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나노 공정 도입 앞둔 삼성전자
TSMC 추격 발판 마련할 수 있나
올해 삼성 파운드리 시험대 올라

과감한 투자를 앞세운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으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거머쥐었던 삼성전자가 이번엔 파운드리 시장을 노리고 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삼성전자는 TSMC와의 미세공정 경쟁에서 사상 처음 앞설 것이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때문인지 삼성전자가 올해 TSMC를 추격할 발판을 마련할 것이란 긍정적인 평가도 나온다. 과연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변곡점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미세공정 경쟁에서 늘 밀리던 삼성전자가 3나노 공정에선 TSMC를 앞설 가능성이 높다.[사진=연합뉴스]
미세공정 경쟁에서 늘 밀리던 삼성전자가 3나노 공정에선 TSMC를 앞설 가능성이 높다.[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건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2019년 4월 발표한 ‘반도체 비전 2030’을 통해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 세계 1위 자리에 오르겠다”며 구체적 계획을 담은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그동안 삼성전자가 보여준 성과는 썩 만족스럽지 않다. 특히 기대를 모았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ㆍFoundry) 시장에서의 성적표는 아쉽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세계 파운드리 시장 1위 기업 TSMC와의 격차가 되레 벌어졌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반도체 비전 2030’을 선포하기 전인 2018년 두 기업의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각각 50.8%, 14.9%로, 점유율 차이는 35.9%포인트였다. 

하지만 지난해 3분기 TSMC는 53.1%, 삼성전자는 17.1%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격차는 36.0%포인트로 벌어졌다.[※참고: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은 크게 설계를 전담하는 시스템LSI사업부와 위탁생산 업무를 맡고 있는 파운드리 사업부로 나뉜다. 메모리 반도체를 통해 반도체 생산 기술과 노하우를 키워온 삼성전자로선 설계보단 파운드리가 유리하다.]

그런데 올해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파운드리 시장 1위를 노리는 삼성전자가 추격의 발판을 놓는 해가 될 거라는 기대감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올해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미세공정 경쟁에서 TSMC를 앞설 가능성이 높아서다. 

미세공정은 파운드리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미세공정 기술이 뛰어나다는 건 반도체 회로를 더 가늘게 그릴 수 있다는 의미다. 당연히 반도체 크기는 작아지고, 성능과 전력 효율은 높아진다. 현재 TSMC와 삼성전자 모두 5나노미터(㎚ㆍ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굵기로 반도체 회로를 그릴 수 있는 공정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세계 파운드리 기업들 가운데 5나노 공정에서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곳은 두곳밖에 없을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기술이다.

 

다만, 삼성전자가 극복하지 못한 게 있었다. 새 공정을 도입하는 시기였다. 가령, TSMC는 2018년 7나노 공정을 도입한 반면, 삼성전자는 1년 늦은 2019년에야 7나노 공정을 도입했다. 5나노 공정을 갖춘 것도 TSMC는 2020년 상반기, 삼성전자는 그해 하반기였다.

하지만 3나노 공정은 뭔가 다를 듯하다. 양사가 공개한 로드맵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 TSMC는 올 하반기 3나노 공정을 도입할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미세공정 경쟁에서 처음으로 TSMC를 앞서는 셈이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이번 3나노 공정에 차세대 기술인 GAA(Gate-All-Around)를 적용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GAA 기반 공정에서 반도체를 만들면 기존 핀펫 기반 공정에서 제조할 때보다 성능과 전력효율을 높일 수 있다. TSMC는 2025년 도입 예정인 2나노 공정부터 GAA 기술을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삼성전자의 파운드리가 터닝포인트를 맞을 거란 기대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문가들도 삼성전자가 미세공정 선점효과를 누릴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상대적으로 업력이 짧은 삼성전자는 만들 수 있는 제품의 폭이 좁기 때문에 TSMC와 경쟁하려면 미세공정 기술을 더 빠르게 진화해 나가야 한다”면서 “(TSMC의) 기존 고객을 뺏어오긴 힘들지 몰라도 한발 앞서 새 첨단 제품을 만들거나, 신시장을 개척하고자 하는 기업들의 수요를 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첨단 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이 (3나노 공정을) 우선 적용하길 원할 텐데, 그 기업들이 신공정 효과를 톡톡히 본다면 다른 기업들을 유인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낙관하긴 이르다. 삼성전자의 발목을 잡을 만한 변수도 숱해서다. 가장 큰 문제는 생산능력 확보다. 7나노 이하의 첨단 미세공정 생산라인을 구축하기 위해선 극자외선(EUV) 노광장비가 반드시 필요한데, 확보할 수 있는 물량이 제한적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EUV 노광장비를 만들 수 있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기업 ASML의 연간 생산량이 50~60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삼성전자가 이 물량을 먼저 확보하면 그만이지만, 쉽지만은 않다. EUV 노광장비 확보 경쟁에서 TSMC에 밀리고 있어서다.[※참고: EUV 노광장비 보유량도 삼성전자가 적다. 증권사들에 따르면 현재 삼성전자와 TSMC가 보유하고 있는 EUV 노광장비는 각각 20대, 40대 안팎으로 추정된다.] 

 

그렇다고 사업적 측면에서 삼성전자가 유리한 것도 아니다. 메모리 반도체 생산라인에도 EUV 장비를 도입해야 하는 삼성전자로선 파운드리에만 힘을 쏟으면 되는 TS MC와의 공급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삼성전자가 장비 확보 경쟁에서 밀리면 첨단 미세공정 도입이 빨라도 큰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잇따르는 이유다.

[※참고: 파운드리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인텔도 EUV 노광장비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ASML EUV 노광장비의 차세대 모델인 트윈스캔 EXE: 5200은 삼성전자와 TSMC에 앞서 가장 먼저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전자의 질주를 가로막는 변수는 또 있다. 삼성 특유의 초격차 전략이 효과를 내기 힘들다는 점이다. TSMC도 삼성전자 못지않은 광풍 투자에 나서고 있는 데다, 후발주자 인텔마저 대규모 투자를 예고하고 있어서다. 일례로 TSMC는 지난해 300억 달러(약 36조원)를 투자한 데 이어, 올해도 최대 440억 달러(약 53조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향후 3년간 10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지난해 9월 반도체 공장 건설에 200억 달러(약 24조원)를 쏟아부은 인텔도 지난 1월 21일(현지시간) 2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계획을 또다시 발표했다. 반면, 삼성전자의 올해 반도체 투자액은 40조여원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2030년까지 삼성전자가 TSMC를 뛰어넘긴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렇게 전망했다. “앞서 일본이 장악하고 있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패권을 삼성전자가 차지할 수 있었던 건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출혈경쟁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 파운드리 기업들의 가동률은 100%를 웃돌고 있는데, 삼성전자와 TSMC의 매출 차이가 3배다. 생산설비 역시 그 정도 차이가 난다는 거다. 기술력에서 따라잡는다고 해도 물리적 규모를 뛰어넘긴 힘들 것이다.”

삼성전자를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은 건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이다. 출발이 늦었지만 끝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한 삼성전자 스마트폰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추격자 DNA’가 파운드리 시장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을까. 삼성전자가 3나노 공정을 도입하는 올 상반기가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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