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공병훈의 맥락
싱귤래리티 논쟁➊
인간 모방하는 AI
고흐 화풍으로 그린 금문교
모방 뛰어넘어 창조까지
싱귤래리티 어디까지 왔나

인공지능(AI)이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다. 많은 이들이 ‘창조성’도 이젠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AI의 글이든 그림이든 결과적으론 인간의 작품을 학습한 결과물이다. 일종의 모방행위라는 건데, AI가 모방을 넘어 ‘창조성’을 가질 수 있을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더스쿠프의 새 연재물 ‘공병훈의 맥락’ 1편에서 AI가 인간의 지능을 넘어가는 기점을 뜻하는 ‘싱귤래리티’를 논해봤다.

AI가 인간의 창조성을 가질 수 있을까. 전문가의 의견은 엇갈린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AI가 인간의 창조성을 가질 수 있을까. 전문가의 의견은 엇갈린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강렬하면서도 마음을 사로잡는 색채, 거친 붓의 터치, 뚜렷하면서도 애매하기도 한 인상적 윤곽의 그림을 통해 위대한 창조성의 화가로 불리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33년 전 1890년 7월 27일, 37세의 고흐는 들판으로 걸어나간 뒤 자신의 가슴에 총을 쐈다. 동생 테오의 권유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10년 만의 일이었다.

미술품 거래를 싫어한 데다가 런던 태생의 한 아가씨에게 실연(1874년)을 당하면서 인생관이 어두워졌다. 인간적 애정을 얻고 싶은 욕망이 꺾이자 점점 더 고독해졌고, 이런 상태는 평생 이어졌다.

가난한 사람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고 싶어 하던 그는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 가르침을 지나치게 문자 그대로 해석했다는 이유로 선교사 자격을 박탈당했다.

10년 동안 900점의 그림과 1100여점의 습작을 남겼지만, 그의 그림은 당시 인정받지 못했다. 불행하게 세상을 떠난 후에야 그의 예술세계는 인정받기 시작했다. 대중의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미술사 측면에서도 인상파, 야수파, 초기 추상화와 표현주의에 영향을 미친 위대한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사랑받고 있는 고흐의 창조성(creativity)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인터넷 시대를 넘어 인공지능(AI) 시대가 열리면서 AI와 예술을 융복합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쉽게 말해, 아트의 영역이던 ‘그림’을 AI가 그리는 식이다. 사례는 숱하다. 2015년 신경 네트워크 알고리즘을 예술에 적용한 베지 연구소(Bethge Lab)의 인공지능(AI)은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사진을 고흐 작作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의 느낌을 살려 그림으로 만들어냈다.

고흐 ‘별이 빛나는 밤(왼쪽)’과 AI가 고흐의 스타일과 패턴을 익혀 그린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사진=베지 연구소]
고흐 ‘별이 빛나는 밤(왼쪽)’과 AI가 고흐의 스타일과 패턴을 익혀 그린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사진=베지 연구소]

구글 프랑스에 있는 ‘구글아트 앤드 컬처연구소(Google Arts and Culture Lab·아트랩)’는 2016년 이후 AI와 예술 장르를 융복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이들의 목적은 인간의 창조성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찾아내 AI에 접목하는 것이다.

이론적 근거는 ‘신경망 이론’이다. 가령, 구글은 2016년 1월에 신경망 모델을 활용해 AI에 1만200권의 책을 읽히고 학습시켰다고 밝히고 문장과 문장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신경망 이론은 인간의 사고를 두뇌 작용의 산물로 보고 이 두뇌 구조를 분석·처리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해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는 이론에서 출발했다. 이 이론이 ‘딥러닝(Deep learning) 알고리즘’으로 발전했고, 오늘날의 AI는 인간의 사고를 어느 정도 구현할 수 있게 됐다. 

2016년 3월 호시 신이치의 공상과학문학상 공모전에 1차 심사를 통과한 AI가  쓴 A4용지 3쪽 분량의 1인칭 소설의 내용을 살펴보자. “그날은 구름이 낮게 깔리고 어두침침한 날이었다. 방 안은 항상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고 있다. 요코씨는 단정치 않은 모습으로 소파에 앉아 의미없는 게임으로 시간을 끌고 있다. 그렇지만 내게는 말을 걸지 않는다. 따분하다. 따분해서 어쩔 수 없다.”

다만, 이 부분에서 우리가 따져볼 건 있다. AI는 사람이 평생을 읽어도 못 읽을 방대한 데이터들 속에서 의미와 패턴을 파악할 수 있다. 빅데이터 분석처럼 천재적인 인간들조차도 할 수 없는 작업을 수행한다.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빅데이터는 인간이 만들어낸 자료다. 상상을 초월하는 방대한 빅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지만 세상에 없던 새로운 데이터를 생산할 수 없다.

AI가 모차르트가 작곡한 곡의 패턴을 익혀 비슷한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모차르트나 베토벤처럼 매번 천재적인 작품을 창조해 내진 못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또다른 모순에 빠진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은 예술가의 행위를 모방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인간은 지상에서 가장 모방적인 인재이며 처음에는 모방을 통해 배우고 즐거움을 느낀다. 

그렇다면 인간의 예술은 모방인가, 창조인가. 따져봐야 할 모순은 또 있다. AI가 이 세상 모든 작곡가의 음악을 학습하고 창의성의 패턴을 분석한 다음 새로운 곡을 만들어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렇더라도 고흐, 모차르트, 베토벤이 발현한 창조성은 인간만의 영역일까.

1993년, 컴퓨터 과학자이자 공상과학 소설가인 버너 빈지(Vernor Vinge)는 「다가오는 기술적 싱귤래리티: 포스트 휴먼 시대에 살아남는 법」이란 논문에서 싱귤래리티(singularity)의 시기를 2005년으로 예상했다.

그는 소설들을 통해 감각과 의식을 구성하는 영혼과 같은 근원이 인간에서 기계로 이동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singularity의 사전적 의미는 ‘특이성’ ‘특이점’이다. 기술에서 싱귤래리티는 쉽게 말해 AI가 발전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기점을 말한다. 이 시대는 과연 올 것인가.

공병훈 협성대 교수  | 더스쿠프
hobbits84@naver.com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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