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대 LINC+ 사업단 공동기획
기자 멘토 되다 - 짱구팀 편
처치 곤란 아이스팩 재활용 방안

이커머스의 성장세가 눈부시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비대면 거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장’을 보는 게 힘들어지면서 신선식품 주문량도 크게 증가했다. 그래서인지 매일 아침 현관 앞에 쌓여 있는 택배 상자가 이젠 흔한 풍경이 됐다. 문제는 배달량이 늘면서 ‘아이스팩’도 함께 증가했다는 거다. 

아이스팩은 재활용 방안이 마땅치 않은 데다 함부로 버리면 환경을 오염할 수 있어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이렇게 처치 곤란한 아이스팩을 다시 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톨릭대학교 남궁민(소비자주거학과), 이혜인(영어영문학과), 조현아(경영학과) 학생으로 구성된 ‘짱구’팀이 머리를 맞댔다. 

짱구팀은 숱한 시행착오 끝에 고안해낸 아이디어를 새로운 아이스팩 재활용 방안으로 제시했다. 이른바 폐지 줍는 어르신을 위한 ‘아이스팩 조끼’였는데, 성과는 놀라웠다. 학생들의 아이디어가 실제 정책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어떤 내용일까. 가톨릭대 ‘사회혁신 캡스톤디자인: 소셜리빙랩’ 세번째 이야기 
짱구팀의 ‘아이스팩 재활용 프로젝트’ 편이다.

가톨릭대 학생들은 아이스팩 재활용 방안으로 폐지줍는 어르신들을 위한 ‘재활용 아이스 조끼’ 를 제안했다.[사진=뉴시스]
가톨릭대 학생들은 아이스팩 재활용 방안으로 폐지줍는 어르신들을 위한 ‘아이스 조끼’를 제작했다.[사진=뉴시스]

어느 집 냉장고에나 한두 개쯤 들어 있는 게 있다. 바로 ‘아이스팩’이다. 온라인으로 신선식품을 구매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아이스팩은 없어선 안 될 물건이 됐다. 사실 배달 식품을 신선하게 유지하는 데 아이스팩만큼 유용한 것도 없다.

아이스팩의 내용물인 고흡수성수지(Super Absorbent Pol ymer)는 물보다 5~7개 이상 길게 냉동 상태를 유지하는 특성을 갖고 있어서다.[※참고: 고흡수성수지의 주원료는 폴리아크릴산나트륨과 폴리아크릴아마이드로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물을 흡수해 팽창하는 특징이 있어 일회용 기저귀 등에도 사용된다.]

이런 편리함 덕분인지 아이스팩 생산량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6년 1억1000만개였던 아이스팩 생산량은 지난해 2억600만개로 두배 이상 증가했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도 아이스팩 사용량을 늘리는 데 한몫했다.


비대면 거래로 인한 배달 수요가 급증하면서 사용하는 아이스팩의 양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문제는 배달 과정에서 식품의 신선도를 지켜준 아이스팩이 사용 이후엔 처치 곤란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가정에선 택배와 함께 온 아이스팩을 딱히 활용할 방안이 없다.

아이스팩을 처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아이스팩의 내용물인 고흡수성수지는 수분을 많이 머금고 있어 불에 잘 타지 않는다. 플라스틱의 일종이라 썩는 데만 500여년이 걸려 땅에 함부로 묻을 수도 없다. 물에 흘려버리면 미세플라스틱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환경부는 아이스팩의 약 15%가 하수구로 버려져 미세플라스틱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아이스팩의 내용물을 물·소금·전분 등 친환경 대체재로 전환하고, 아이스팩 제조업체에 폐기물분담금을 부과하는 정책을 펼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기존에 만든 아이스팩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물론 아이스팩을 새로 사는 대신 재활용하면 된다. 실제로 전국 곳곳의 지자체들은 아이스팩을 수거하고 재활용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문제는 돈이다.

아이스팩을 수거·선별·세척 등의 과정을 거쳐 재활용하는 비용은 개당 300원(500g 기준)으로 새로 구입하는 비용 175.7원(개당)보다 1.7배 이상 비싸다. 최근 고흡수성수지 아이스팩을 대체하고 있는 친환경 아이스팩 구입 비용(213.6원·500g 기준)보다도 90원가량 높다. 아이스팩 재활용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는 이유다.


그렇다면 아이스팩을 재활용할 좋은 방법은 없는 걸까. 이 난제를 풀기 위해 가톨릭대 남궁민·이혜인·조현아 학생이 머리를 맞댔다. 이들은 2021년 1학기 ‘사회혁신 캡스톤디자인: 소셜리빙랩’ 수업에서 ‘짱구’팀으로 뭉쳤다.

아이스팩 재활용 방안을 점검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였다. 짱구팀의 이름은 아이스팩 재활용의 대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려보겠다는 의미로 지었다. 기자도 짱구팀의 당찬 여정(올해 3월 말~6월 중순)에 멘토로 참여했다.

■4월의 기록 : 난관의 연속 = 아이스팩 재활용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기존의 재활용 방안을 살폈다. 다행히 지자체에서 시행 중인 아이스팩 수거함은 잘 운영되고 있었다. 가톨릭대학교가 있는 부천시도 36개의 아이스팩 수거함을 설치·운영 중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모은 아이스팩을 재활용할 곳은 턱없이 부족했다. 지자체는 수거한 아이스팩은 전통시장과 같은 곳에 공급했지만 정작 시장 상인들은 아이스팩을 재사용하는 것을 꺼렸다. 고기와 생선 등을 진열할 때 재활용 아이스팩을 사용하면 위생 측면에서 좋지 않다는 인식이 컸기 때문이다.

짱구팀 학생들은  아이스팩 재활용 방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에 나섰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짱구팀 학생들은  아이스팩 재활용 방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에 나섰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예상치 못한 문제도 발생했다. 아이스팩 수거함에 일반 쓰레기를 버리는 사례가 늘면서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다. 날이 갈수록 쌓이기만 하는 아이스팩을 보관하는 것도 골칫거리였다. 짱구팀이 아이스팩 재활용 방안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게 된 이유다.

쓰긴 쉬워도 재활용 어려운 아이스팩

기자의 생각도 같았다. 답보 상태인 지자체의 아이스팩 재활용 방안에 기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스팩 재활용 방안을 찾기 위한 짱구팀의 험난한 과정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다. 짱구팀은 아이스팩을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확인하고 실험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찜질팩부터 디퓨저 만들기, 수경재배, 촉감놀이 키트 등 다양한 재활용 방안이 실험대에 올랐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이상적인 아이스팩 재활용 방안이 되지는 못했다. 기대 효과보다 재활용에 사용한 아이스팩을 폐기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환경오염 우려가 컸다.


아이스팩 재활용에 관한 인식 개선 방안도 테이블에 올랐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아이스팩에 접목해 공급처인 기업과 사용처인 소비자의 인식을 바꿔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 역시 한계에 부닥쳤다. 아무래도 기업을 변화시키는 정책을 학생들이 추진하기엔 버거웠다. 소비자의 인식 개선 방안도 기존 정책과 차별성을 찾을 수 없었다.

■5월의 기록 : 어렵게 찾은 솔루션 = 답보 상태에 빠진 짱구팀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건 5월이다. 새로운 가능성은 사회적기업 대표와의 우연찮은 만남에서 시작했다.[※참고: ‘사회혁신 캡스톤디자인: ‘소셜리빙랩’ 수업은 커리큐럼의 일환으로 사회적기업 대표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짱구팀이 선정한 사회적기업은 폐차의 가죽 시트를 활용해 가방과 지갑을 만드는 업사이클링 스타트업 모어댄의 최이현 대표였다. 최 대표와의 만남은 좋은 변곡점이 됐다. 방향성을 잃고 헤매던 짱구팀에 가야 할 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최 대표의 조언은 남달랐다. “형식적인 해결방법이 아닌 진짜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야 지속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짱구팀은 아이스팩 재활용 방안을 모색하면서 잊고 있었던 ‘필요성’의 중요성을 그제야 깨쳤고, 아이스팩이 정말로 필요한 대상은 누구인가를 고민했다. 하지만 답을 찾는 건 여전히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뉴스를 접했다. 올여름을 앞두고 더위에 취약한 독거노인의 여름철 건강이 우려된다는 내용이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노인정과 무더위 쉼터가 문을 닫은 탓이었다.

진짜 필요한 답을 위한 고민들


짱구팀은 재활용 아이스팩을 이용하면 독거노인이 무더위를 견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부천시의 독거노인 인구가 2만7000여명(2020년 기준)에 이른다는 걸 감안하면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구체적인 방안을 찾던 중 떠오른 것이 ‘아이스 조끼’였다. 최 대표도 학생들의 생각에 힘을 보탰다.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상품이라면 지속가능한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기자의 의견도 마찬가지였다. 현실적으로 실험이 가능한 아이디어인 데다 부천시가 하고 있는 아이스팩 수거 정책을 활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렇게 짱구팀의 ‘재활용 아이스팩 조끼’ 아이디어가 탄생했고, 발빠르게 ‘현실화’ 전략을 모색했다. 우선 시중에서 판매하는 ‘아이스 조끼’와의 차별화 과정이 필요했다. 짱구팀은 시장 조사를 하는 것은 물론 직접 ‘아이스 조끼’를 구입해 분석했다.

그 결과, 시중에 판매하는 아이스 조끼는 성인 어른의 체형에 맞춰져 있어 크기가 크다는 점을 발견했다. 아울러 야외 노동자의 편의성을 위해 수납공간을 극대화해 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것도 확인했다. 가격도 3만~4만원대로 저렴한 편이 아니었다. 부천시 노인복지과의 자문도 얻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체온 변화에 둔감한 노인의 특성을 고려해 안정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짱구팀은 ‘재활용 아이스팩 조끼’의 시제품 제작에 들어갔다. 짱구팀은 조끼를 구입하고 직접 바느질해 아이스팩을 장착했다. 더위를 식혀줄 아이스팩의 위치는 가슴 쪽이 아닌 등으로 결정했다. 부천시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였다.

코로나19로 비대면 거래가 늘어나면서 아이스팩 사용량이 크게 증가했다.[사진=뉴시스] 
코로나19로 비대면 거래가 늘어나면서 아이스팩 사용량이 크게 증가했다.[사진=뉴시스] 

■6월의 기록 : 정책이 된 아이디어 = ‘재활용 아이스팩 조끼’라는 아이스팩 재활용 방안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었다. 정책으로 제안하기 위해서는 디테일이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 짱구팀과 기자는 다시 머리를 맞댔다.

다양한 의견이 오가던 중 기자가 말을 건넸다.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폐지 줍는 어르신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손수레를 끌고 다니는 걸 볼 수 있어요. 대부분 안전장비 없이 다니는 게 불안해 보였어요.”


기자의 의견에 짱구팀이 아이디어를 보탰다. “안전조끼에 재활용 아이스팩 조끼를 접목하면 좋은 정책이 될 것 같아요.” 이제 구체적인 데이터가 필요했다. 짱구팀은 부천시로부터 다음과 같은 자료를 받았다. “폐지 줍는 어르신은 대략 300명입니다. 하절기 안전조끼 등을 제공하는 데엔 18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다만, 안전조끼를 지급하지만 더위 때문에 착용하는 어르신들이 많지는 않습니다.”

“폐지 줍는 어르신들에게 재활용 아이스팩 조끼가 필요할 것”이란 가설에 확신을 가진 짱구팀은 아이스팩 조끼를 제조할 만한 사회적경제 기업을 물색했다. 부천시의 사회적기업을 활용하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쉽게도 적당한 곳을 찾지 못하던 그때, 이번엔 부천시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짱구팀 제시한 아이디어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 부천시 노인복지과에서 부천일자리 센터(공공근로)를 소개해줬다.

일자리센터에선 “공공일자리는 어디든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짱구팀이 제시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이 말은 현실이 됐다. 부천시 일자리 센터가 공공근로자에게 지급할 재활용 아이스팩 조끼 388장을 제작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재활용 아이스팩 조끼는 예방접종센터·코로나19 선별진료소·보건소·공원관리과·자원순환과·녹지과·생활안전과 등을 통해 배포됐다. 짱구팀의 아이디어가 ‘정책’이 되는 순간이었다.[※참고: 부천시 일자리 센터는 6월까지 총 700여장의 재활용 아이스팩 조끼를 제작·배포했다.]

비즈니스 모델로 확장된 아이디어


짱구팀은 100여일의 여정을 거쳐 ‘아이스팩 수거→세척·소독→공공일자리를 통한 재활용 아이스팩 조끼 제작→아이스팩 재활용’이란 정책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더불어 지역 내 일자리 창출이라는 비즈니스 모델까지 제시했다. 학생들이 올린 성과라곤 믿기 어려운 결과물이었다.

그럼에도 짱구팀은 아쉬움이 남는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재활용 아이스팩 조끼는 폐지 줍는 어르신을 위한 정책이었어요. 하지만 정작 어르신에겐 지급되지 않았어요. 지금도 폐지를 실은 손수레를 끌고 가는 어르신을 만나면 혹시 조끼를 입고 계신지부터 확인해요.”

정책이 된 학생들의 아이디어는 이제 ‘지자체’의 몫으로 넘어갔다. 아이스팩 조끼의 지속가능성은 지자체가 어떻게 활성화하느냐에 달렸다는 거다. 짱구팀의 참신한 아이디어는 과연 폐지 줍는 어르신에게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을까.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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