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소관위에 묶인
자영업자 손실보상제

한국은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확산세를 비교적 빠르게 잡은 나라로 손꼽혔다. 사망자도 미국이나 유럽 등에 비해 훨씬 적어 ‘K-방역’이란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 이면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황금시간대에 영업을 못 하거나 문을 아예 닫아야 했던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눈물이 숨어 있다. “법적 테두리 안에서 자영업자의 손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던 이유다. 

실제로 정부와 국회에선 ‘자영업자 손실보상제’를 둘러싼 논의를 진행 중이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지난 1월 손실보상제를 공론화한 이후엔 그 논의에 속도가 붙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진전은 없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일찌감치 쏟아낸 관련 법안들은 소관상임위에 묶여 있다. 자영업자들이 “해도 너무한다”며 곡소리를 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자영업자 손실보상제의 진행 상황을 체크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코로나19 방역조치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의 손실을 소급적용으로 보상해주는 법안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소상공인연합회 제공]
소상공인연합회가 코로나19 방역조치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의 손실을 소급적용으로 보상해주는 법안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소상공인연합회 제공]

코로나19란 무시무시한 재난이 터졌다. 정부는 ‘방역을 위해’ 영업하지 말라고 했다. 어떤 업장은 아예 문을 닫게 했고, 어떤 업장은 문은 열었지만 손님을 받을 수 없도록 조치를 취했다. 업장 사장님들은 자의로 문을 닫은 게 아니었지만 임대료는 꼬박꼬박 내야했다. 온갖 고정비를 내며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택배기사나 배달기사로 변신한 사장님도 적지 않았다. 그동안 방역의 최전선에서 안간힘을 써온 자영업자들이 분노와 억울함을 표출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물론 다른 말도 나온다. 한편에선 “코로나19로 힘든 게 자영업자뿐이냐”며 “지원책이 많은데 왜 억울해 하냐”고 반론을 편다. ‘착한 임대인 제도’가 있지 않느냐는 말도 나온다. “여러 지자체가 임대료를 낮춘 이들에게 세금감면 혜택을 주겠다고 나섰고, 대통령까지 ‘착한 임대인 운동을 더 확산시킬 방법을 찾으라’며 거들지 않았느냐는 거다. 지금까지 4차례의 재난지원금이 지급됐다는 것도 반론의 근거다. 자영업자들이 피해 보상을 받을 만큼 받았으면서 우는소리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두 정책이 자영업자의 숨통을 틔우는 데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무엇보다 착한 임대인 제도가 확산하려면 ‘기꺼이 임대료를 덜 받겠다’는 임대인의 의지가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국가가 자영업자에게 보호막을 제공하는 대신 임대인에게 부담을 떠넘겼다는 근본적인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재난지원금도 마찬가지다. 지원금의 범위는 50만~500만원으로, 임대료·인건비·관리비 등의 막대한 고정비를 내느라 허덕이는 자영업자들의 피해를 보상하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숭숭 뚫린 허점 때문에 그나마도 받지 못한 자영업자들이 숱하다는 점도 문제였다. 

 

세계 각국의 정책을 보면, 우리나라의 자영업 보호책이 미흡하단 걸 알 수 있다. 일본은 매출액이 코로나19 전에 비해 50% 이상 감소한 사업자나 중소기업에 최대 200만엔(약 2043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최대 6개월치의 임대료를 300만~600만엔(약 6128만원) 내에서 지급하고, 휴업·단축영업에 동참한 업체에는 ‘휴업협력금’을 지자체마다 별도로 지원한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급여보호프로그램(PPP)’을 실행 중인데, 중소업체가 대출금을 인건비·임대료·대출이자 등에 사용하고 일정한 고용·급여 수준을 유지하면 대출금은 갚지 않아도 된다. 대출 범위는 1000만 달러(약 111억원) 미만, 평균 월급의 최대 2.5배까지다. 

영국은 ‘자영업자 소득지원제도(SEISS)’를 통해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에게 지난 3년간 월평균 수익의 80% 한도에서 3개월치를 최대 7500파운드(약 1158만원)까지 현금으로 지급한다. 우리나라 자영업자들이 ‘손실보상제 도입’을 촉구하면서 목소리를 높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자영업자를 위한 손실보상제 논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국회에서 손실보상제 논의를 공론화한 건 지난 1월이다. 정세균 당시 국무총리가 “손실보상을 법제화하라”고 기획재정부를 압박하면서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은 손실보상법·협력이익공유법·사회연대기금법 3가지를 담은 일명 ‘상생연대 3법’ 제정을 추진한다고 발표했고, 상당수 국회의원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유사한 내용의 법안을 마구 쏟아냈다. 

여당에선 이동주·민병덕·강훈식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이 대표적이다. 이동주 의원 외 21명은 ‘코로나19 감염병 피해 소상공인 등 구제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중소벤처기업부장관 소속으로 ‘손실보상위원회’를 만들고 요청 시 30일 내에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이 골자다. 민병덕 의원 외 62인이 발의한 법안의 핵심은 집합금지업종의 경우 매출 손실의 70% 내에서, 그 외 업종은 50~ 60%까지 보상하는 것이다.

임대료·공과금 등의 비용도 소급해서 감면·인하한다. 강훈식 의원 등이 발의한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은 집합제한 조치를 한 경우 그 기간에 소요된 비용을 보상하는 내용이다. 자체 휴업한 경우에도 보상을 지급한다.

 

야당에서는 최승재(국민의힘) 의원 외 15인이 ‘소상공인 기본법 일부 개정안’에 영업 손실보상과 세금·공과금·사회보험료 감면 등을 담았다. 심상정(정의당)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코로나바이러스 등 감염병 재난에 따른 손실 보상 및 피해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은 재난 상황에서 행정조치로 발생한 손실을 보상하는 내용이 골자다.

물론 이게 다가 아니다. 올해 쏟아진 보상 관련 법안만 15개가 넘는다. 대부분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 개정안으로, 영업제한으로 인한 손실을 법적으로 보상하는 내용이다. 여기에 임대료·전기세 등의 고정비를 감면해주거나, 대출이자를 감면·인하해주는 법안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여야 가리지 않고 앞다퉈 법안을 냈음에도 진전된 건 아무것도 없다. 모두 소관위 심사 단계에 멈춰 있다. 더 큰 문제는 자영업자 손실보상제를 언제 어떻게 시행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4월 27일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이하 산자위) 법안심사 소위에선 여야 갈등으로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여야만 맞서고 있는 게 아니다. 

정부와 국회도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입은 피해의 보상 시점을 언제로 잡느냐는 ‘소급적용 여부’를 두고서다. 국회에선 여야 가리지 않고 소급적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주를 이룬다. 4월 25일에는 각기 소속이 다른 민병덕·최승재·심상정 의원 3명이 ‘손실보상 소급적용을 위한 3당 의원 공동요구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손실보상 ‘소급적용’이 관건

하지만 정부의 입장도 완강하다.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4월 28일 국회 산자위에 출석해 “재난지원금 13조원은 소상공인이 입은 피해를 소급지원한 것”이라며 “앞으로의 손실은 보상하겠지만 소급적용은 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소급해서 지원받는 이와 못 받는 이의 균형 문제도 있다”며 “손실보장을 어떤 기준으로 지급할 것인지 설계가 잘못되면 심각한 사회적 갈등이 올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사실 소급적용 기준을 잡는 건 중요한 일이다. 보상 대상을 법에 명시하면 수정이나 정정이 쉽지 않은 데다,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은 영영 지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손실보상제를 도입하면 고통받는 소상공인 자영업자가 보상받는 범위가 훨씬 좁아질 수 있다”는 정부의 우려도 설득력이 있다. 

손실보상제를 법제화하기 위해선 보상 적용 기준을 정확하게 잡아야 한다. [사진=뉴시스]
손실보상제를 법제화하기 위해선 보상 적용 기준을 정확하게 잡아야 한다. [사진=뉴시스]

김소영 서울대(경제학부) 교수는 “기준을 좁게 잡으면 누락되는 이들이 생기고, 넓게 잡으면 지원 목적과 달리 예상치 못한 이들까지 포함될 수 있어 정확히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경제학부) 교수도 “유연하지 못한 법제화로 인해 지원보다는 오히려 규제에 초점이 맞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원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예상 비용이 월 1조~27조원에 달하는 만큼 국채 발행 등 예산을 조달할 방안을 찾아야 해서다. 김소영 교수는 “정부가 언제, 어떻게, 얼마나 지원할지 구체적인 방안을 정하는 게 시급하다”고 짚었다. 

문제는 이렇게 논의할 게 많은 시점에서 정부와 국회가 뭘 하고 있느냐다. 서울 마포구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이상모 대표는 4월 26일 기자회견에서 “지난 6개월 동안 올린 매출이 1300만원에 불과하다”며 “임대료조차 내지 못하는 처참한 상황에 놓였다”고 호소했다.

김임용 소상공인연합회장 직무대행도 “소상공인은 더이상 물러날 곳도 돈 빌릴 곳도 없는 처지”라며 “무조건적인 책임만 강요당하는 소상공인에게 손실보상 소급적용 법제화는 희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국회가 시간을 소모하는 동안, 하루하루 빚만 늘어나는 소상공인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다는 얘기다. 

목소리 내는 국회, 반대하는 정부

5월이 되면 국회는 ‘권력의 시간’에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 4월 말~5월 초 여야의 당 대표 경선은 ‘대선’으로 가는 열차의 출발점이 될 거다. 그러면 자영업자 손실보상 논의는 어느샌가 흐지부지될 수 있다. 지난 1월에 공론화했던 자영업자 보상 논의가 4·7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실종된 것과 같은 이치다. 정부와 국회는 과연 자영업자를 위한 손실보상제를 만들어 낼까.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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