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스마트 공장의 진정한 목적
인건비 절감 아닌 생산성 향상
노동자 위한 공장 만드는 데 힘쏟아

“기업 5곳이 모여 스마트 공장을 지으면 설비 구축비용을 50%까지 지원하겠다.” 지난 5일 정부(중소벤처기업부)가 내놓은 중소기업 스마트 공장 지원대책이다. 중소기업들 사이에선 “비용을 낮춰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얘기가 떠돈다. 기계를 도입하면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얄팍한 셈법도 나온다. 과연 스마트 공장은 그런 곳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김익성 동덕여대 교수에게 스마트 공장의 진실을 물어봤다.

제조강국 독일에는 스마트 공장을 모범적으로 운영하는 기업들이 많다.[사진=연합뉴스]
제조강국 독일에는 스마트 공장을 모범적으로 운영하는 기업들이 많다.[사진=연합뉴스]

 “모든 제조 과정을 정보통신기술(ICT)로 통합해 자동화함으로써 경제성ㆍ생산성ㆍ에너지효율성을 강화하고, 제품 불량률을 줄이며, 납품시스템을 최적화하는 지능형 공장.” 스마트 공장의 뜻이다. 이런 유형의 공장은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 제조업의 미래 경쟁력을 견인한다는 차원에서 중요한 학습대상이 아닐 수 없다. 독일은 4차 산업혁명의 진원지이자 제조강국이다. 지멘스ㆍ아디다스 등 스마트 공장을 모범적으로 운영해 성과를 내고 있는 기업도 많다. 한국 중소기업이 독일 스마트 공장을 벤치마킹해봐야 하는 이유다. 

필자는 지난 6월 26일~7월 5일 9일에 걸쳐 중소기업진흥공단 부산경남연수원 주관 하에 일부 독일 기업을 연수차 방문했다. 연수의 임무는 독일의 스마트 공장을 둘러보고, 국내 중소기업이 스마트 공장을 설립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을 배워오는 것이었다. 

■ 벤츠 : 숙련공 키우다 =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사의 신델핑겐 스마트 공장이었다. 고급모델 S클래스와 E클래스, 최고급 세단 마이바흐를 생산하는 곳이다. 미래 자동차 시장을 전기차가 주도할 것으로 판단한 벤츠는 현재 자율주행과 자동차 내에 탑재되는 다양한 IT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 등에 글로벌 연구네트워크를 구축해 변화무쌍한 시장 조건과 고객 요구에 유연하면서도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술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이를 위해 벤츠는 기업 내부 인적자원이나 산학협력을 활용하는 것은 물론, 전세계의 창업아이디어를 지원해 새로운 혁신을 꾀하고 있다. 일종의 보육센터인 ‘Lab 1886(벤츠사 설립연도가 1886년)’에선 벤츠의 글로벌 혁신 아이디어가 시장에 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Leadership 2020’ 커뮤니티를 통해선 직원과 부서가 정보를 공유해 시장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노동력 존중 받는 스마트 공장 

신델핑겐 스마트 공장도 이렇게 유연하고 빠른 시장 대응을 위해 탄생했다. 이 공장에선 사람이 하기 힘들거나 반복적인 공정을 로봇이 맡고 있는데, 특이한 점이 몇가지 있다. 먼저 기계마다 다양한 독일 제조기업들의 명칭이 선명하게 보인다. 스마트 공장 시설이 벤츠뿐만 아니라 외부 로봇제작사, 대학ㆍ연구소, 컨설팅사의 합작품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공장에선 대시보드(자동차 계기판)가 1만6000개 모듈에 의해 조립된다. 이는 고객이 1만6000개의 대시보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나라마다 S클래스 생산모델이 조금씩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S시리즈 고객으로선 자신만의 차를 선물받는 셈이다. 

주목할 점은 또 있다. 이 공장은 ‘스마트’를 표방했지만 ‘무인화’를 지향하는 건 아니었다. 복잡한 조립공정은 사람이 통제했다. 그들은 단순작업자가 아니었다. 8개의 조립라인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2시간 일한 후 15분 휴식하는데, 휴식 후엔 다른 조립업무로 교체 투입됐다. 종일 반복 작업을 시키지 않는다는 거다. 인간이 ‘기계화’ 되는 걸 막고, 직원들이 다양한 조립기술을 익히도록 해 자연스럽게 숙련공을 키워내는 거다. 협약에 따라 연장이 가능하지만 기본 근로시간은 주 35시간이며, 연간 50일까지 휴가를 쓸 수 있다고 했다.

■ 보쉬 렉스로스 : AI와 사람의 완벽한 조합 = 두번째 방문지는 정밀공작기계와 자동차 부품 등을 생산하는 보쉬 렉스로스(Bosch Rexroth)사였다. 1795년 설립된 이 기업은 2001년 보쉬그룹에 인수됐다. 필자가 방문한 곳은 렉스로스의 독일 내 18개 공장 중 특수 유압펌프와 밸브 등을 제조하는 공장이다. 

최첨단 제품을 만드는 공장은 아니었지만,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제조업의 뿌리공정이라 할 수 있는 주물(쇳물을 주형 속에 넣어 원하는 모양의 금속제품으로 만드는 일)을 직접 만든다는 점이었다. 사양산업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베트남 등 동남아로 이전한 한국의 주물공장과 달리, 이곳에선 ‘스마트 공정’을 통해 주물이 생산되고 있었다. 생산 설비들은 벤츠와 마찬가지로 독일 전역에서 주문 제작된 로봇기계들로 구성돼 있었다. 시스템 통제 역시 사람의 몫이다. 천공과 세척 등 단계별 공정은 중앙통제 방식으로 진행됐다. 

국내에선 주물 생산공장이 거의 대부분 해외로 이전됐다.[사진=연합뉴스]
국내에선 주물 생산공장이 거의 대부분 해외로 이전됐다.[사진=연합뉴스]

가장 돋보인 것은 공정의 연결성과 유연성이다. 인체공학적 수동 스테이션과 완전 자동생산 시스템의 완벽한 조합은 빠르면서도 안정적인 생산시스템의 근간이었다. 작업자의 동작을 철저하게 연구해 공장을 설계하고 설비를 배치한 결과로 보인다. 실제로 이 공장의 숙련공들은 최종 조립 공정의 중심이었다. 인공지능(AI)이 장착된 지시컴퓨터가 통제를 했지만 필요하거나 중요할 땐 숙련공이 공정을 컨트롤했다. 벤츠와 마찬가지로 작업자는 기계가 아니었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납품업체와의 상생 과정이었다. 이 공장의 숙련공들은 만족할만한 품질을 얻기 위해 납품사에 꾸준히 학습지도를 했다. 단가를 후려치면서 협력업체에 갑질을 하는 우리나라 대기업이 배워야 할 부분이다. 

■ 파버-카스텔 : 작업자 보호하라 = 세번째 방문지는 세계적인 문구류제조업체 파버-카스텔(Faber-Castell)사였다. 파버-카스텔은 최고의 품질, 최고의 디자인, 최고의 효용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매년 20억여개의 (색)연필을 생산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연필 제조업체다. 전세계 9개국에 제조공장이 있고, 22개국에 마케팅ㆍ유통 자회사가 있으며, 120여개 국가에 대리점을 두고 있다. 

파버-카스텔은 귀족이 경영하는 가족기업이다. 이 때문에 그들은 외부투자를 받지 않는다. 필자가 방문했을 땐 흥미로운 상황이었다. 사업 승계자를 뽑지 못해 외부 전문경영인(CEO)을 초빙해 경영을 맡긴 상태였기 때문이다. 

다시 회사 이야기를 해보자. 파버-카스텔은 나무를 베어 연필을 만드는 기업이다. 그래서 벤 나무만큼 나무를 다시 심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연필을 사용하는 게 아이들인 만큼 연필 제조에 들어가는 페인트는 수성페인트를 고집한다. 여러모로 기업이 지켜야 할 윤리적 품격을 중시하는 듯했다. 

김익성 교수 연수팀은 6월 26일부터 9일간 독일 스마트 공장을 탐방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김익성 교수 연수팀은 6월 26일부터 9일간 독일 스마트 공장을 탐방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 회사의 스마트 공장 분위기도 비슷했다. 각 공정은 자동화돼 있지만, 작업자가 상시적으로 기계나 로봇에 의해 이뤄지는 공정을 통제하거나 관리ㆍ감독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특히 공장 내에는 노란 작업선이 그어져 있었는데, 안내자는 우리에게 노란 작업선을 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자칫 작업자가 다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벤츠와 보쉬 렉스로스 공장에서도 본 듯한 노란 작업선은 독일 제조공장의 일반적인 안전규범인 듯했다. 다만 파버-카스텔의 스마트 공장에선 이를 각별히 강조했다.  

■ 뮬러 : 장인 양성소 = 네번째 방문기업은 뮬러(Mueller GmbH)사였다. 전통 목각인형을 만드는 곳으로 최고의 글로벌 브랜드 인지도를 자랑하는 독일의 미니 히든챔피언이다. 소규모 전통 공예기업이 세계를 무대로 뛰고 있다는 것 자체로 특이한 곳이었다. 뮬러는 전통 목각인형이 크리스마스나 부활절과 같은 특정 시기에만 판매되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제품을 다양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내수 판매 비중이 75%로 높지만 25%는 북미ㆍ아시아 등 해외 각국에 나라에 수출하고 있다. 

파버-카스텔와 마찬가지로 가족기업인 뮬러는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흥미롭게도 가업을 관통하는 핵심은 ‘장인정신’이다. 3대 사장은 목공예 부문에서 독일 내에서도 몇 안 되는 존경받는 장인으로, ‘골든 마이스터(Golden Meisterㆍ마이스터 자격 취득 후 50년간 해당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며 일한 사람에게 주는 자격)’다. 현재 사장인 그의 아들 역시 목각인형 마이스터다. 숙련기술을 필요로 하는 예술작품을 만들기 때문에 일부 공정에 한해서만 자동화 설비가 갖춰져 있다. 그마저도 작업자와 설비의 적절한 조화를 중시했다. 

독일의 스마트 공장들이 우리 기업들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우선 스마트 공장을 만들기 위한 자동화 설비는 주문생산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생산 제품별 차별화를 꾀할 수 있다. 그러려면 솜씨 좋은 설비 제조업체와 스마트 공장 전문 컨설팅업체는 필수다. 

공정을 연구하는 것도 필수 과정이다. 현재의 프로세스가 최단 공정인지 혹은 작업자의 인체공학적 특징과 자동화 과정이 맞아떨어지는지 등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당연히 프로세스를 만드는 과정의 핵심은 기계가 아니라 근로자다. 그래야 각 공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기계와 작업자와의 조화가 가능하다. 해당 기업의 적극적인 협력과 소통, 내부 교육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스마트 공장을 만드는 목적이 무엇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독일 기업들은 인간이 하기 힘들고, 위험하며, 단순 반복적인 작업들을 자동화했다. 반면, 사람의 손이 필요한 곳에는 반드시 인력을 배치했다. 독일 기업들이 스마트 공장을 만든 이유가 ‘단가 낮추기’가 아니라 ‘생산성 향상’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왜곡된 스마트 공장과 진실

자동화 공정에 따라 투입되는 디지털 정보를 전사적으로 관리ㆍ통제할 수 있는 ‘전사적 자원 관리시스템(ERP)’도 필요하다. 스마트 공장 운영을 위한 교육비, 설비의 보수ㆍ정비 등에 들어갈 부수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국내 기업은 ‘스마트 공장’을 자동화의 구현장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자동화와 무인시스템이 곧 선진공장이라는 편견도 있었을 것이다. 독일의 스마트공장은 그렇지 않았다. 자동화라는 ‘편리함’을 통제하는 건 사람이었다. 우리가 독일 스마트 공장을 배워야 하는 이유다.
글 : 김익성 동덕여대 교수 skim7@dongduk.ac.kr
정리 :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