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대 LINC+ 사업단 공동기획
프로보노 프로젝트 | 오롯 컨설팅의 기록
가톨릭대 + 포스코경영연구원 콜라보

“청각장애인의 문화소외 문제를 해결하겠다.” 국내의 열악한 배리어프리(청각장애인용 자막ㆍBarrier free) 자막 시장을 개척하겠다고 나섰던 소셜벤처 ㈜오롯영화를읽는사람들(이하 오롯)이 혹독한 현실 앞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시장을 키워줄 배리어프리법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고, 문화 콘텐츠를 제작ㆍ배급하는 곳에선 부담을 느끼거나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다. 이런 오롯을 위해 가톨릭대 학생과 포스코경영연구원이 새로운 솔루션을 제시했다.

보이임팀은 오롯의 지속가능한 수익 모델 창출을 위해 OTT업체를 설득할 방안을 제시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보이임팀은 오롯의 지속가능한 수익 모델 창출을 위해 OTT업체를 설득할 방안을 제시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국내 청각장애인 수는 39만5789명이다(2020년 보건복지부 통계).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들이 영화ㆍ드라마 등의 문화 콘텐츠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선 ‘특별한 자막’이 필요하다. 배리어프리(Barrier free) 자막이다. 대사만 나오는 일반 자막과 달리 배리어프리 자막은 대사ㆍ화자ㆍ효과음ㆍ일상소음ㆍ숨소리ㆍ웃음ㆍ배경음악 등 모든 소리 정보를 글자로 보여준다. 듣지 못하는 소리를 자막을 통해 읽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국내에선 배리어프리 자막을 좀처럼 보기 어렵다. 2019년 국내 영화관에서 상영된 한국영화가 200여편에 달했지만 그중 배리어프리 자막이 제공된 영화는 30여편에 불과했다. 상영 횟수로 따지면 17만회 중 72회에 그쳤다. 영화관뿐만이 아니다. VODㆍOTT 서비스 플랫폼을 찾아봐도 배리어프리 자막을 제공하는 곳은 드물다. 장애인들의 미디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배리어프리 자막이 활성화돼 있는 해외 국가들과는 대조적이다. 

“청각장애인의 문화소외 문제를 해소하겠다”며 창업시장에 발을 내디딘 소셜벤처 오롯도 녹록지 않은 현실에 좌절감을 맛봤다. 오롯은 배리어프리 자막을 제작ㆍ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숱하다. 무엇보다 제작사ㆍ배급사ㆍ중간배급사ㆍ플랫폼 업체 등 이해관계자가 얽히고설켜 있어 자막을 만들어놓고도 쓰지 못하는 일이 많다.

OTT업체 왓챠의 의뢰를 받아 13편의 배리어프리 자막을 제공하는 성과를 내고, 다른 기업으로부터도 문의를 받았지만 지속적인 사업으로 이어지지 않은 이유다.[※참고: 국내에서 배리어프리 자막을 제작하는 곳은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한국농아인협회, 오롯 등 3곳이다. 그중 자막 제작 의뢰를 받는 곳은 오롯뿐이다.]

가톨릭대 이현지ㆍ임수린ㆍ임혜령 학생과 조문제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오롯이 지난 2월 개설된 가톨릭대 ‘제3 섹터와 기업가 정신’ 수업에서 ‘보이임’이란 팀으로 뭉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오롯의 고민을 함께 풀어보자는 거였다.[※참고: 가톨릭대 LINC+ 사업단과 포스코경영연구원이 업무협약을 맺고 소셜벤처ㆍ사회적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보노(Pro Bono) 활동에 나섰다. 프로보노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사회적 약자를 돕는 활동을 말하는데, 가톨릭대 ‘제3 섹터와 기업가 정신’ 수업은 그 일환이다. 팀명 보이임은 자막이 ‘보인다’는 의미와 팀원 이름(이ㆍ임씨)을 결합해 만들었다.]

 

2019년 한국영화가 17만여회 상영됐지만 그중 배리어프리 자막이 제공된 건 72회에 불과했다.[사진=뉴시스]
2019년 한국영화가 17만여회 상영됐지만 그중 배리어프리 자막이 제공된 건 72회에 불과했다.[사진=뉴시스]

보이임팀은 가장 먼저 오롯을 냉정하게 해부했다. 앞서 언급했듯 ‘청각장애인의 문화소외 문제’라는 소셜미션을 해결하기 위해 설립한 소셜벤처인 오롯은 예비사회적기업이 되기 위해 심사를 받고 있다. 사회적기업을 지향하는 만큼 오롯의 사업은 ‘아름다운 가치’를 품고 있었다. [※참고: 오롯은 지난 10월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됐다.] 

오롯의 사업은 크게 두개인데, 하나는 배리어프리 자막 판매사업, 또다른 하나는 기업 사회공헌 프로그램 운영사업이다. 후자는 기업 임직원들이 직접 배리어프리 자막을 제작해볼 수 있도록 일련의 과정을 운영하는 CSR 프로그램이다. 

문제는 아름다운 가치를 뒷받침해줄 만한 수익성이 불안정하다는 점이었다. 보이임팀은 SWOT(기업 환경분석을 통해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는 방법) 분석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배리어프리 자막이라는 신시장을 선점한 건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자막 판매사업은 아직 마진이 낮고, CSR 프로그램은 단발적인 자금 조달에 그치고 있다. 아울러 기업과의 CSR 관계를 만드는 건 미봉책에 불과하다. 오롯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수익 창출 모델이 필요하다.”

이런 결론을 토대로 보이임팀은 오롯의 새로운 수익 창출 모델로 OTT를 제안했다. 보이임팀의 임혜령 학생은 “오프라인 영화관은 배리어프리 자막 전용 상영관을 따로 할당해야 하는 탓에 수요가 제한적이다”면서 “OTT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데다, 오롯이 왓챠에 자막을 판매한 전력도 있어서 활로로 삼기에 적합했다”고 설명했다. 오롯이 OTT업체와 협업해 정기적으로 자막을 제공할 수 있다면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을 거란 계산이었다.

문제는 OTT업체를 어떻게 설득하느냐는 점이었다. 사회적 가치나 기업의 선의에만 기대기엔 한계가 분명했다. 오롯과의 협업이 OTT업체의 시장경쟁력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걸 보여줘야 했는데, 이를 위해 실질적이고 논리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보이임팀은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해 소비자 조사에 나섰다. 20대 남녀 14명과 40~50대 남녀 7명을 대상으로 인뎁스(In-depth) 인터뷰를 진행했다. 조문제 연구원은 “20대는 OTT 유료서비스 이용자의 41.2%를 차지하고, 40~50대는 어린이용 콘텐츠의 실질적인 구매자이기 때문에 배리어프리 자막 여부가 일반 소비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아보는 데 적합할 것”이라면서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배리어프리 자막의 필요성에 공감했고, 일부는 “청각장애인의 문화소외 해결을 위해서라면 가격이 오른다고 해도 감수하겠다”고 답했다. 배리어프리 자막 유무가 ‘가치소비’ 욕구를 자극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40~50대 소비자들의 대답은 더 흥미로웠다. 임혜령 학생의 설명을 들어보자. “배리어프리 자막이 아이들 교육용으로 좋을 거란 대답이 있었어요. 한글자막에 많이 노출되면 그만큼 한글 습득 속도가 빨라질 거란 이유에서죠. 비단 아이들만이 아니에요. 대사를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거나, 소음이 많은 장소에서 콘텐츠를 볼 때도 배리어프리 자막이 유용할 거란 응답이 많았어요.”

의미 있는 결과였다. 배리어프리 자막을 도입하면 가치소비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뿐만 아니라 실수요를 끌어당기는 데도 효과가 있을 거란 뜻이기 때문이다. 보이임팀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OTT업체를 설득할 세가지 전략을 구상했다. 

 

첫째는 소셜임팩트 측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란 점이다. ‘국내 최초 배리어프리 자막 서비스 제공 플랫폼’이란 타이틀을 얻음으로써 ‘청각장애인의 문화소외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힘을 쏟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확보할 수 있어서다. ESG(환경ㆍ사회적 책임ㆍ지배구조) 경영이 필수가 된 현 추세에선 OTT업체로서도 나쁠 게 없었다.[※참고: 소셜임팩트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기업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의미한다. 기업이 소비자에게 어떤 평판을 받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로 꼽힌다.]

둘째 설득 전략은 한글자막을 원하는 소비자들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확인했듯 한글자막은 청각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 사이에서도 충분한 수요가 있다. 이를 감안했을 때 배리어프리 자막이 고객 유치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얘기다. 마지막 전략은 다른 OTT 플랫폼과의 차별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OTT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플랫폼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차별점을 만들 수 있다면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보이임팀의 솔루션 결과는 확인하지 못했다. 오롯은 사업 모델을 더 가다듬은 뒤 보이임팀이 구상한 ‘아이디어’를 OTT에 제안할 계획이다. 최인혜 오롯 대표는 “회사를 설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눈앞에 수많은 현안이 놓여 있었고, 우리의 힘만으로 이 문제들을 풀어나가기가 벅찼다”면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실마리를 얻은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오롯의 도전은 지금부터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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