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Re;on팀
민간이 관리하는 의류수거함
컨트롤타워 없어 관리 소홀해
수거된 의류가 훼손되는 이유

주변엔 쓰레기와 오물이 널려 있다. 위엔 이불더미가 올라가 있다. 어떤 건 쓰레기통과 구분조차 안 된다. 도로에 방치된 일부 의류수거함의 민낯이다. 그렇다면 의류수거함이 이렇게 방치된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하다. 의류수거함을 관리할 컨트롤타워가 없어서다. 가톨릭대 ‘사회혁신 캡스톤디자인 : 디자인씽킹’ 수업에서 Re;on팀으로 뭉친 세 학생이 의류수거함에 주목한 이유를 들어봤다.

Re;on팀은 의류수거함을 관리할 컨트롤타워가 없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왼쪽부터 이정인ㆍ장혜원ㆍ임혜령 학생.[사진=천막사진관]
Re;on팀은 의류수거함을 관리할 컨트롤타워가 없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왼쪽부터 이정인ㆍ장혜원ㆍ임혜령 학생.[사진=천막사진관]

✚ 의류수거함을 주목한 이유가 뭔가요.
임혜령 학생(이하 임혜령) : “익숙하기 때문이에요. 의류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올바른 의류 처리 방법’이 뭘까 고민했어요. 그래서 설문조사를 통해 ‘안 입는 옷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사람들에게 물었죠. 의류수거함을 이용한다는 대답이 압도적으로 많았어요.”

장혜원 학생(이하 장혜원) : “새로운 대안을 제안하면 귀찮아하거나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요. 행동 변화와 인식 제고를 위해선 가장 익숙한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의류수거함에 주목한 거죠. 그런데 생각보다 문제가 많더라고요.”

✚ 무슨 문제 말인가요.
이정인 학생(이하 이정인) : “수거된 의류는 1차적으로 입을 수 있는 ‘가용 의류’와 쓸 수 없는 ‘불가용 의류’로 분류돼요. 그다음 가용 의류는 구제시장이나 해외에 팔고, 불가용 의류는 소각하죠. 문제는 의류수거함에 수거된 가용 의류가 훼손돼 불가용 의류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점이에요.”

✚ 옷이 훼손되는 이유가 뭔가요.
임혜령 : “의류수거함에 쓰레기나 오물 등을 넣기 때문이에요.” 

✚ 납득하기 힘든 현상이네요. 왜 그런 거죠.
장혜원 : “표면적으로는 의류수거함의 관리가 부실하기 때문이에요. 대부분의 의류수거함은 쓰레기통과 혼동될 정도로 칙칙하고 더러워요. 그 주변에 쓰레기가 널려 있기도 하고요. 규격과 위치도 제각각이죠. 수거된 의류의 상태가 좋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예요. 수거율도 떨어지고요.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인식도 좋을 리 없죠.”

임혜령 :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어요.”


✚ 뭔가요.
이정인 :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거예요. 대부분의 의류수거함은 민간업체가 관리하고 있어요. 지자체가 허가를 내주긴 하지만 관리 기준을 마련해 놓거나 제재를 하진 않아요. 저희가 정보를 얻기 위해 지자체에 연락했을 때도 ‘모른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아니다’라고만 답하더라고요. 지역마다 의류수거함의 형태ㆍ색깔ㆍ설치 위치 등 기준이 중구난방이고, 관리가 되지 않는 이유예요.”

임혜령 :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었어요. 이해관계자를 찾기가 어렵다보니 정보를 얻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의류수거함에 적힌 연락처로 무작정 전화를 걸어보는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그마저도 전화를 받지 않거나, 이미 사업을 접은 사람이 대부분이었어요.” 

✚ Re;on팀이 제안한 의류수거함의 새로운 디자인을 현장에 적용해볼 수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군요.
임혜령 : “맞아요. 컨트롤타워가 없고 관리가 안 되고 있다 보니 한계가 있었죠.”

Re;on팀은 의류수거함 문제를 해결할 솔루션으로 입구에 ‘투명 가림막’을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의류수거함 사용자는 불편함을 느낄 수 있지만 그 때문에 두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첫째는 오물을 투척하는 걸 막고, 둘째는 가용 의류 수거율을 높이는 것이다.[※참고: Re;on팀의 이름은 ‘다시’라는 뜻의 ‘Re’와 ‘입다’라는 뜻의 ‘on’을 합성해 만들었다. ‘옷에 생명을 다시 불어넣다’라는 뜻이다.]

✚ 의류수거사업을 하고 있는 민간업체에 제안해보지는 않았나요.
장혜원 : “물어봤는데 부정적인 반응이었어요. 이전에 빗물이 들이치는 걸 막기 위해 가림막이 있는 의류수거함을 설치해 봤는데 수거율이 너무 떨어졌다는 게 이유였어요.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는 민간업체가 주체였기 때문에 생긴 문제였어요. 영리를 추구하려는 민간업체로선 의류의 훼손 상태보다는 양만 많으면 그만이거든요.”

✚ 공공에서 관리한다고 크게 달라질까요.
임혜령 : “실제로 경기도 가평군은 의류수거함을 직접 관리해요. 노란색 두더지 모양으로 친숙하게 만들었는데, 도시 미관을 해치지도 않고 쓰레기통 같다는 느낌도 없어요. 거부감이 들기는커녕 되레 호기심을 유발하죠.”

✚ 수거되는 의류에도 영향을 주던가요.
이정인 : “의류수거함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지자체가 관리하는 경우 버려진 쓰레기나 오물이 없고, 주기적으로 관리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디자인과 규격을 통일해 누가 봐도 의류수거함인 걸 한눈에 알 수 있고요. 당연히 더 깨끗한 옷을 가져갈 수 있어요.” 

 

의류수거함을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경기도 가평군은 가용의류 수거율이 높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의류수거함을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경기도 가평군은 가용의류 수거율이 높다.[사진=더스쿠프 포토]

✚ 공공의 역할이 중요하겠군요.
임혜령 : “맞아요. 의류폐기물이 이슈가 되기 시작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아직은 과도기인 셈이죠. 이럴 때일수록 공공의 역할이 중요한 거 같아요. 가령, 사람들이 플라스틱 폐기물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공공에서 플라스틱 폐기물의 심각성과 재활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부터예요. 플라스틱 병을 따로 수거한 것도 공공에서 시작한 일이죠. 의류폐기물 문제도 공공이 앞장서고 민간이 뒤에서 힘을 보태면 인식이 고취될 거예요.”

✚ 그런데 의류수거함의 수거율ㆍ순환율을 높이는 게 의류폐기물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 대책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임혜령 : “물론 생산~소비~보관~처리 등 모든 단계에서 의류 수명을 늘리고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해요. 예컨대 생산단계에선 친환경 소재를 쓰거나, 재활용이 어려운 혼합소재를 쓰지 않는 방법이 있어요. 리사이클링ㆍ업사이클링 의류를 만들 수도 있고요. 이는 민간에서 해야 할 일이죠.”

이정인 : “실제로 최근엔 지속가능성을 고민하거나 관련 캠페인을 추진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어요. 하지만 단발성 이벤트에 그치거나 보여주기식으로 끝나기 일쑤라 아쉬워요. 일부는 진정성 없이 마케팅에 그쳐 마음에 와닿지 않는 경우도 많고요. 게다가 기업들이 리사이클링ㆍ업사이클링 비용을 소비자에게만 전가하는 것도 문제예요. 가치소비니까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식으로요.”

장혜원 : “하지만 한번에 모든 걸 바꾸긴 어려워요. 사소할지라도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바꿔나가면 인식이 고취되고, 패션산업이 변하고, 사회가 바뀔 거라고 생각해요. 의류수거함 문제를 개선하는 게 그 출발점인 셈이죠.”

✚ 프로젝트를 다시 한번 진행한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이정인 : “의류수거함 관계자의 네트워크에 직접 들어가 현장을 보고 싶어요. 이번엔 정보가 많지 않다 보니 수박 겉핥기 같다는 느낌이 컸거든요. 안에서 들여다보면 현장에서만 보이는 문제점이 보일 것 같아요. 그럼 더 나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장혜원 : “공공영역에서 의류수거함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 정부나 지자체가 의류폐기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요. 공공과 민간의 접점을 만들어 연결해보고 싶어요.”

 

✚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느낀 점이 많았을 거 같아요.
임혜령 : “이젠 옷 살 때 죄책감이 생겨요. 어떻게 만들었을지 뻔히 보이니까요. 의류폐기물은 어느 누군가가 아니라 민간ㆍ공공ㆍ생산자ㆍ소비자 모두가 관심을 갖고 책임을 져야 해요.”

이정인 : “의류수거함에 옷을 넣을 때 누군가 입을 수 있는 옷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의류브랜드들이 제품을 홍보할 때 ‘어떻게 옷을 입는지’뿐만 아니라 ‘어떻게 보관하면 오래 입을 수 있는지’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등도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소비자도 소유했던 걸 버리는 과정에서 책임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장혜원 : “폐의류가 환경오염을 어떻게 가속화하는지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는 거 같아요. 저희가 아무리 프로젝트 해봤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는 크지 않아요. 의류폐기물을 둘러싼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래야 이해관계자나 공공에 요구할 때도 더 힘을 얻을 수 있을 거 같아요.”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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