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2021년 대장동 사업 추적
■ 등장인물 주장 들어맞지 않는 구석 많아
■ “수익 예측 할 수 없었다” 이재명 주장 ‘글쎄’
2011년 성남시 3000억 수익추정치 제시
■ “왜 민간에…”“이재명 설계” 야권 주장
대장동 개발 맥락 파악하지 않은 허술한 비판
■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근거 없어

‘화천대유’란 낯선 회사에서 출발한 ‘대장동 개발 사업’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대선 정국에 터진 뜨거우면서도 몹시 불편한 이슈이다 보니, 주장과 반론, 또다른 반박이 이어지면서 ‘진흙탕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대장동’에 얽힌 모든 등장인물의 주장은 단편적이다. “대장동 프로젝트는 수익을 예상할 수 없었다” “왜 공영개발이 아닌 민간자본을 끌어들였나” 등등의 주장은 관점을 길게 잡지 않으면 사실관계를 따질 수 없다. 그래서 더스쿠프(The SCOOP)는 ‘대장동을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처음 나온 2004년부터 지금의 논란을 역추적했다. 17년 추적의 결과는 흥미롭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주장도, 야권의 공격도, 사업자들의 주장도 빈틈이 숱했다. 

대장동 개발을 둘러싼 이야기는 2004년부터 시작됐다.[사진=뉴시스]
대장동 개발을 둘러싼 이야기는 2004년부터 시작됐다.[사진=뉴시스]

지하철 8호선 단대오거리역 4번 출구로 나가면 성남시 수정구 단대동이 나온다. 뒤편으론 고가도로가 지나가고 앞에는 수년간 주차장으로 쓰던 넓은 평지가 있다. 평지의 끝에선 언덕과 연결되는 하얀 구름다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곳은 1990년대 성남 ‘제1공단’이 있던 땅이다. 202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뜨겁게 부상한 이슈 ‘화천대유’와 ‘대장동 개발’을 이해하려면 이 ‘평지’의 본질부터 알아야 한다.

성남시 남쪽에 있는 용인시와 경계를 맞댄 분당구 ‘대장동’과 성남의 본 시가지(이하 시가지)에 있는 수정구 ‘제1공단’이 무슨 연관이 있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장동 개발’을 말할 때 ‘제1공단’ 이야기를 떼놓을 수 없다. 두 땅은 ‘결합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재개발이 추진되던 사업지이기 때문이다.

‘제1공단’에서 차를 타고 30분이면 판교 아랫동네인 ‘대장동’에 닿는다. 조금씩 ‘미니 신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대장동은 울창한 산에 둘러싸인 수경 공원을 품고 있다. 아직도 공사가 진행되는 건물이 많아 중장비가 도로를 달리고 있지만 대장동엔 이미 입주한 아파트 단지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뜨거운 이슈 때문인지 ‘화천대유’ 의혹을 제기하는 현수막도 숱하게 걸려 있었다. 

대장동 사업과 화천대유가 문제가 되는 건 결국 ‘돈’ 때문이다. 대장동 사업을 끌어온 특수목적법인(SPC) ‘성남의뜰’의 지분 1%를 차지한 화천대유란 신생 회사가 어떻게 4000억원 이상의 수익금과 같은 규모의 분양 대금을 챙길 수 있었느냐란 의문이 문제의 단초가 됐다.

[※참고: 성남도시개발공사는 5% 지분을 투자한 위례 사업에서 수익금 50%를 얻었다. 지분에 관계없이 수익 배분 구조에 따라 다른 개발 사업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의문은 ‘정치공방’으로 이어졌다. 야권에선 당시 사업을 추진했던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연관돼 있을 것이란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화천대유 재직자 중에서 야당 국회의원이나 판검사의 자녀들이 툭툭 튀어나오면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때부터 이어진 ‘토건세력의 비리’란 주장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렇다고 이재명 지사의 모든 해명이 다 정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대장동 사업을 언급하며 “부동산 가격 폭락사태가 벌어질지 여부를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며 “사후적으로 리스크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반박했지만, 사업의 전후를 냉정하게 따져보면 이 주장엔 허점이 적지 않다. ‘토건세력의 비리’란 주장을 깨뜨리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이 지사를 이 사업에 엮으려는 쪽의 주장에도 문제가 많다. 

도대체 ‘대장동’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더스쿠프가 ‘대장동 사업’이 처음 시작된 2004년부터 이 사건을 역추적했다. [※참고: 대장동의 흔적을 2004년부터 추적했기 때문에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기관의 명칭은 당시 기준을 따랐다. 가령,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명칭은 성남시장과 도지사를 혼용했다.] 

■2004~2005년 개발 시작 = 2004년 성남시엔 도시가스도, 상수도도 설치되지 않은 지역이 있었다. 대장동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판교 개발이 한창이던 때 남쪽에 있는 ‘대장동’에는 100동이 채 되지 않은 주택들이 모여 있었다. 아주 작은 동네였지만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이 있었고 개발도 필요했다.

문제는 개발 방식이었다. 판교 신도시 사업을 추진하던 대한주택공사는 ‘대장동’을 판교 난개발을 막기 위한 지역으로 점찍었다. 판교 가까이 있는 대장동에 우후죽순으로 건물이 들어서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산세가 좋고 물이 흐르는 지역의 특징을 살려 ‘전원주택단지’로 개발하자”는 대한주택공사의 제안은 2004년 말 ‘2020년 성남도시기본계획’에 포함돼 건설교통부에 제출됐다. 2005년 6월 건교부는 해당 계획을 승인했다.

하지만 반년도 되지 않아 계획은 엎어졌다. 2005년 11월 성남시 일부 공무원들이 투기꾼과 합세해 대장동 인근 땅을 사들인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사건 관계자들이 입건됐고 건교부는 ‘대장동 사업’을 중지했다. 

■2005~2009년 허공에 떠버린 대장동 =‘대장동 사업’은 중지됐지만 건교부가 승인한 ‘2020년 성남도시기본계획’은 살아있었다. 이 계획에 따르면 대장동은 ‘시가화市街化’가 될 수밖에 없는 지역이었다. [※참고: 시가화는 노후되거나 낙후된 지역 또는 녹지 지역을 개발해 인가人家나 상점이 많이 늘어서도록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그러나 건교부가 ‘사업 중지’를 결정하면서 공공개발의 가능성은 사라진 상태였다. 이에 따라 성남시 역시 나중에 ‘보상 문제’가 커질 것을 우려해 ‘행위제한조치’를 요구했다. 보상을 노린 건물 인허가를 내주지 않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다.

결국 대장동은 2005년 11월부터 2010년 7월까지 ‘묶인 땅’으로 전락했다. [※참고: 성남시의 대장동 행위제한 시점은 2010년 7월 13일까지였다. 공교롭게도 이때는 이재명 성남시장이 취임한 직후였다. 이 이야기는 후술한다.] 

대장동 땅을 소유하고 있는 주민들을 중심으로 ‘민간 개발’ 움직임이 일긴 했지만 성남시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대장동 개발의 밑그림을 새로 그리기 위한 작업을 진행했다. 성남시가 밑그림을 다시 그리려는 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성남시 일대에서 크고 작은 개발이 진행 중이었다. 성남시 중원구와 분당구 경계엔 ‘신축 시청사’가 생기고 있었고 새 청사가 위치할 여수동과 도촌동에는 새로운 주택단지가 들어서는 중이었다. 

대장동까지 이어진 변화의 바람

이런 상황에서 위례 신도시까지 개발된다면 성남에 새롭게 만들어지는 주택 단지는 수를 헤아리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수두룩했다. 성남시로선 변화하는 주택 환경에 맞춰 ‘대장동’ 계획도 다시 짤 필요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성남시는 2008~2009년 대장동 사업을 위한 타당성 조사를 진행했고, 공교롭게도 그 무렵 대한주택공사가 다시 성남을 찾아왔다. 2005년 고꾸라졌던 ‘대장동 개발’ 사업에 다시 발을 담그기 위해서였다. 

■2009~2010년 MB와 LH, 그리고 이재명 = 2009년 10월 1일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성남시는 “타당성 조사 용역 결과와 LH의 제안이 크게 차이가 없다”는 이유로 도시계획자문회의를 거쳐 LH의 ‘대장동 개발’ 제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성남시는 대장동의 민간개발을 추진하던 쪽에도 ‘제안서를 내라’고 통지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오지 않았다. LH로선 ‘부전승’한 셈이었다.

LH가 사업을 맡으면서 2005년 중단됐던 ‘대장동 프로젝트’가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 같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2008년 대권을 잡은 이명박 대통령이 “LH는 민간과 경쟁할 필요 없다”고 말하면서 진통이 시작됐다.

성남시의회 일부 의원이 이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성남시가 굳이 LH의 손을 들어줄 필요가 없다”고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LH 대신 민간 개발을 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대장동 개발을 ‘민간에 맡길 것이냐’ ‘LH에 맡길 것이냐’는 공방이 오가는 와중에 성남시는 또 한차례의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 2010년 6월 이재명 성남시장이 당선됐고 같은 달 LH는 “대장동 사업 제안을 철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LH가 ‘빠지겠다’고 선언한 2010년 6월 28일은 대장동 ‘행위제한’ 해제 시점을 한 달도 채 남기지 않은 때였다. 사업자 선정이 늦어진다면 행위제한이 풀리는 7월 14일을 기점으로 대장동에 보상을 노린 건물이 마구잡이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2010~2012년 수익 3000억원의 진실 = LH가 ‘대장동’ 사업에서 손을 떼자 모든 개발 기회가 다시 열렸다. 토지 소유주를 주축으로 한 ‘민간개발’ 가능성이 여전히 살아있었고, 2010년 당선된 이재명 성남시장의 ‘공영개발론’도 만만찮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이재명 시장의 공영개발 주장은 ‘대장동’에만 국한한 건 아니었다. 앞서 언급했던 성남 수정구 ‘제1공단’ 땅도 개발해야 했고 1960년대부터 급하게 만들어진 성남 시가지의 ‘골목’ ‘도로’ ‘낡은 주택’도 손봐야 할 대상이었다. 

이 시장으로선 갈림길에 놓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 모든 개발을 ‘민간’에 맡기면 개발 이익은 모두 민간이 가져가기 때문이었다. 성남시가 나서 ‘공영개발’을 하면 그만이었지만 예산 등 발목을 잡을 만한 변수가 수두룩했다. ‘대장동’은 그런 갈림길에 놓인 사업 중 하나였다. 

어쨌거나 ‘이재명 시정’은 대장동 등을 공영개발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예상대로 돈이 문제였다. 성남시는 ‘채무 지급 유예(모라토리엄)’ 선언으로 긴축 경영을 시작한 상황이었다. 당연히 예산안을 심의하는 시의회가 고개를 저었다. 사실 LH가 대장동에서 발을 빼면서 공영개발의 명분도 흔들렸다.

제1공단과 대장동의 상관관계

당시 성남시의회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대장동의 공영개발을 반대했다.  “LH든 민간사업자든 참여할 때는 사업성에 메리트를 갖고 오는 겁니다. (중략) 거기에서 얻어가는 건 사업성에 대한 수익입니다. 개발이익이에요. 그런데 그 주체들이 계획을 제안했다가 손을 뗐어요. 거기에는 사업성 문제도 있고 자금조달 문제도 있습니다. 우리시(성남시)가 지금 현재 LH가 바라봤던 그런 측면에서 사업성 문제와 재원조달 문제에 대해서 과연 LH보다 자유로울 수 있느냐. 이게 굉장히 근본적인 문제예요. 자신 있습니까?(2011년 7월 12일 이재호 시의원)” 

이 때문인지 공영개발을 원한 성남시는 시의회를 설득하기 위해 ‘수익금 카드’를 줄기차게 내세웠다. 2011년 성남시의회 회의록을 살펴보면 성남시가 시의회를 설득하기 위한 카드로 ‘수익금’을 언급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당시 언급한 수익 규모는 ‘3000억원’ 이상이었다. 

“지방채 발행 계획액을 말씀드린 것 중에는 대장동 개발사업비로 4500억원을 발행해 분양 후 수익금을 상당액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추정 수익금은) 3000억원 이상입니다.(2011년 12월 8일 문경수 성남시 예산법무과장).”

이런 예상 수익을 바탕으로 성남시는 ‘지방채’를 발행한 후 대장동 공영개발에 착수하려 했다. 하지만 성남시의회는 ‘수익을 확신할 수 없다’면서 지방채 발행을 부결했다. 대장동을 개발하려는 성남시로선 길이 좁아졌다. 100% 공영개발이 물 건너간 상황에서 자금 확보를 위해선 민간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대장동 사업을 둘러싸고 여야가 날선 공방을 계속 하고 있다. 사진은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왼쪽)과 대장동 개발사업을 비판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사진=뉴시스]
대장동 사업을 둘러싸고 여야가 날선 공방을 계속 하고 있다. 사진은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왼쪽)과 대장동 개발사업을 비판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사진=뉴시스]

이런 상황 속에서 분당구 ‘대장동’과 수정구 ‘제1공단’ 부지가 함께 개발될 수 있는 단초가 생겼다. [※참고: 앞서 언급했던 결합개발이 바로 이것이다.] 2012년 4월 1일 도시개발법이 개정되면서 동일한 지자체 내에 있는 공장 등의 이전부지와 수익성이 발생할 수 있는 지역 등 2개의 사업 구역을 1개의 구역으로 보는 게 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되면 대장동에서 나온 수익으로 제1공단 개발도 가능했다. 당시 ‘이재명 시정’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2012~2014년 성남도시개발공사의 등장 = 자! 우리가 처음 출발했던 ‘단대오거리역’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성남 시가지를 둘러보면 특징이 하나 있다. 도로 인근을 제외한 주거 지역 대부분이 언덕으로 이뤄졌다는 거다. 평지로 이뤄진 분당구와 다르게 시가지는 언덕을 오르내려야 하는 지형이다.

공원을 만들어도 대부분 ‘언덕 꼭대기’에 있어 산에 올라가야 녹지를 만날 수 있다. 수정구 제1공단의 땅은 시가지에 드문 ‘평지’에 있었고 도로 가까이에 있어 접근성도 좋았다. 이 때문에 많은 주민이 공원화 계획에 호응했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접근성이 좋은 시가지 산성대로에 최초의 평지 공원이 생기는 거였다. 

문제는 ‘제1공단’이 성남시 소유가 아니라는 데 있었다. 공장 용도가 폐기됐지만 공원으로 개발하기 위해선 ‘매입 비용’이 필요했다. 성남시는 2012년 개정된 도시개발법을 근거로 수익이 나올 수 있는 ‘대장동’과 ‘제1공단’을 결합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성남시에서 나온 수익을 다시 성남시에 쏟는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민간에 맡긴다면 불가능한 계획이었다.

대장동 ‘개발 수익’으로 제1공단을 공원화한다고 가정해도 ‘대장동 개발’을 추진하기 위한 마중물이 필요했다. 바로 지방채 4500억원이었다. 하지만 ‘LH도 손 뗀 사업’이라는 굴레와 ‘더 이상 부채를 낼 수 없다’는 논리에 막혀 성남시의 단독 재정으로 대장동 개발을 추진하는 건 어려웠다. 

지방채 발행이 번번이 거절당하자 성남시는 시의회에 2012년 말 민간이 합류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어 대장동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제안했다. 물론 SPC를 설립하더라도 두가지 갈림길이 있었다. 성남시가 직접 출자하거나 도시개발공사 등을 만들어 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이었다. 성남시는 직접 출자 대신 ‘도시개발공사’ 설립을 주장했다. 

 

당시 시의회에서도 “왜 하필이면 도시개발공사를 만들어야 하냐”는 질문이 나왔고 성남시는 “앞으로 나오는 수익으로 또다른 수익사업을 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대응했다. 성남시가 직접 출자할 경우 개발 사업에서 수익이 발생해도 또 다른 개발 사업에 활용하는 건 쉽지 않았다.

재개발 사업은 산적해 있는데 개발 수익금을 다시 성남 재개발에 투입하는 게 어려워진다는 얘기였다. 결국 2013년 ‘도시개발공사’ 설립에 반대했던 시의회 의원 중 일부가 뜻을 바꿨고 성남도시개발공사는 2014년의 시작과 함께 출범했다.

■2014~2015년 화천대유의 등장 = 성남도시개발공사는 2년간 꾸준히 언급됐던 SPC 설립에 힘을 쏟았다. 2015년에 진행된 사업자 시행공모 과정에서 화천대유가 포함된 하나은행 컨소시엄이 SPC에 합류했고, 명칭을 ‘성남의뜰’이라 정했다. 대장동 개발 수익을 1공단 공원화에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적자가 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상황이었다. 

시의회에서도 이 점을 줄기차게 지적했고 성남도시개발공사는 ‘확정수입’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저희가 (사업자) 공모지침서에 그런 내용을 넣었습니다. 우리가 기본계획 범위 내에서 사업을 시행하면서 제시안을 받았습니다. 확정수입입니다(2016년 1월 26일 황호양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SPC에 합류한 민간기업의 기회 

성남도시개발공사의 주장과는 별개로 SPC에 합류한 민간기업은 ‘기회의 문’이 활짝 열렸음을 짐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대장동 사업은 추진 중이었고 인근의 판교 신도시는 당시 집값이 고공행진 중이었다. 이제 와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을 운운하는 건 그래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 

■2004~2021년 흐름의 통찰 = 이처럼 대장동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을 살펴보면 한번 엎어졌던 사업을 끌고 가기 위한 행적들이 눈에 띈다. ‘투기꾼’으로 인해 중단됐던 대장동 사업은 오도 가도 못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가 ‘LH의 제안’으로 다시 시작됐다.

LH가 다시 1년 만에 손을 털고 나가자 이 사건은 ‘공영개발’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근거로 사용됐으며, 성남시는 이를 설득하기 위해 ‘3000억원’이라는 예상 수익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성남시의회가 개발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지방채’ 발행을 막자 ‘민관 합동 개발’이 방안으로 떠올랐고, ‘도시개발공사’가 설립됐다. 

대장동 사업은 이미 2011년부터 수천억원대의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거란 예상이 나오고 있었다. 2004년 흘러나간 개발 계획으로 투기꾼이 몰렸던 땅이기도 했다. ‘부동산 개발’로 한몫 챙겨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이 흐름을 주시하며 민간이 끼어들 수 있는 자리를 노리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이런 흐름을 꿰뚫어 봐야 ‘대장동 개발’을 둘러싼 의혹과 반박의 빈틈을 찾아낼 수 있다. 이재명 지사는 화천대유 논란이 터졌을 때부터 일관되게 “수익을 가늠하기 어려웠던 사업”이라고 해명했지만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성남시는 끊임없이 의회에 ‘수천억원대 수익이 발생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화천대유가 주장하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화천대유가 대장동에 발을 들여놨을 땐 모든 게 타오를 때로 타오른 상태였다.

대장동 의혹을 이 지사와 연관 지으려는 주장과 논리에도 빈틈이 숱하다. 무엇보다 성남시가 민간자본을 끌어들이고 도시개발공사를 만든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방채 발행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붙을 수 있는 줄은 ‘민간 자본’과의 합작뿐이었다. 

화천대유에서 출발한 ‘대장동’ 의혹은 검찰 등 사정기관의 몫으로 넘어갔다. 느닷없이 회계사의 녹취록이 나오고, 갖가지 뒷말은 여전히 쏟아져나오고 있지만 전말은 결국 밝혀질 것이다. 문제는 ‘대장동’이 끝이 아니란 점이다. 개발할 곳은 여전히 남아있고 불·편법을 불사하는 투기세력은 기회의 문을 찾아 헤맬 것이다. 대장동 사업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이유다. ‘화천대유’는 시작도 끝도 아니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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