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같이읽다

아이스팩 재활용 방안을 고민한 가톨릭대 ‘짱구’팀은 “학생들의 생각은 정책이 될 수 없다”는 기성세대의 고정관념을 깨는 데 성공했다. 짱구팀이 제시한 아이디어가 부천시의 실제 정책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이런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건 형식적인 해결책이 아닌 ‘필요성’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더스쿠프가 아이스팩 재활용 정책을 제시한 남궁민(소비자주거학과), 조현아(경영학과), 이혜인(영어영문학과) 학생의 얘기를 들어봤다.

✚ 아이스팩 재활용 방안을 찾는 게 쉽지 않아 보였어요.
남궁민 학생(이하 남궁민) : “네 맞아요. 일반적으로 알려진 모든 방법을 다 시도해 봤지만 아이스팩 재활용에 적합한 방법을 찾는 건 쉽지 않았어요. 정말 다양한 시도를 했던 것 같아요.”

✚ 어떤 과정이 있었나요.
이혜인 학생(이하 이혜인) : “아이스팩 재활용에 도전해 본 블로거를 인터뷰하고, 다른 지자체는 아이스팩을 어떻게 재활용하고 있는지 조사했죠. 저희보다 앞서 아이스팩 재활용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팀이 제시했던 재활용 방법까지 다시 실험해봤어요.”

조현아 학생(이하 조현아) : “아이스팩에 들어있는 고흡수성수지를 활용한 수경재배 키트, 아이들을 위한 촉감놀이 키트 등 아이스팩을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시도해봤죠. 하지만 아이스팩 재활용을 위한 명쾌한 답을 얻지는 못했어요.”

✚ 어떤 이유였나요.
남궁민 : “여러 지자체의 아이스팩 재활용 정책은 재활용보다는 수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았어요. 수거한 아이스팩을 모두 재활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죠.”

조현아 :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도 영향을 미쳤어요. 촉감놀이와 수경재배 키트는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솔루션이었어요. 하지만 코로나19로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시간이 늘어난 탓에 현장에서 적용하기 어려웠죠. 아이스팩을 이용한 찜질팩은 계절상 맞지 않았어요. 디퓨저도 만들어봤지만 향이 2~3일밖에 가지 않아 방향제 기능을 하기엔 부족했죠.”

이혜인 : “수경재배 키트, 촉감놀이 키트, 디퓨저 모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어요. 아이스팩을 재활용한 이후에도 고흡수성수지를 처리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았죠. 오히려 이를 폐기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환경오염을 초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스팩을 새롭게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고민한 이유죠.”
 

✚ 재활용 아이스팩 조끼는 어떻게 생각하게 됐나요.
조현아 : “처음에는 아이스팩 재활용을 둘러싼 인식을 어떻게 개선할지를 고민했어요. 아이스팩을 개인 수준에서 재사용할 수 있는 방법과 폐기 방법을 알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너무 뜬구름을 잡는 것 같았어요. 홍보 방안을 만드는 것 외에는 제시할 정책도 딱히 없었죠. 그러던 중 사회적기업 모어댄 최이현 대표를 만나고 방향을 찾았어요.”

2015년 창업한 모어댄은 폐차의 ‘가죽시트’를 활용한 가방과 지갑으로 조명을 받고 있는 업사이클링 스타트업이다.

남궁민 : “최이현 대표는 형식적인 해결방법이 아닌 진짜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야 지속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 이후 생각의 방향이 달라졌죠. 저희가 만들 정책이 진짜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지, 그 정책을 지속할 수 있을지를 더 깊이 생각했어요. 그 결과, 재활용 아이스팩 조끼라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어요.”

✚ 더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나요.
이혜인 : “진짜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찾다가 부천시에 노인 인구가 많다는 걸 떠올렸어요. 어르신들은 외부 온도의 변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해 여름철 열사병 등 온열 질병에 취약하다는 걸 알고 있었죠. 자연스럽게 어르신들을 위한 ‘아이스 조끼’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 사실 아이스 조끼는 시중에서도 판매하는 제품 아닌가요.
조현아 : “그렇죠. 하지만 어르신을 위한 아이스 조끼는 없었어요. 시중에 판매하는 제품은 어르신이 입기에 불편해 보였어요. 야외에서 일하는 남성의 체형에 맞춰져 있어서 그런지 크기가 컸고 무게도 꽤 나갔죠. 가격대도 3만~4만원으로 생각보다 저렴하지 않았어요.”

남궁민 : “안전성 문제도 있었어요. 아이스팩을 많이 넣을 수 있는 제품이 더위를 식히는 데 무조건 좋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어르신들은 차가운 아이스 조끼를 장시간 착용할 경우 몸에 무리가 갈 수 있기 때문이죠. 어르신들의 특성을 반영한 ‘재활용 아이스팩 조끼’를 만든 이유예요.”

✚ 적용대상을 노인들에서 폐지 줍는 어르신들로 바꾼 이유는 뭔가요.
이혜인 : “타깃을 더 구체화한 거예요. 재활용 아이스팩 조끼가 진짜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고민하다가 폐지 줍는 어르신들이 떠올랐어요. 부천시에서도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이 적지 않거든요. 폐지를 가득 실은 손수레를 끌고 가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무척 힘들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남궁민 : “부천시에 문의해보니 총 306명의 폐지 줍는 어르신들이 계셨어요. 부천시에서 2년에 한번씩 어르신들에게 쿨스카프와 안전조끼 등 제공하고 있더라고요. 총 3600만원의 예산 중 약 1800만원을 여름에 쓴다는 것도 확인했죠.”

✚ 폐지 줍는 어르신 가운데 안전조끼를 입으신 분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조현아 : “더위 때문에 안전조끼를 입는 어르신들은 많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그 얘길 듣고 재활용 아이스팩 조끼를 안전조끼에 결합하면 착용률을 높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세 학생의 생각은 적중했다. 짱구팀의 재활용 아이스팩 조끼를 긍정적으로 본 부천시가 ‘얼음조끼’라는 이름으로 정책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부천시는 일자리 센터를 통해 700여벌의 재활용 아이스팩 조끼를 제작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재활용 아이스팩 조끼는 코로나19 선별진료소, 녹지과, 예방접종 센터 등에 보급됐다. 아이스팩 재활용은 물론 지역 일자리 창출 효과까지 올린 셈이다.

✚ 재활용 아이스팩 조끼가 실제 정책으로 이어졌어요.
남궁민 : “우리 팀의 아이디어가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어요. 지역사회와 아이스팩 재활용에 일조할 수 있게 돼 무척 기뻤어요.”

이혜인 : “저도 그 말에 공감해요. 우리가 만든 정책모델의 가능성과 활용성을 증명받았다는 것에서 큰 기쁨을 느꼈어요. 하지만 수업이 6월에 끝난 탓에 재활용 아이스팩 조끼의 사용 후기를 직접 듣지 못한 건 아쉬움으로 남아요.”

조현아 : “저희가 정책 대상으로 삼은 폐지 줍는 어르신들에게 재활용 아이스팩 조끼가 제공되지 않았다는 것도 서운해요. 재활용 아이스팩 조끼가 아이스팩 재활용의 종착점이 아니라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조끼에 활용되는 아이스팩은 그 뒤에 어떻게 되겠느냐는 의문이 남아요. 단순히 ‘아이스팩을 몇번 더 쓰자’는 것이 우리 팀의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 한 학기 동안 소셜리빙랩 수업에 참여한 소감이 궁금해요.
이혜인 : “재미있는 수업이었지만 정말 쉽지 않았어요. 가이드라인이 없는 프로젝트에 참여해본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항상 불안했어요.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많은 사람이 힘을 합치면 해결 못 할 문제는 없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조현아 : “사회문제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됐어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끄집어내고, 발로 뛰어다녀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누군가 해결하겠지 하고 외면하면 사회문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으니까요.”

남궁민 : “사회문제 해결은 필요성을 찾는 과정이었어요. 왜 필요한지, 정말 필요한지를 고민하는 데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죠. 다양한 의견을 듣고,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결국 사회문제를 해결할 해법은 사람과 현장에 있었어요. 소셜리빙랩 수업을 통해 당연하지만 중요한 가치를 알게 된 것이 가장 뿌듯해요.”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