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가 지켜야 할 윤리

손혜원 의원의 선의를 이해하고 싶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사진=뉴시스]

김대중 정부 시절 ‘윤태식 게이트’로 알려진 정·관계 로비사건으로 나라가 뒤숭숭했다. 1987년 홍콩에서 윤태식이 부인 수지 김을 살해했는데, 안기부와 짜고 자신은 ‘밀입국 미수사건’의 피해자라고 조작했다.

그는 한국에 돌아와 1998년 9월 지문인식 기술을 개발하는 패스21이라는 벤처기업을 설립해 사업가로 변신했다. 벤처열풍에 힘입어 고속 성장했지만 검찰이 수사에 나서면서 그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정치인과 고위관료들이 줄줄이 재판정에 섰다.

당시 검찰은 패스21 주주 308명을 대부분 불러 조사했다. 패스21 주식을 보유한 언론인들은 거래가 거의 없었는데도 시세(호가) 보다 싸게 샀다는 이유를 들어 처벌을 받았다. 투자액수가 500만~1000만원에 불과하고, 시세차익을 취하진 않았지만(대부분 주식은 휴지가 됐다) 언론 윤리를 위반했다는 올가미에 걸려 형사 처벌과 함께 몸 담았던 회사에서 떠나야 했다. 그만큼 법의 잣대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손혜원 국회의원(무소속)이 매입한 목포 부동산을 놓고 투기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경제학이나 경영학에서는 투기라는 말을 별로 쓰지 않는다. 주로 부동산에 대한 과도한 열기를 비판하기 위해 한국에서 많이 쓴다. 흔히 사전정보를 갖고 단기 차익을 겨냥한 매매를 투기라고 한다. 그러나 투자 역시 매매차익을 겨냥한다는 점에서 투기와 투자를 구별하기는 모호하다. 흔히 ‘주식투자, 부동산투기’라고 하지만 한탕을 노린다는 측면에서 보면 주식시장의 선물옵션이나 가상화폐를 투기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손 의원이 비난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공公과 사私에 대한 구별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목포시청에 따르면 ‘근대문화유산공간’으로 지정된 목포 구도심 일대의 부동산은 지난해 10월까지 1년 동안에만 평균 31%가 상승했다. 손 의원의 조카들과 지인들, 그리고 손 의원 남편이 이사장으로 있는 재단이 매입한 집들의 가치도 더불어 올랐다.

손 의원은 2017년 9월 9일에는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관광객이 줄 서서 밀려다니는 곳으로 만들 자신이 있다”며 “절대 집을 팔지 마시고 꼭 지키고 계셔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이후 손 의원은 법 제도 개선이 아니라 직접 주민들로부터 부동산을 대량매입하며 자신의 주장과 배치되는 행보를 보였다.

두번째는 부동산들이 있는 목포 구도심이 근대문화유산공간으로 지정되는데 국회의원이 가진 공적 권한이 사용됐느냐의 문제다. 결국 손 의원 가족·인척·지인의 이득과 국회의원의 공적권한이 연결됐다. 공직자윤리법 2조의 이해충돌방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손 의원 부친의 독립유공자 인정, 국립중앙박물관에 지인 딸 채용 권유나 미술품 매입강요 등도 국회의원의 권한을 사적으로 사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백지신탁한 회사 명의로 목포 문화재 거리에 있는 건물 2채를 사들인 것도 해명을 해야 한다.   

2011년 이명박 정부에서 있었던 일이다.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내정된 이재훈 후보자 부인이 소유하고 있다는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의 일명 ‘쪽방촌’이 논란이 됐다. 지도층 인사가 최하층인 기초수급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쪽방촌에 까지 손을 대느냐에 대한 도덕성 시비가 일면서 결국 낙마하고 말았다. 재개발이 예정된 지역에 대한 투자가 현행법에 저촉될 일은 아니었고, 액수도 크지 않았지만 국민의 눈높이가 용납하지 않았다.

투기를 했다고 손 의원을 나무랄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의 말대로 목포 발전과 문화를 위한 선의善意로 이해하고 싶다. 그러나 국회의원 신분을 활용해 얻은 정보와 영향력으로 투자를 했느냐, 인사 개입과 미술품 매수압력을 넣었느냐 하는 점은 샅샅이 들여다봐야한다. 행여 직권남용을 한 증거가 발견되면 엄벌을 피할 수 없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된 사법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이유도 강제징용 사건에 개입했다는 직권남용혐의가 큰 부분을 차지했다.

손혜원의 말에는 독기가 서려있다. 내부고발자로 나선 기획재정부 사무관 출신 신재민씨에 대해서는 돈이 필요해서 그런 일을 저질렀다며 ‘양아치짓’이라고 매도했다. 국정감사에서는 선동열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감독에게 막말을 퍼부어 공분을 사기도 했다. 선수시절 국보급 투수로 불리던 선동열은 그날의 수모 때문인지 국가대표 감독직을 사퇴했다. 자기 확신이 강한 캐릭터가 비즈니스에서는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한 없이 관대하고, 남에게는 가시 돋친 화법을 구사하는 손 의원을 보면 정치인의 품격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품위를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윤리적 책임을 나몰라라 한다면 공직에서 물러나 자유롭게 살면 된다. 국회의원 한 명에 연간 6억원의 세금이 든다. 공적인 일에 전념하라고 국민이 모아주는 ‘피 같은’ 돈이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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