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호모헌드레드’ 오토픽션 논란
이런 논란 문학계 처음 아니야
기존 논란 소설들 판매 중지
재현의 윤리 둘러싼 주장들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쓰는 소설들이 많아졌다. 거대한 참사나 사건을 쓰면서 피해자들이 기억하고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주변인들의 사생활을 재현하는 문제가 생겼다. 2024년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재현의 윤리는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문학계에서 재현의 윤리는 오랜 논쟁거리다.[사진=팩셀]
문학계에서 재현의 윤리는 오랜 논쟁거리다.[사진=팩셀]

동아일보 2024년 중편 신춘문예 당선작이 논란에 휩싸였다. 중편 당선작 ‘호모헌드레드(이상민 작가 作)’가 오토픽션(auto fiction)이라는 고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토픽션이란 자신을 뜻하는 그리스어 ‘auto’와 허구를 뜻하는 ‘fiction’을 합친 단어로 자전적 소설을 뜻한다.

개인적 이야기에 허구를 집어넣는 것이어서 오토픽션은 사생활 침해 논란이 빈번했다. 동아일보 당선작 ‘호모헌드레드’도 이 논란에 얽혔다. 당선작을 다룬 기사마다 “자신의 삶이 소설에 무단으로 박제됐다”며 피해를 호소하는 이가 댓글을 달고 있다. 

소설 속 사생활 피해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0년에는 김봉곤 작가의 ‘여름, 스피드’와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오토픽션 논란 탓에 판매가 중지됐다. 성소수자인 소설 속 인물이 누구인지 특정 가능하고 이 때문에 실제 인물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성적지향이 공개되는 피해, 이를테면 ‘아우팅(outing)’을 당했다는 논란 때문이었다.

2021년에는 김세희 작가의 책 「항구의 사랑」이 판매 중단됐다. 작가의 18년 지기 친구의 사생활이 작품에 담겼을 뿐만 아니라 성정체성이 공개됐다는 것이 문제였다. 

두 사건 모두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성정체성이 다수에게 아우팅이 됐다는 점에서 문제가 분명했다. 이 때문에 ‘재현의 윤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문단 안팎에서 공론화했다. 소설로 실제 인물의 삶을 재현하는 데 주의가 요구된다는 지적이었다. ‘호모헌드레드’ 역시 재현의 윤리를 두고 지적을 받고 있다. ‘호모헌드레드’는 소설 속 가상의 언론사 안경보건신문을 은퇴하는 부사장과 그 구성원들의 이야기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평균수명이 100세가 넘는 시대의 사람을 뜻하는 ‘호모헌드레드’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소설은 신문사를 정책과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저물어가는 곳으로 묘사한다.

은퇴 예정인 부사장은 인품을 잃은 ‘괴팍한 노인네’로 그린다. 소설 속 구성원들은 모두 문제적이고 저물어가는 이들의 이야기다. 그 점이 소설을 문학적으로 만든다. 그래서 반대로 이것이 실제 인물들이라면 불편할 수 있는 지점들이 있다.  

영화 비열한 거리엔 재현의 윤리 문제가 녹아들어 있다. 문학계에서도 이런 논란이 반복하고 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 비열한 거리엔 재현의 윤리 문제가 녹아들어 있다. 문학계에서도 이런 논란이 반복하고 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그렇다면 ‘호모헌드레드’에 무단으로 자신의 삶이 박제됐다는 사람들의 주장은 사실이었을까. ‘호모헌드레드’ 속 인물과 회사의 실제 모델은 검색으로 쉽게 알 수 있다. 소설 속 이야기까지 사실인지 알 수 없지만, ‘호모헌드레드’를 집필한 이상민 작가는 2023년 12월까지 실제로 안경 관련 언론사에서 기사를 썼다.

심사위원들이 이야기의 단조로움을 덜어줬다고 평한 ‘안경렌즈로 도자기를 만드는 이야기’는 해당 언론사에 재직 당시 그가 작성한 기사다. 다만, 세태소설로 역할을 한 사람들 간의 이야기들이 재현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호모헌드레드’를 통해 자신의 삶이 무단으로 전재됐다는 A씨 등 직장 동료들은 “그 소설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또한 정상적으로 진행한 업무가 소설 속에서 제대로 행하지 않은 것처럼 묘사돼 명예가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A씨는 작가를 고소한 상태다. 이상민 작가는 “고소 관련 연락을 받은 적 없고, 소설 속에서 재현이 된 것은 없다”고 전했다. 소설 내용을 비판하는 댓글들이 달리고 있는 점에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호모헌드레드’는 이전 사건처럼 성소수자의 아우팅 문제로 이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소설 속에 자신의 삶이 재현됐다고 주장하는 당사자들이 고통을 호소한다는 점에선 숙고할 부분이 있다. ‘호모헌드레드’가 직장 동료의 삶을 실제로 무단도용했는지를 따져 묻는 것과 별개로 소설 속 재현이 어디까지 이뤄져야 하는가란 윤리적 질문은 남아있다. 

소설은 근본적으로 어떤 세계를 모방한다. 현실을 모방하는 소설을 둘러싼 논란은 200년 전에도 있었다. 프랑스의 유명 작가 에밀 졸라는 1886년 출간한 소설 ‘작품’에서 실패한 화가를 그린다. 그 화가는 자신의 오랜 친구인 폴 세잔의 모습을 투영한 것이었다. 소설이 출간된 이후 폴 세잔은 죽을 때까지 에밀 졸라를 만나지 않았다. 

소설을 쓸 때 어느 선까지 현실을 재현할 수 있는지를 규정한 명확한 기준은 없다. 다만 ‘재현의 윤리’를 지켜야 한다는 요구들은 있다. 20세기에 이르러선 “아우슈비츠 유태인 학살, 가까이는 세월호ㆍ이태원 참사 등 인간의 사유를 아득히 넘는 재난과 참사를 함부로 재현하지 말라”는 재현불가능성(unrepresentability)을 고려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 문학을 창작할 때 실제 있었던 사건과 그 피해자들을 생각하는 윤리적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진=동아일보 신춘문예 홈페이지]
[사진=동아일보 신춘문예 홈페이지]

반론도 있다. 사건을 재현하지 않는다면 비극은 잊히고 회피된다. 그런 방식으로 피해자들은 고립되거나 잊히기에 많은 문인이 재난과 사건 그 자체를 재현하지 않으면서 사건들을 다루기 위해 노력해왔다. 

예컨대, 용산 참사를 직접적으로 재현하는 대신 철거를 앞둔 전자상가에 그림자가 일어나 사람을 삼키는 모습으로 은유하는 식이다. 최근 문학계에서 트렌드로 떠오른 SF 작품의 유행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문학계에는 최근 오토픽션 소설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재현의 윤리를 지키고자 하는 문학계 내의 노력으로도 읽힌다. 참사를 다루는 대신 자신의 삶을 그려내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시도가 작가 주변인들의 삶을 무단으로 인용하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호모헌드레드’ 역시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김봉곤 작가가 작품 ‘여름, 스피드’에서 타인의 삶을 무단 인용했다는 지적을 받았을 때 김초엽 작가는 “소설의 가치가 한 사람의 삶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4년 후인 2024년 ‘호모헌드레드’라는 소설로 문학계는 다시 한번 소설의 재현성이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 질문은 20 24년 작가로 데뷔한 이상민 작가만이 답해야 할 건 아니다. 문학계 전반이 숙고해볼 만한 질문이다. 문학은 어디까지 재현할 수 있는가. 

이민우 더스쿠프 기자
lmw@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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