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화폐 무용론 긍정론 팽팽
경제효과 정치적 해석 안돼

한 정치인은 지역화폐의 효용성을 높게 평가한다. 어떤 국책연구원은 지역화폐의 부가가치는 사실상 없다고 단언한다. 어느 쪽 주장이 옳은지는 단언할 수 없다. 지역화폐는 더 검증을 받아야 한다. 다만, 지역화폐에 ‘보이지 않는 효용성’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대형마트가 갖고 있던 기득권, 신용카드가 누리던 기득권을 지역화폐를 통해 약화시킬 수 있다는 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지역화폐의 ‘보이지 않는 경제효과’를 분석했다. 

지역화폐의 효과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거세다.[사진=연합뉴스]
지역화폐의 효과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거세다.[사진=연합뉴스]

2020년의 마지막 날.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이 ‘지역화폐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이란 제목의 최종 보고서를 발행했다. 지난해 9월 “지역화폐의 경제효과는 제한적이고, 오히려 예산 낭비 부작용이 크다”는 내용의 요약본으로 정계를 뜨겁게 달궜던 그 보고서의 최종판이었다. 요약본이 나왔을 당시 가장 강하게 비판한 이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였다. 

그는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근거 없이 정부 정책을 때리는 얼빠진 국책연구기관이다. 해당 연구가 나온 경위를 엄정히 조사하고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

이재명 지사는 성남시장 시절(2010년 7월 1일~2018년 3월 15일) 지역화폐인 ‘성남사랑상품권’을 선보였다. 도지사로 선출(2018년)된 이후엔 ‘경기지역화폐’를 민선 7기 핵심 도정사업으로 삼았다. 자신이 펼쳤거나 펼치고 있는 지역화폐정책의 효과가 부정적이라고 비판하니 이 지사로선 논쟁을 벌이는 게 당연했다. 

물론 이 지사의 대척점에 선 이들도 있었다. 대표적 인물은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었다. “지자체에 지역화폐가 확산하면 의도했던 장점은 줄고 단점만 심화할 수 있다. 중앙정부가 나서 교통정리를 하는 것이 필요하고, 조세연의 보고서는 이 점을 우려해 중앙정부를 향해 제언한 내용이다.”

연구단체들도 ‘지역화폐 갑론을박’을 펼쳤다. 경기연구원은 조세연의 요약보고서를 두고 “무리한 논리 전개와 과장으로 (만들어진) 섣부른 보고서”라고 비판했다. 이 연구원은 한발 더 나아가  경기도 소규모 업체 3800곳의 매출 변화를 분석한 자료를 토대로 “지역화폐를 통해 각 업체가 45만원에 이르는 추가매출(분기 기준)을 올렸다”고 주장했다. ‘지역화폐의 경제효과는 제한적’이라는 조세연의 주장을 뭉개놓은 셈이다. 

도대체 누구 주장에 설득력이 있을까. 먼저 조세연이 펼친 ‘지역화폐 무용론’의 근거를 살펴보자. “지역화폐는 발행한 지자체 안에서만 쓸 수 있다. 그렇다고 국민이 쓸 수 있는 돈이 늘어나는 건 아니다. 결국 다른 지역의 매출 감소가 뒤따르게 된다. 다른 지자체로 소비가 유출되는 걸 막기 위해선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지역화폐를 운영할 수밖에 없다. 각 지자체가 정해진 소비 총량을 두고 나눠 갖는 ‘제로섬 게임’이다.”

이런 이유로 “지역화폐 발행을 통해 발생하는 경제적 부가가치는 사실상 없고, 발행과 관리비용 등 손실만 남는다”고 조세연 측은 주장했다. 이렇게만 보면 지역화폐 발행을 당장 멈춰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지역화폐 긍정론자는 이런 주장을 ‘단편적인 시각’이라고 깎아내린다. 지역화폐를 국가경제의 효용성으로만 따질 게 아니라 수도권으로 돈이 집중되는 구조를 극복하기 위한 ‘균형정책’의 일환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지역화폐가 ‘수도권 중심 경제’를 극복하는 수단이라는 건데, 좀 더 쉽게 설명해보자. 우리나라 모든 지역의 ‘역외소비율(지방 거주자가 해당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소비하는 비율)’은 50%를 넘어섰다(한국은행). 

지방에 사는 소비자가 신용카드로 소비하는 1000원 중 500원 이상이 해당 지역이 아닌 다른 시ㆍ도로 빠져나간다는 의미다. 그중 가장 많은 돈이 쏠린 지역은 당연히 서울이었다. 전 국민의 절반이 수도권에 몰려 살고 있는데, 지방 거주자까지 서울에서 소비를 하고 있다는 거다. 이런 문제점을 지역화폐가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화폐의 효용성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자체들은 지역화폐를 대형마트나 유흥업종에서 사용할 수 없도록 조례로 규정해놨다. 이 때문에 지역화폐를 사용하면 골목상권으로 ‘돈’이 흘러들어갈 수밖에 없다. 유통공룡에 집중된 경제를 해소하는 데 지역화폐가 ‘특별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참고 : 여기서 논의를 좀 더 넓게 펼쳐보면, 카드사가 갖고 있던 ‘기득권’을 지역화폐를 통해 무너뜨릴 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후술한다.] 

유승경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지역화폐를 도입하더라도 시장 규모가 커지거나 생산 효율성이 높아지지 않을 것이란 지적은 타당하다. 하지만 소득과 소비의 지역적 불균형을 바로잡는 데 지역화폐는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소상공인을 지원하는 효과도 분명히 있다. 정부가 계층 간 지역 간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지역화폐를 사용한다면 쓸모없다고 단정할 순 없다.” 

지역화폐 전문가 양준호 인천대(경제학) 교수도 유 원장과 같은 맥의 주장을 펼쳤다. “지역화폐의 정책 효과를 분석하는 보고서는 건조한 숫자 놀음에 불과하다. 지역화폐의 진가는 거리를 걸어봐야 드러난다. 무엇보다 지역화폐는 지역시민의 소비패턴을 획기적으로 바꿀 가능성을 입증해 냈다. 그 어떤 정책보다 비용 대비 효과가 우수하다.” 

자, 지역화폐 생태계를 순전히 소비자 입장에서 풀어보자.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시민 A씨의 일상을 통계 지역화폐의 효용성을 검증해 봤다. 

■Before 지역화폐 = 지방도시에 거주하는 A씨의 지갑을 보자. 신용카드만 4장(국민 신용카드 평균 보유개수 3.6장ㆍ금감원 조사, 2018년 기준)을 갖고 있다. 현금은 거의 없다. A씨가 카드를 주로 쓰는 이유는 혜택이 많아서다(결제수단 선택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인 1위 경제적 이익 53.3%ㆍ한국소비자원 조사).

실제로 A씨가 신용카드로 물건을 살 때마다 포인트가 적립된다. 할인 제공, 무이자할부 등의 부가 서비스도 있다. 생필품을 사고 싶은 A씨는 대형마트를 찾을 때가 많다. 지역의 경계선을 넘어서라도 대형마트를 간다. 이곳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수개월의 무이자 할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커피 한잔을 즐길 때도 프랜차이즈 카페를 주로 찾는다. 매달 한번씩은 무료 커피를 주거나 할인 혜택이 쏠쏠하기 때문이다. A씨의 신용카드가 여러 개인 것도 순전히 혜택 때문이다. 주유비, 통신비, 쇼핑 등에 따라 각각의 할인이나 캐시백 혜택이 큰 카드를 각각 사용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A씨의 소비패턴도 카드사의 혜택에 맞춰져 있었다. 

■After 지역화폐 = A씨 지갑엔 결제수단이 여전히 많다. 신용카드뿐만 아니라 숱한 ○○페이를 휴대전화 잠금화면만 열면 사용할 수 있다. 최근엔 하나 더 늘었다. 지자체가 발행한 지역사랑상품권이다. 카드 결제가 연계된 충전식 전자상품권이다.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연결은행을 등록한 뒤 카드를 발급받아 금액을 충전한 후 직불카드처럼 사용할 수 있다. 

지역화폐를 몇번 써본 A씨의 소비패턴은 확 바뀌었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결제금액의 10%가량이 포인트로 적립됐기 때문이다. 그간 어떤 카드사도 제공하지 않던 놀라운 혜택이다. 

대형마트에선 물건을 살 수 없다는 한계가 분명 존재하지만 동네마트나 전통시장을 찾으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외식을 할 때도 가급적 동네 맛집을 위주로 탐색했다. [※참고 : 이런 변화는 A씨만의 얘기가 아니다. 경기도가 지역화폐 이용 도민 818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80.0%가 “지역화폐 때문에 평소 가던 대형마트 대신 동네가게를 이용했다”고 응답했다.]  

A씨가 지역화폐로 결제하면 상인들도 반겼다. 결제 수수료가 신용카드보다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수수료는 소상공인의 매출과 직결되는 문제다. A씨는 생각했다. “신용카드든 지역화폐든 혜택이 좋은 결제수단을 고르면 그만이다. 어쨌거나 소비자에게 또 하나의 결제수단이 생긴 건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A씨는 정치권과 학계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갑론을박이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지역화폐 발행은 ‘쓸 만한 결제수단’이 하나 더 등장한 셈이라서다. 지역화폐를 쓰면서 지방 소멸이니 경제적 분절分節이니 하는 복잡한 담론을 늘어놓을 필요가 없는 이유다. 

사실 눈여겨봐야 할 통계는 따로 있다. 부산시, 군산시, 인천시 등의 지역화폐 누적 발행액이 1조원을 돌파했다는 점이다. 최소한 이 지역의 골목에선 지역화폐가 신용카드의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 사무총장은 “지역화폐가 처음 등장했을 땐 ‘과연 쓸 사람이 있겠느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최근 들어 가입자 수와 거래 규모가 크게 늘면서 보편화하고 있다”면서 “정책적으로 국민들에게 뚜렷한 혜택을 주고 있기 때문에 골목상권 생태계에도 기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점에서 지역화폐의 함의含意는 상당하다. 대형마트의 ‘유통 기득권’, 신용카드의 ‘결제 기득권’을 지역화폐를 통해 약화할 수 있어서다. 지역화폐가 대형마트와 카드사의 점유율을 뺏으면 그들 역시 시민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런 경쟁은 소비자 편익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어찌됐든 시민 입장에선 지역화폐가 선순환의 고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지역화폐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쪽에선 이렇게 꼬집는다. “지역화폐는 ‘캐시백’ 혜택이 없으면 성장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출처가 뭔가.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이다. 실제로 2019년까지 행정안전부는 지역화폐 발행액의 4.0%를 지원했다. 지난해부턴 코로나19를 이유로 발행액의 8.0%를 지원했다. 국비 지원이 끝나면 캐시백 혜택도 줄어들 공산이 크다.” 

하지만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유통 대기업이나 카드사의 혜택 역시 마찬가지다. 가령, 카드사의 포인트ㆍ마일리지는 자영업자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을 당겨쓰는 구조다. 정부가 카드 수수료 개편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가맹점 결제 수수료 수입이 줄자 ‘고혜택 카드’가 사라지고 있는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자영업자가 지역화폐를 통해 자생할 수 있다면 카드사의 입지 역시 흔들릴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결국 지역화폐는 정치적 계산으로 따질 문제가 아니다. 국내총생산(GDP)의 규모가 늘어나든 그렇지 않든, 지역화폐를 통해 소비자인 ‘국민’은 혜택을 보고 있다. 소비는 심리이고, 소비자의 지갑이 두꺼워지면 경제도 좋아진다. 대형마트와 골목, 지역화폐와 신용카드가 경쟁하면서 함께 성장하면 금상첨화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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