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공병훈의 맥락
구텐베르크 혁명➊
중세를 끝낸 금속 활자
종교가 독점하던 지식
15세기에 무슨 일 있었나
피어오른 지식혁명의 불꽃

인쇄기를 발명해 중세 유럽 어둠의 장막을 걷어내고 지식 혁명의 방아쇠를 당긴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그의 발명은 소수의 귀족과 성직자들이 성경과 지식을 독점하던 체계를 단숨에 무너뜨렸다. 하지만 그는 제자로부터의 배신과 동업자의 소송에 따른 파탄, 노년에 찾아든 실명이란 엄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독점과 어둠이란 중세의 봉인을 해제한 것에 따른 천형天刑이었을까.

인쇄기를 발명해 중세 어둠의 장막을 걷어낸 구텐베르크.[사진=위키백과]
인쇄기를 발명해 중세 어둠의 장막을 걷어낸 구텐베르크.[사진=위키백과]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개발하기 전 유럽에선 수천권의 필사본만이 나돌았을 것이다. 그가 금속활자로 인쇄기를 발명한 시점에서 불과 50년이 흐른 1500년께엔 900만권이 넘는 책들이 출판됐다. 인쇄기라는 천재적 발명품은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의 욕구와 결합하면서 14세기 르네상스(Renai ssance), 16세기 종교개혁, 18세기 프랑스 대혁명의 여명을 밝혔다. 이는 산업혁명과 더불어 지식의 빅뱅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책과 출판의 출발점은 독일 마인츠 출생의 구텐베르크에서 시작한다. 인쇄기를 발명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천재성은 지금도 감탄을 자아낼 만한 것이지만, 「42행 성서(42-line Bible)」를 둘러싼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600년이 흐른 세월에도 책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숙연하게 한다.

그럼 구텐베르크 혁명이 시작됐던 15세기, 동양과 서양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먼저 우리나라를 보자.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李芳遠이 왕자의 난을 통해 왕도정치를 꿈꾸던 정도전鄭道傳을 죽이고 즉위하면서 조선의 15세기가 출발했다. 이후 조선은 세종ㆍ세조ㆍ성종에 이르는 절정기를 맞았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는 포신 길이가 8m가 넘고, 돌 포탄의 무게는 600㎏가 넘는 우르반(Urban)의 대포를 개발해 군대 8만여명과 함께 콘스탄티노플(튀르키예 서쪽 도시)을 공격했다.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의 최후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는 예복을 벗고 육박전에 뛰어들어 장렬히 전사했다. 

공교롭게도 유럽의 15세기는 콘스탄티노플 함락의 충격과 공포에서 시작했다. 동로마제국의 멸망은 유럽ㆍ중동, 아시아ㆍ중국, 그리고 조선으로 이어진 육지와 바다의 비단길(Silk Road)이 막혔다는 걸 뜻한다. 이슬람 세력이 지중해와 중동지역을 지배하면서 유럽은 아시아와 교역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다.

이 상황에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는 에스파냐 왕국의 가톨릭 군주였던 이사벨 1세(Isabel I de Castilla)와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의 지원을 받아 아시아를 찾으러 서쪽으로 떠났지만 엉뚱하게도 아메리카를 발견했다. 유럽의 배들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항로를 개척하고 탐험과 무역을 하는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15~17세기)는 그런 ‘오류’에서 시작했다. 

15세기 프랑스 동부 지역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난 잔 다르크(Jeanne d’Arc)는 프랑스를 구하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100년 전쟁에 참전해 프랑스군을 승리로 이끌었다. 러시아의 이반 3세(Ivan III)는 “우리는 더 이상 칸의 신하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킵차크한국을 격퇴하고 러시아 북동 지역을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통합했다. 이는 훗날 러시아 제국으로 성장하는 모스크바 대공국의 기초가 된다. 

이처럼 15세기는 동서양 모두 중세의 변곡점을 지나는 시대였다. 이쯤에서 다시 구텐베르크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15세기 서양의 지식 혁명에 불을 지핀 주인공인 그는 포도주를 짤 때 사용하는 압착기를 개조해 근대적 인쇄기계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를 ‘근대 활판 인쇄술의 발명자’라고 정의하는 건 무리다. 중국은 3세기께부터 목판 인쇄를 했고, 14세기 들어선 유럽 여러 곳에서도 목판 인쇄를 하고 있었다. 고려도 같은 시기 금속활자를 개발해 경전까지 인쇄했다. 그럼 구텐베르크의 위대함은 대체 뭘까.

공병훈 협성대 교수 | 더스쿠프
hobbits84@naver.com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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