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셀 시장 성장의 그림자
운동화 수익률 2000%
리셀러 탈세 우려 높아져

수많은 사람이 백화점으로 몰려들었다. 그중 일부는 에스컬레이터를 역주행해 매장으로 뛰어들었다. 위험천만한 이 장면이 펼쳐진 건 ‘한정판 골프화’ 때문이었다. 정가 17만9000원의 이 운동화는 다음날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60만원대에 거래됐다. 이처럼 한정판 제품을 비싼 값에 되파는 ‘리셀’ 열풍이 뜨겁다. 하지만 리셀 열풍 뒤엔 브랜드의 갑질, 소비자 선택권 저해, 탈세 등 문제점도 적지 않다. 리셀(resell)을 리셋(reset)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리셀을 통해 반복적으로 수익을 얻는 리셀러의 ‘탈세’ 우려가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리셀을 통해 반복적으로 수익을 얻는 리셀러의 ‘탈세’ 우려가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에스컬레이터를 역주행하다니….”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게 놀랍다.” 지난 14일 유튜브에선 1분여짜리 영상이 이슈가 됐다. 신세계 대구점에서 찍힌 이 영상엔 나이키 골프가 출시한 한정판 운동화를 구입하기 위해 달려가는 수많은 사람이 찍혔다. 신세계 대구점뿐만이 아니다. 이날 전국 40여개 나이키 골프 매장에선 이른 새벽부터 장사진이 펼쳐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엔 영하 10도의 날씨에 매장 앞에서 텐트를 펴고 내기하는 이른바 ‘캠핑’ 인증샷까지 올라왔다. 나이키 골프가 골프화 ‘조던1 로우 G’를 선착순 한정 판매하면서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정가가 17만9000원인 이 골프화는 하루 만에 리셀 플랫폼에서 60만원까지 가격이 치솟았다. 리셀 시장에서 “일단 사기만 하면 대박”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런 진풍경은 오는 5월 또다시 펼쳐질 전망이다. 나이키가 5월 중 ‘에어조던1 스테이지 헤이즈’의 글로벌 발매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정가는 170달러(약 20만원)로 예상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벌써부터 “리셀가격이 어마어마할 것 같다” “오픈런 해야 하나” 등 제품 구매를 원하는 소비자부터 리셀러(reseller)의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이렇게 한정판 제품을 구입해 비싼 값에 되파는 리셀 열풍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무엇보다 단기간에 차익을 실현할 수 있는 데다, 주식이나 코인 등 다른 투자 상품 대비 리스크가 적기 때문이다. 한정판을 원하는 수요가 뒷받침되다 보니 사는 즉시 가격이 2~3배 오르는 경우도 숱하다. 특유의 희소성 덕분에 시간이 흐를수록 제품 가격이 더 오른다는 점도 리셀의 매력으로 꼽힌다. 

실제로 중고거래 플랫폼 ‘스탁엑스’에 따르면 나이키 ‘조던2’ 시리즈 제품의 평균 가격은 지난 2년 새(2020년 1월~2021년 10월) 90% 올랐다. 스탁엑스 측은 “조던2 시리즈의 2년간 가격 상승률(90%)은 같은 기간 S&P 500의 수익률 40%를 훨씬 웃돈다”고 밝혔다.[※참고: S&P500은 미국 신용평가사 S&P가 선정한 500개 우량기업을 의미한다.] 

또 다른 중고거래 플랫폼 네이버 ‘크림’이 발표한 자료도 흥미롭다. 크림에 따르면 지난해 가장 높은 가격 상승률을 기록한 제품(운동화 기준)은 ‘나이키×톰삭스 마스야드 2.0’이었다. 이 제품의 발매가(정가) 대비 가격 상승률은 2137%에 달했다. 그밖에도 ‘에어조던1×프라그먼트 레트로 하이’ ‘에어조던1×오프화이트 더 텐 레트로 하이 시카고’의 가격 상승률은 각각 2052%, 2014%를 기록했다. 이들 운동화의 거래 가격(1월 18일 기준 최근 거래가)은 각각 460만원, 759만원에 달했다.

이렇게 리셀 가격이 치솟으면서 리셀 시장의 규모도 급성장하고 있다. 미국의 중고의류 유통업체 ‘스레드업’에 따르면 전세계 리셀 시장 규모는 2020년 90억 달러(약 10조원)에서 2025년 470억 달러(약 56조원)로 커질 전망이다. 

문제는 리셀 시장이 커지고 있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이나 문제점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리셀러들이 제품을 선점하다 보니 실제 수요자가 제품을 제값에 구입할 수 없다는 점은 고민거리다. 한정판의 경우 매장에서 제품을 구입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워서 실제 구입을 원하는 소비자는 훨씬 비싼 리셀 가격에 제품을 구입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매장(에서 사는 것)보다 비싼 중고가격”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정판 제품을 비싼 값에 되파는 ‘리셀’ 시장이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한정판 제품을 비싼 값에 되파는 ‘리셀’ 시장이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리셀 경쟁이 브랜드의 콧대만 높여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인 게 샤넬이다. 샤넬은 ‘샤테크(샤넬+재테크)’란 별칭이 있을 만큼 리셀 시장에서 활발하게 거래되는 명품 브랜드 중 하나다. 샤넬이 가격 인상을 발표할 때마다 가격이 오르기 전 구매하려는 리셀러들의 ‘오픈런(open run·개점질주)’이 펼쳐졌다. 실제로 샤넬은 지난해 4차례에 걸쳐 가격을 인상했는데, 이때마다 리셀러들은 오픈런을 위해 개점 전부터 백화점을 둘러싸고 대기했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샤넬은 지난해 10월부터 일부 인기 제품에 ‘1인당 연간 1개씩’ 구매제한을 두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업계 안팎에선 “리셀러로 인해 샤넬의 명품 이미지가 훼손될 것을 우려한 조치”라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한편에선 다른 분석도 나온다. 샤넬이 ‘수요가 증가하자 공급을 줄이고 가격을 올리는 고급화 전략’을 택하고 있다는 거다. 

김시월 건국대(소비자정보학) 교수는 “샤넬이 수요와 공급을 조절해 브랜드 희소성을 높이고 가격을 인상하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브랜드들이 ‘희소성’을 제품 가격 인상의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것을 소비자가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참고: 지난해 4차례 가격 인상을 단행한 샤넬은 지난 11일에도 주요 핸드백 가격을 10%가량 올렸다.]

리셀 시장이 합법과 편법 사이에 있다는 점도 풀어야 할 숙제다. 현행법상 사업자가 상품(서비스)을 판매할 경우 부가가치세 10%, 종합소득세(6~45%)를 내야 한다. 하지만 리셀은 ‘개인 간 거래’로 간주돼 (리셀 제품을 팔더라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참고: 중고거래 플랫폼 관계자는 “플랫폼 내 판매자는 사업자가 아닌 개인 이용자로 등록돼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리셀을 통해 반복적으로 수익을 얻는 리셀러다. 이들이 의도적으로 소득 신고를 하지 않아도 현재로선 규제할 방법이 없다. 지난해 10월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중고거래 플랫폼 탈세 우려’가 도마에 오른 이유다. 당시 김대지 국세청장은 “기재부와 협의해 중고거래에 어떤 과세 기준을 적용할지 구체적인 의견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3개월여가 흐른 지금 국세청은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소비자학)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SNS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과시하기’가 더욱 좋아졌다. 이런 환경에서 한정판 제품을 앞세운 리셀 시장은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만큼 정부가 시장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정한 과세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불황 속 투자 열풍’과 ‘SNS 속 과시욕’. 그 틈에서 커진 리셀 시장은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될까. 리셀(resell)을 리셋(reset)해야 할 때가 지난 건 아닐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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