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랜덤 뽑기 매장에 몰리는 청년들
적은 돈으로 스릴과 성취감 느껴
원하는 제품 나올 때까지 하기도
경기 침체기 유행하는 사행성 게임
인형 뽑기 연장선이라는 해석도

최근 ‘뽑기 매장’이 인기다. 캡슐을 한번 뽑는 데 4000~1만원이 필요한 고급화한 뽑기 매장에 젊은층이 몰려들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열풍을 일으켰던 ‘인형 뽑기’의 불편한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더스쿠프가 젊은층이 많이 찾는다는 서울 잠실의 한 뽑기 매장에 가봤다.

서울 잠실의 한 뽑기 매장에서 고객이 뽑기 기계를 이용하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서울 잠실의 한 뽑기 매장에서 고객이 뽑기 기계를 이용하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최근 문을 연 서울 잠실의 어느 뽑기 매장. 132㎡(약 40평) 남짓한 공간에 뽑기 기계가 2단 3단으로 쌓여 있다. 그 숫자만 301개에 달한다. 각각의 기계엔 다양한 피규어를 담은 캡슐이 들어있었다. 산리오, 짱구, 디지몬, 귀멸의 칼날, 진격의 거인은 기본. 말랑말랑한 어묵이나 과일 모양의 장난감, 실감 나는 형태의 곤충 장난감도 있었다.

이런 뽑기 기계를 흔히 ‘가챠’라고 부른다. 아쉽게도 일본말이다. 기계에 동전을 넣고 핸들을 돌릴 때 ‘찰칵찰칵’ 소리가 나는데, 찰칵찰칵의 일본어가 ‘가챠가챠’인 것에서 유래했다. 요즘 젊은 세대가 이런 뽑기 기계를 모은 가게를 ‘가챠숍’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 국내에서 뽑기 매장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키워드 분석 사이트 썸트렌드에 따르면, 지난 1월 28일부터 2월 27일까지 한달간 온라인(커뮤니티ㆍ블로그ㆍ뉴스)에서 ‘가챠숍’의 언급량은 전년 동기 대비 47.0% 증가했다. 따지고 보면 수십년 전 문방구 앞에 있던 장난감 뽑기 기계를 조금 더 고급화했을 뿐인데, 왜 갑자기 인기를 끌고 있는 걸까.

서울 잠실의 뽑기 매장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일단 비용 부담이 생각보다 컸다. 100원 단위였던 옛 뽑기와 달리 캡슐을 뽑는 가격이 4000~1만원에 달했다. 결제 방법은 꽤 편리했다. 현금 대신 코인을 넣는 구조였는데, 코인 교환기가 ‘카드 결제’를 지원했다. 기자가 신용카드를 넣고 5000원 결제를 클릭하자 100원 크기의 코인 5개가 나왔다.


평소 좋아하던 ‘산리오’ 뽑기 기계에 코인을 넣고 핸들을 돌렸다. 캐릭터 4종이 있었는데 그중 ‘쿠로미’ 캐릭터가 나오길 바랐다. ‘찰칵’ 소리를 내며 핸들이 돌아가자 캡슐이 나왔다. 불투명한 캡슐에 눈을 가져다 대자 쿠로미의 특징인 뾰족한 귀가 빼꼼 보였다. 나도 모르게 “오!”하고 탄성이 나왔다.

기계는 ‘모든 종류의 캐릭터를 모아보세요!’라며 추가 뽑기를 종용했다. “진짜 다 모아볼까”하는 생각에 코인을 더 넣고 뽑기 핸들을 돌렸다. 캡슐을 열어보기 전까진 뭐가 나올지 알 수 없다보니 제법 흥미로웠다.

이곳에서 만난 커플 신원빈(23)씨와 황지영(23)씨도 최근 뽑기에 빠졌다. 둘이 함께 여러 뽑기 전문점을 투어 중이라고 했다. 이들은 8000원 상당의 귀멸의 칼날 캐릭터를 뽑았다. 원빈씨는 뽑기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귀여운 제품들이 정말 많아서인지 원했던 게 안 나오면 더 뽑게 된다. 그냥 진열된 제품을 구입하는 것은 심심하다. 돈을 내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은가. 뽑기는 무슨 제품이 나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돈을 넣고 핸들을 돌리니 제품이 만들어지는 데 참여한 느낌이 든다. 원하는 제품이 나오면 성취감도 든다.”

옆에서 캡슐을 3개 들고 있던 이슬(26)씨는 “내가 원하는 제품이 나오지 않아 아쉬워 여러번 뽑기를 했다”면서 “기대하던 제품이 나오면 ‘돈 쓴 보람’이 든다”고 말했다. 매장 관계자는 “하루 종일 손님들이 정말 많이 찾는다”며 “풀컬렉션(기계의 들어있는 모든 종류의 장난감을 다 뽑는 것)을 하기 위해 기계를 계속 돌리는 이들의 경우 한번에 6만원씩 쓰는 것 같다”고 답했다.

실제로 잠실 뽑기 매장 속 기계 대부분엔 오후 6시 무렵 품절 딱지가 붙었다. 그만큼 많은 손님이 찾았다는 건데, 이곳만 유난히 인기가 많은 건 아니다. 뽑기 매장의 인기는 대형 오프라인 쇼핑몰에서도 체감할 수 있다. 어지간한 유명 쇼핑 성지엔 뽑기 기계가 빠지지 않고 있다. 지하철 역 곳곳에서도 뽑기 기계를 쉽게 볼 수 있다.

뽑기 매장은 창업 아이템으로도 인기가 높다. 소비의 한 축으로 떠오른 2030 세대에게 인기가 많아서다. 무인 매장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점도 창업 아이템으로 떠오른 이유 중 하나다. 4개월 전 노량진에 뽑기 매장을 차린 김명훈(가명)씨는 “무인 매장으로 운영하고 있어 따로 인건비가 들어가지 않는다”며 “중간중간 고장 난 기계만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뽑기 매장의 인기 몰이를 ‘긍정적 관점’에서만 볼 순 없다. 그 인기의 뒤편엔 드리워 있어서다. 경기침체 장기화와 고물가 탓에 적은 돈으로 예측불가능한 즐거움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게 ‘뽑기 매장’의 인기를 부채질했다는 거다.

이영애 인천대(소비자학)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요즘 MZ세대는 일상의 재미를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기침체 탓에 소비를 원하는 것만큼 늘릴 수 없으니 경제적 손실이 적은 뽑기를 통해 소소한 재미를 챙기려 하는 것이다.”

뽑기 매장 이전 유행한 인형 뽑기방도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경기침체기에 급증했다.[사진=연합뉴스]
뽑기 매장 이전 유행한 인형 뽑기방도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경기침체기에 급증했다.[사진=연합뉴스]

실제로 경기침체기엔 결과를 운에 맡기는 사행성 게임이 유행하곤 한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인형 뽑기방이 전국에서 흥행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복권 판매량이 늘어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복권 판매액은 6조7507억원으로 전년(6조4292억원) 대비 5.0% 증가했다. 이 기간 우리나라 경제가 1.4% 성장하는 데 그쳤다는 걸 고려하면 많은 국민이 ‘당첨 대박’을 노렸다는 거다. 팬데믹 충격이 컸던 2021년에도 복권 판매액은 전년 대비 10.3% 늘었다.


임명호 단국대(심리학)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경제가 어렵다 보니 젊은층이 성취감을 느낄 만한 일도 많지 않다. 적은 돈이긴 하지만 뽑기를 통해 성취감을 얻으려 하는 심리가 뽑기 매장의 유행을 확산하고 있다. 사회적 불확실성에 치이고 있는 청년세대를 위로할 정책과 환경을 하루빨리 조성해야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뽑기방 유행도 잦아들 것이다.”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hongsa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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