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옥 세계여성이사협회(WCD) 한국지부 회장

‘한국 금융업계 최초의 여성 CEO’ ‘푸르덴셜 글로벌 지사 최초의 여성 CEO’ ‘여성리더들의 멘토’…. 손병옥(66) 세계여성이사협회(WCD) 한국지부 회장을 일컫는 수식어는 이것 말고도 많다. 지난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손 회장은 이런 화려한 수식어에 머무르지 않고 “여성들의 발전을 위해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2년 전 WCD 한국지부를 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손병옥 회장의 혜안을 들어봤다.  

손병옥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은 여성들의 발전을 위해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사진=천막사진관]
손병옥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은 여성들의 발전을 위해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사진=천막사진관]

40% vs 2.4%. 북유럽 국가인 노르웨이와 우리나라의 여성임원 비율이다. “이사회에 여성임원이 많을수록 기업의 실적과 주가가 좋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숱하지만 우리나라의 유리천장은 높기만 하다. 재계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손병옥 세계여성이사협회(WCD) 한국지부 회장이 2016년 WCD 한국지부를 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더 많은 여성인재들이 사회에 진출하고 이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 WCD는 어떤 단체인가요?
“WCD는 여성 등기이사들의 전 세계 모임입니다. 전세계 80여개 지부에서 4000여명의 이사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사회 여성임원들의 지식과 시각을 공유할 수 있는 네트워크이자, 전 세계 기업지배구조의 모범사례를 연구하는 등 필요한 교육을 공유하는 장입니다.”

✚ 한국지부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2016년 40명으로 출발한 한국지부의 구성원은 현재 70여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유럽국가나 일본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여성임원할당제 도입 필요해

✚ 지난해 1주년 포럼의 주제는 ‘여성의 경영 참여 확대와 여성 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W-ESG) 투자’였습니다. 11월 예정인 2주년 포럼의 주제는 무엇인가요.
“올해는 ‘여성임원할당제’ 도입과 ‘더우먼펀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22일 ‘여성임원할당제, 세계적 추세와 우리의 과제’라는 제목으로 국회에서 세미나도 개최했습니다. 2주년 포럼은 그 연장선상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 국내 500대 기업 여성임원 비율은 3%가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성임원할당제’는 여성들의 경영 참여에 좋은 기회가 될 듯합니다.
“‘여성임원할당제’는 상장기업 또는 일정 규모의 비상장 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여성 임원을 일정 비율 이상 포함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를 통해 노르웨이는 40%, 스웨덴과 미국은 각각 36%, 20%까지 여성임원 비율을 끌어올렸습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턱없이 모자랍니다. 30대 기업으로 범위를 좁히면 여성이사 비율은 1.6%로 더 줄어듭니다. 아직 갈 길이 먼 게 사실이지만 조금씩 다양한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건 고무적입니다.”

 

✚ 최근엔 최운열(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표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최운열 의원은 지난 1일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상장기업 이사회에 특정 성性의 이사가 3분의 2를 초과하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표했습니다. 여성이사 확대를 통해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하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인위적으로 여성임원을 확대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물론 우려도 존재합니다. 여성인재 풀이 다양하지 못한 기업 같은 경우 ‘여성임원할당제’ 때문에 준비 안 된 여성을 임원으로 승진시켜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히로 미즈노 일본 공적연금(GPIF)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준비 안 된 남성들이 임원의 자리에 오르고 있느냐’고요.”

✚ 아직 재계에선 한자릿수지만 현 정부는 장관급 여성 비율을 30%까지 올리겠다는 공약을 실천 중입니다.
“1기 내각의 여성 장관 비율이 27.8%로 역대 최대였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일반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점입니다. 기업도 여성임원 이사가 30%에 도달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을 해줘야 합니다. 정부 차원의 독려도 필요하고요.”

✚ 여성임원이 늘어나면 기업엔 어떤 변화가 생기나요.
“기업문화가 유연하게 바뀌면 기업의 실적과 주가 또한 비례해서 성장한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의 기업을 분석한 결과, 이사회에 최소 3명 이상의 여성이 있는 기업은 5년새 자기자본이익률(ROE) 10%, 주당순이익(ESP) 37%가 높아졌습니다. 이사회에 여성이 없는 기업은 같은 기간 ROE가 1%, ESP가 8% 떨어졌습니다.”

✚ ‘더우먼펀드’도 간략하게 설명하신다면.
“WCD 한국지부를 설립한 목적 중 하나는 더 많은 여성들이 이사회에 진출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또 하나는 부진한 경제성장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의 대안으로 여성친화적인 기업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더우먼펀드’의 목적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여성을 동등하게 대우하고, 여성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도입하고 실행하는 여성친화적 기업에 장기적으로 투자해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리겠다.’” 

 

✚ 어떤 방식으로 운용되나요.
“자산운용사와 ESG 평가전문기관이 구축한 평가모델을 기반으로 기업을 선별해 투자할 예정입니다.” 

✚ 정부와 사회의 이런 노력에도 한국의 유리천장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출산과 육아를 정부 차원에서 해결해주길 바라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정부와 기업, 개인이 모두 노력해야 해요. 정부는 보육시설을 확대하고, 기업이 출산과 육아 관련 법규를 잘 지킬 수 있도록 지도감독을 해야 합니다. 기업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관련 법규를 준수하고, 여성에게도 공평한 기회와 평가를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모든 것을 비용이라 여기지 말고 ‘투자’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생 스스로 컨트롤해야


✚ 여성 개인에겐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요?
“냉정하게 얘기해볼까요? 많은 여성들이 출산이나 육아 문제 앞에 서면 ‘언제 그만두지’라면서 퇴사부터 생각합니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철저한 직업의식을 갖고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쉽지 않다는 건 알지만 포기부터 하진 말라는 얘기입니다.”


✚ 재계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가끔 저를 선임했던 미국 본사의 입장을 생각해봅니다. 그들에게 저는 유색인종인 데다가 여성이었고, 나이도 그렇게 젊지 않았습니다. 전공도 금융이 아닌 영문학이었고요. 하지만 저를 믿어준 만큼 이 악물고 열심히 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의 여성 후배들에게 누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지고 여성의 특장점인 감수성과 유연성, 공감능력 등을 잘 활용하길 바랍니다. 기회는 분명 있을 것입니다. 유리천장? 의식하지 마십시오. 아예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내 인생을 내 스스로 컨트롤하기 바랍니다. Girls Be Ambitious!”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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