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미세공정 기술력은 충분
수율 떨어지면 도리어 리스크
생산능력 따라가긴 아직 벅차

위기의 인텔에 새 사령탑으로 부임한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는 반전 카드로 ‘파운드리’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인텔 스스로 3년 전 포기했을 만큼 파운드리 시장은 만만하지 않다. 시장 1ㆍ2위 TSMC와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 합이 무려 70%에 이를 만큼 신규 진입자가 끼어들 틈이 매우 좁다. 두번째 출사표를 던진 인텔은 TSMC와 삼성전자가 버티고 있는 파운드리 시장의 판을 흔들 수 있을까.
 

파운드리 시장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는 열쇠는 미세공정 기술이다.[사진=연합뉴스]
파운드리 시장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는 열쇠는 미세공정 기술이다.[사진=연합뉴스]

지난 3월 인텔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ㆍFoundry) 시장에 다시 출사표를 던졌다. 미세공정 전환 실패, 시장점유율 하락, 거래처의 잇따른 결별 선언 등 세계 최고 반도체기업으로서의 체면을 구긴 인텔이 위기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띄운 승부수였다. 올해 초 인텔의 구원투수로 등판하며 파운드리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는 “인텔의 새로운 시대를 위한 혁신이 시작됐다”며 인텔의 부활을 예고했다.

하지만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을 접은 지 3년이나 흐른 뒤에 진행된 ‘복귀선언’이었다. 그사이 파운드리 시장은 세계 1위 TSMC와 2위 삼성전자 간의 양자대결 구도로 굳어졌다. TSMC(올 2분기 기준 52.9%)와 삼성전자(17.3%)의 시장점유율 합이 70%에 달할 정도다.

기술력 면에서 봐도 두 기업은 레벨이 다르다. 7나노미터(㎚ㆍ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이하의 미세공정에서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TSMC와 삼성전자 외엔 없다.[※참고: 두 기업은 현재 5나노 미세공정에서 반도체를 양산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3년이나 쉰 인텔이 TSMC와 삼성전자가 버티고 있는 파운드리 시장의 판도를 흔들 수 있을까. 관건은 기술력과 생산능력을 얼마나 빨리 끌어올리느냐다. 기술력부터 따져보자. 파운드리 시장에서 기술 경쟁의 핵심은 미세공정이다. 미세공정이라는 건 쉽게 말해 트랜지스터(반도체 소자)를 더 작게 만드는 것이다. 

미세공정이 중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소비전력을 낮추고 제품 사이즈를 줄일 수 있어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의 설명을 들어보자. “반도체 크기와 소비전력을 줄이는 건 모바일ㆍ웨어러블 기기에서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 개발되는 제품들은 휴대성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고, 이 시장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미세공정은 고객 확보와 직결된다.”

그럼 누가 먼저 미세공정 기술에서 앞서느냐에 따라 향후 파운드리 시장의 판도가 달라질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인텔이 기술력 면에선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종환 상명대(시스템반도체공학) 교수는 “새로운 공정을 도입하려면 출혈도 있고 리스크도 있기 때문에 미세공정에 버금가는 성능을 내는 트랜지스터를 만들어온 인텔로선 전략적으로 미세공정 도입을 늦춰온 측면이 있다”면서 “인텔은 전통적으로 반도체 공정이 강한 기업이기 때문에 (미세공정을) 못할 이유는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인텔이 발표한 파운드리 미세공정 로드맵에는 이런 자신감이 담겨 있다. 인텔은 오는 2024년까지 2나노에 해당하는 20A(옹스트롬ㆍ100억분의 1m), 2025년까지 18A 공정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TSMC와 삼성전자보다 빠른 수준이다.

TSMC는 내년 하반기에 3나노, 2025년에 2나노 공정에서 반도체를 양산하겠다고 발표했고, 삼성전자는 내년 상반기 3나노, 2025년 2나노로 양산 시기를 잡았다. 물론 아직은 로드맵일 뿐이지만 계획이 현실이 되면 2나노 공정을 가장 먼저 도입하는 건 인텔이다.

하지만 인텔이 TSMC와 삼성전자로 양분된 시장에 ‘무서운 변수’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미세공정 도입 시기 외에도 따져봐야 할 게 있다. 수율收率(총 생산량 대비 불량 비율)이다.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업체ㆍFabless)로선 누가 더 미세한 공정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느냐가 가장 중요할 수 있지만 파운드리 입장에선 꼭 그렇지만도 않다. 새 미세공정 기술 개발에 성공한다고 해도 수율이 떨어지면 되레 출혈이 커질 수 있어서다. 

이종환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공정이 미세화할수록 공정 난이도가 높아지며 수율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사이 출혈이 생기고 원가도 올라간다.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내부 출혈이 심하면 되레 문제가 된다. 함부로 공정을 바꾸는 게 쉽지 않은 이유다. 안정적인 3나노 공정이 불안정한 2나노 공정보다 나을 수 있다는 얘기다.” 안정성을 담보하지 않은 채 속도 경쟁에만 집착하면 인텔에 되레 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인텔의 문제는 또 있는데, 다름 아닌 생산능력이다. 김양팽 연구위원은 “기술력은 몰라도 시장점유율이나 규모(생산능력) 면에서는 당장 TSMC나 삼성전자가 투자한 만큼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인텔은 지난 3월 파운드리 시장 진출을 선언한 이후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올해 200억 달러(약 24조원)를 투입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파운드리 공장 2곳을 짓고, 뉴멕시코주 공장에 35억 달러를 투자한다. 유럽 지역에도 향후 10년여간 800억 유로(약 110조원)를 들여 반도체 생산능력을 키울 계획이다. 세계 4위의 미국 파운드리 업체 글로벌파운드리를 인수하려 한다는 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문제는 인텔이 투자하는 것 이상으로 TSMC와 삼성전자도 광폭 투자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압도적인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TSMC는 3년간 1000억 달러를 더 쏟아붓고, 삼성전자도 파운드리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2030년까지 17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렇지 않아도 생산단가가 높은 인텔이 규모에서도 밀린다면 TSMCㆍ삼성전자와의 경쟁에서 뒤처질 공산이 크다.

이를 의식한 탓일까. 팻 겔싱어 CEO는 지난 18일(현지시간) 한 미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생산단가가 아시아보다 30~40%나 비싸선 안 된다”면서 “생산단가 격차를 좁힐 수 있도록 도와줘야 미국에 더 많은 반도체 생산시설을 세울 수 있다”고 미국 정부의 지원을 촉구했다.

지난 3월 인텔이 출사표를 던진 이후 파운드리는 반도체 시장의 최대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치열한 경쟁의 결과는 2025년께 윤곽을 드러낼 공산이 크다. 파운드리를 앞세운 인텔은 과연 환골탈태에 성공해 ‘제2의 인텔 시대’를 열어젖힐 수 있을까.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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