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생활형숙박시설 정체성 논란
투기 열풍에서 갈등 진원지로
법적 주택 아닌데 주택처럼
사용해온 관례서 기인한 갈등
2021년 정부 “생숙 주택 아니다”
못 박은 뒤 분양자들 아우성
이행강제금 처분 위기에 놓여
갈등 해소할 뚜렷한 방법 없어

생숙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커지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생숙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커지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숙박시설이니 숙박시설로 써라.” 정부가 흔히 레지던스라 불리는 생활형숙박시설(생숙)을 주거용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주거시설인 오피스텔로 용도를 변경하지 않거나 숙박업으로 등록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겠다며 엄포를 놨다. 정부는 이행강제금 부과를 두차례에 걸쳐 유예했는데, 올해 말 그 기간이 끝난다. 

# 문제는 생숙의 용도 변경도, 숙박업 등록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이다. 생숙의 용도를 오피스텔로 변경하는 조건과 숙박업 등록을 위한 조건이 모두 까다로운 탓이다. 실제로 2021년 이후 생숙을 오피스텔로 용도변경한 단지는 전체의 1%도 채 안 된다. 생숙 대란이 예상되는 지점이다.


# 그 대표적인 현장이 마곡 ‘롯데캐슬 르웨스트’다. 평균 657대 1의 기록적인 분양 경쟁률을 기록한 이 단지는 올여름 준공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계약자들이 벌써 집단행동에 나섰을 만큼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서울 마곡지구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올 여름 입주를 앞둔 ‘롯데캐슬 르웨스트’ 때문이다. 롯데캐슬 르웨스트는 876실 규모의 대형 생활형숙박시설(생숙)이다. 5개월 뒤면 준공인 만큼 건물이 제법 올라갔지만, 순조로운 입주는 불가능하다. 

이유는 하나다. 이 단지가 생숙이어서다. 공중위생관리법 제4조는 생숙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손님이 잠을 자고 머물 수 있도록 취사시설을 포함한 시설 및 설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업.” 

법을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호텔과 조금 다르다. 객실 내 취사시설이 있다. 호텔에 주택의 장점을 결합한 셈인데, 우리나라에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기 시작한 2012년 ‘오래 머무는’ 관광객을 위해 도입했다. 그래서 ‘레지던스(Residence)’라고도 불린다.

법적으론 숙박시설이면서도 취사와 세탁까지 가능해 사실상 주거시설과 다름없던 생숙의 묘한 정체성은 결국 문제를 일으켰다. 2020~2021년 부동산 시장에 불었던 ‘투기 광풍’이 생숙에도 영향을 미치면서다. 생숙을 숙박시설이 아닌 주거시설로 다루겠다는 이들이 늘어났던 거다. 

오는 8월 준공하는 마곡지구 롯데캐슬 르웨스트는 입주가 순탄하지 않을 전망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오는 8월 준공하는 마곡지구 롯데캐슬 르웨스트는 입주가 순탄하지 않을 전망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너도나도 부동산 투자에 뛰어들면서 집값이 폭등하자 생숙은 ‘똘똘한 대체 투자처’로 떠올랐다. 그만큼 생숙은 매력이 넘쳤다. 숙박시설이다 보니 주택 수에 포함되지 않았다. 청약통장도 필요 없고 재당첨제한, 거주의무 기간, 전매제한 등에서도 자유로웠다. 종합부동산세를 낼 필요도 없었다. 특히 부동산 업계가 장기숙박과 실거주의 구분이 모호한 점을 이용해 생숙을 주택처럼 사용할 수 있다고 광고하면서 더욱더 많은 돈을 끌어모았다. 

그중 롯데캐슬 르웨스트는 기록적인 돈이 몰린 현장이었다. 2021년 8월 청약 당시 876실을 모집하는 데 57만5950건의 청약 건수가 접수됐다. 평균 657대 1의 기록적인 경쟁률을 보였다. 

호실당 분양가가 10억~20억원에 달할 만큼 고가였는데도 열풍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분양 직후에도 억 단위 프리미엄이 붙은 매물이 거래될 만큼 인기였다. 여기에 입지까지 좋았다. 롯데캐슬 르웨스트 단지는 서울지하철 5호선 마곡역과 9호선ㆍ공항철도 환승역인 마곡나루역 사이에 있다. 롯데캐슬 르웨스트의 천문학적인 경쟁률은 생숙이 그만큼 각광받던 부동산 투자상품이란 방증이었다. 

그런데 여름 입주를 앞둔 수분양자의 표정이 밝지 않다. 높은 경쟁률을 뚫었음에도 오히려 울상을 짓고 있다. 정부가 생숙에 투기 수요가 몰리자 “숙박시설이기 때문에 주택으로 쓰면 안 된다”고 못 박으면서다. 


정부는 2021년 10월 발표한 ‘생활형숙박시설 불법전용 방지 방안’을 통해 신규로 짓는 생숙의 불법 주거 사용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 숙박업 신고를 의무화하고, 주거용으로 사용 시 이행강제금 부과를 결정했다. 

따지고 보면 ‘비정상의 정상화’를 꾀한 셈인데, 문제는 이미 생숙을 분양받은 사람들의 처지가 곤란해졌다는 거다. 롯데캐슬 르웨스트의 경우 분양가가 상당히 높았던 탓에 잔금을 치르려면 대출이 불가피한데, 주요 금융회사가 생숙을 위험상품으로 분류하면서 대출창구를 좁혔다.

그전엔 생숙을 담보로 부동산 대출상품을 제공하던 주요 시행은행들은 “주거는 불법”이란 정부 규제 이후 대출 한도를 대폭 줄이거나 아예 생숙을 취급하지 않고 있다.

어찌어찌 잔금을 치러도 문제다. 계약자 입장에선 주거용으론 쓸 수 없으니 숙박업 신고를 하고 숙박시설로 활용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현행법을 고려하면 비현실적인 선택지다. 개인이 분양받은 생숙을 숙박용도로 운영하는 데 많은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공중위생관리법에 따르면 한 사람이 30실 이상을 소유하거나 한층 전부의 객실 또는 건물 연면적 3분의 1 이상의 객실을 가지고 있어야 숙박업으로 등록할 수 있다. 투자 목적으로 한두채 산 개인이 이런 요건을 충족할 리 없다. 

유일한 방법은 전문 위탁운영사에 맡겨 운영하는 건데, 이 역시 문제가 많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소규모 운영사의 관리 미숙으로 객실 가동률이 떨어지거나 약속된 임대수익을 지급하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앞으로 생숙을 둘러싼 갈등은 더욱 커지고 첨예해질 전망이다. 부동산 광풍이 불던 시기에 사용승인을 받고 분양한 생숙이 올해와 내년에 각각 1만실 넘게 준공할 예정이라서다.

이명진 한국집합건물협회 회장은 “결국 잔금을 치르는 데 사용할 대출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면 싸게라도 팔아야 하는데, 불법주거시설로 낙인찍힌 상황에선 쉽지 않다”면서 “잔금을 못 치르면 수많은 수분양자가 빚더미에 놓이고, 혹여 잔금을 내더라도 숙박시설로 운영하는 게 만만치 않으니 건물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고 경고했다. 

이 때문에 생숙 소유자들은 생숙을 고시원 같은 준주택으로 인정해 주거나, 개정 전 사용승인을 받은 생숙엔 소급 적용하지 말아달라는 등 제도 개선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정부 입장은 “절대 안 된다”이다. 정부의 논리에도 나름 설득력이 있다. 생숙은 아파트나 오피스텔에 적용하는 건축안전 기준에서 빠져 있다. 주거시설로 안전성 문제가 심각하다는 거다. 법적으로 주택이 아닌데 생숙을 인정하면 조세 형평성에 어긋나고, 주차장 문제 등 지역갈등도 부추길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선 “출구 전략을 열어줬다”는 주장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2021년 생숙을 주거용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할 수 있는 시간을 2년이나 줬다. 이행강제금 부과도 2023년까지 2년간 유예했고, 지난해 한번 더 유예를 연장하면서 올해 말까지 숙박업으로 등록할 수 있게끔 길을 터줬다.

그렇다고 정부 대책에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다. 생숙의 용도를 오피스텔로 변경하는 건 탁상공론에서 비롯된 정책에 가까웠다. 용도변경 조건이 계약자 100%의 동의를 얻고 지자체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2년이란 유예기간에 용도를 변경한 생숙이 전체의 1%도 채 안 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박동하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초기 갈등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생숙 전반에서 제도 개선을 적극 검토해야 할 때”라면서 “꼭 숙박시설로의 활용을 고집할 거라면 생숙의 운영 체계를 합리적으로 수립하거나 숙박시설 위탁과정에서 발생할 문제를 예방할 후속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명진 회장은 “생숙 계약자들은 시위를 하든 이행강제금을 내든 선택지가 둘 중 하나인 만큼 전국 곳곳에서 생숙을 둘러싼 대란이 예고돼 있는 상황”이라면서 “이 많은 생숙 건물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건 도시 계획 차원에서도 손해라는 점을 고려하면 후속 대책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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