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우 랩장의 1인칭 책읽기
「네가 이 세상의 후렴이 될 때」
이서영 작가의 포에트리 인덱스
우리가 쌓아가는 시간의 지층들

공간에는 시간이 쌓여 특유의 지층을 만든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공간에는 시간이 쌓여 특유의 지층을 만든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인류세라는 것이 있다. 인류세는 인류가 지구 지질이나 생태계에 미친 시대를 이야기한다. 인류세의 지질은 인류의 흔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핵실험 이후의 방사능, 플라스틱, 닭뼈가 땅에 묻히면서 생겼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면 인류가 생겨난 이래의 흔적이 땅에 남는 것. 그것이 바로 인류세다. 보통 인류세는 환경 오염과 기후 위기를 상징한다. 하지만 나는 인류세를 생각할 때마다 거대하고 오래된 역사책의 측면을 떠올린다.

누구에게나 지층이 있다. 그것은 경험이기도 하고 사물이기도 하다. 레코드가 테이프가 되고 MP3 기기가 스마트폰이 됐듯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것들이 있다. 이런 변화가 경험으로 엮이면 나무의 나이테처럼 자신에게 남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유효한 것들이 있다. 나는 그것이 자신만이 가지는 인류세라고 생각한다. 내게 인류세는 영화관이다.

영화관에 얽힌 내 기억은 영등포에서 출발한다. 영등포의 단관극장을 매주 토요일 어머니와 함께 갔었다. 영화관 한 곳에서 하나의 영화만을 상영하는 극장을 단관극장이라고 한다. 단관극장이 사라진 후에 영화관의 경험은 멀티플렉스로, 가장 스크린이 크다는 왕십리 아이맥스, 그리고 다시 영등포 CGV로 돌아왔지만 단관극장이 주던 특유의 분위기만은 잊히지 않는다.

당시 단관극장은 지금의 멀티플렉스 영화관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정확히 좌석이 정해지지도 않았고 상영 영화도 시간에 따라 달라지기 일쑤였다. 나는 아직도 그 자유분방함을 잊지 못한다.

3월 첫째주 주말. 무궁화호를 타고 3시간 30분을 내려가 광주광역시의 단관극장을 찾아갔다. 광주극장. 1935년에 만들어진 이곳은 이제 몇 남지 않은 단관극장이다. 856석이나 되는 커다란 극장에는 아직도 사람이 손으로 그린 포스터와 간판이 붙어 있다. 이제 광주극장은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만 상영한다.

[사진 | 유미주의 제공]
[사진 | 유미주의 제공]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생기면서 단관극장들은 사라졌다. 사람들은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등장으로 영화의 다양성 시대가 열린다고 말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몇종의 영화만 돌려가며 상영했다. 그렇게 멀티플렉스에 들어가지 못한 다양성 영화가 찾아간 곳은 광주의 단관극장이었다.

오직 단 하나의 영화만을 상영한다는 것 자체가 특별해진 세상.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하지 않는 인디영화, 독립영화를 광주극장에서 상영한다는 걸 생각해보면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이 광주의 단막극장을 지나갔을 수많은 영화와 관객을 떠올린다. 그들이 영화관에 아로새겼을 지층을 상상한다.

매주 토요일 규칙처럼 극장을 찾아갔던 기억은 내게 이야기를 꿈꾸게 해줬다. 이건 그 공간이 가지고 있는 인류세의 힘이다. 인간 고유의 색이 지층에 남듯 사람과 건물, 공간에는 무늬가 남는다. 광주극장에서 만난 무늬는 작은 독립서점이었다. 극장 바로 옆 골목길에 ‘소년의서’라는 독립서점이 있었다. 그곳에서 책 한권을 만났다. 이서영 작가의 「네가 이 세상의 후렴이 될 때」다.

이서영 작가는 광주극장에서 일주일에 3일을 파트타이머로 일한다. 그 외의 시간에는 글을 쓴다. 그의 책은 비선형적(단계성이 없는) 인류세다. 랜덤하게 배치된 일기, 픽션이 되고자 하는 파편들, 시인지 에세이인지 예술 장르로 해석하기 어려운 해체된 글들, 비평적 에세이가 ‘우발적’으로 들어가 있다.

이것은 마치 단관극장이 오히려 다양성을 상징하게 됐듯 우발적이고 규칙성 없이 다양한 글쓰기의 장르를 넘나든다. 시인은 이런 행위를 스스로 포에트리 인덱스(Poetry Index)라고 정의했다. 포에트리 인덱스는 책 속 특정 구간에서 시적 형태를 얻어 개입하는 텍스트를 말한다.

이 책은 결국 이서영 작가의 인류세다. 지층은 퇴적 순서대로 쌓인다. 시간이 마치 숙명처럼 단계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모든 일엔 원인과 결과가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이서영 작가의 작품은 비선형적인 것이고, 이 책은 마치 광주 극장의 정체성을 닮았다.

독립서점 ‘소년의서’. [사진=더스쿠프 포토]
독립서점 ‘소년의서’. [사진=더스쿠프 포토]

단 하나의 영화만 상영할 수 있는 광주극장이 다양성의 상징이 됐듯 이서영 작가의 글도 사실은 작가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영등포 단관극장에 앉아 서사를 쓰는 것을 꿈꾸던 한 사람이 이렇게 기사를 쓰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삶은 언제나 비선형적이다.

광주극장은, 이서영 작가는, 그리고 나는 오늘도 삶을 쌓아간다. 돌발적이고 큰 변화에도 우리 모두 그 자리를 지킨다. 광주에서, 한 극장에서 그리고 구로에서, 영등포에서 비선형적으로 쌓인 시간들은 우리만의 인류세를 만들어 줄 것이다. 책 한권처럼 뚜렷한 무늬가 오늘도 생기고 있길….

이민우 더스쿠프 기자
lmw@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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