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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근로 위반 기준 행정해석 변경
1일 한도 없앤 대법원 판결이 원인
이론상 하루 21.5시간 근무도 가능
노동자 건강권 보호받을 수 있을까

고용노동부가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연장근로 한도 위반 판단 기준을 바꾸기로 했다.[사진=뉴시스]
고용노동부가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연장근로 한도 위반 판단 기준을 바꾸기로 했다.[사진=뉴시스]

연장근로 한도의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바뀌었다. 지난 22일 고용노동부는 연장근로 한도 위반 여부를 1일 8시간이 아닌 1주 40시간 초과근로시간으로 판단하는 ‘행정해석 변경’을 고지했다. 지난해 12월 7일에 나온 대법원 판결(선고 2020도15393)에 따른 후속조치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법정근로시간은 1일 8시간, 1주 40시간이다.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해서 일을 시킬 수 없다. 다만, 당사자 간 합의가 있으면 1주 12시간 한도 내에서 연장근로를 시킬 수 있다. 법적으로 가능한 총 근로시간은 52시간(40시간+12시간)이고, 여기서 연장근로시간이 주 12시간을 초과하면 위법이다. 

예컨대 하루 13시간씩(법정근로 8시간+연장근로 5시간) 3일 일한 노동자의 1주 총 근로시간은 39시간으로 52시간이 넘지 않는다. 하지만 연장근로시간은 15시간으로 1주 12시간을 초과한다. 따라서 그동안 고용노동부는 이런 근로 행태를 위법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대법원의 해석은 달랐다. 대법원은 연장근로시간의 한도 위반 여부를 ‘1일 근로시간+연장근로시간’이 아니라 ‘1주 총 근로시간 52시간’을 넘어서는지 여부로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근로기준법 제53조1항이 1주 12시간을 한도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한 건 ‘1일 8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가 가능하다’는 의미이지, 1일 연장근로 한도를 별도로 규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해석했다.

고용노동부도 이 판결에 따라 ‘1주 총 근로시간 중 1주 법정근로시간 40시간을 초과하는 시간이 연장근로이고, 이 연장근로가 1주 12시간을 초과하면 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행정해석을 변경한 거다. 이번 행정해석 변경은 현재 조사 또는 감독 중인 사건에 곧바로 적용할 예정이다.

[※참고: 다만 연장근로수당 지급 기준은 기존 해석을 유지한다.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 시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가산해 지급하기로 돼 있는데, 이 규정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런 행정해석에 따르면 1일 근로시간 한도가 사라져 이론적으로 하루 최대 21.5시간의 근로가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1주간 52시간만 넘기지 않는다면 노동자에게 최대치로 일을 시킬 수 있어서다. 

계산해보면 이렇다. 법적으로 하루 8시간 근무 시 1시간 이상, 4시간 근무 시 30분 이상의 휴게시간을 주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우선 2시간 30분의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20시간 일을 시킬 수 있다. 이후 휴게시간 없이 1시간 30분간 일을 더 시킬 수 있다.

결국 8시간 법정근로시간을 뺀 하루 최대 연장근로시간은 13.5시간이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의 건강권이 보호받지 못할 수도 있다. 노동계에서 이번 행정해석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장근로 한도 위반을 판단하기 위한 행정해석이 달라지면서 노동자의 건강권이 침해당할 거란 우려가 나온다.[사진=뉴시스]
연장근로 한도 위반을 판단하기 위한 행정해석이 달라지면서 노동자의 건강권이 침해당할 거란 우려가 나온다.[사진=뉴시스]

민주노총 이날 논평을 통해 “하루에 아무리 많은 시간을 일해도 주당 최대 52시간만 넘지 않으면 연장근로 한도를 위반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면서 “하루 21.5시간 일하고도 연장근로를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 역시 “고용부의 이번 발표는 사용자들에게 연장근로시간 몰아쓰기가 가능하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자, ‘압축노동’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면서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국회가 가능한 이른 시일 내에 입법 보완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도 이런 부작용을 짐작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판결로 현행 근로시간 제도의 경직성을 보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지만, 건강권 우려도 있는 만큼 고용노동부는 현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오는 2월에 개최하는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 근로시간 유연화와 노동자 건강권 확보 방안 등을 논의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노동계는 대화 불참을 고수하고 있어 당분간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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