격의 5~10%를 추가 지불하겠다(29.8%)’고 답한 설문조사도 있다(대한상공회의소·2022년).

황용식 세종대(경영학) 교수는 “기업들이 ESG 경영을 이윤 추구와 상충하는 개념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가 등장하고, 인터넷 문화가 확산하면서 소비자의 정보 접근성이 극대화하고 있다. 그로 인해 소비자가 기업의 잘못을 빠르게 지적하고 공유하는 것도 수월해졌다. 이럴 때일수록 기업들은 투명한 정보·서비스의 제공에 충실해야 한다. ESG 경영을 마케팅의 일환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김지호 가톨릭대 학생 
hosun0927@naver.com 

박서경 가톨릭대 학생
ui3094@naver.com

하송민 가톨릭대 학생
candy718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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