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분석한 스태그플레이션 
둔화하는 경기와 치솟는 물가
S 공포 극복할 대책 마련해야

#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한국 경제를 덮쳤다. 물가는 무섭게 치솟는데, 경제성장률은 갈수록 둔화하고 있어서다. 몇몇 전문가는 ‘아직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다고 볼 수 없다’며 신중론을 펼치고 있지만, 현재로선 공포론이냐 신중론이냐를 두고 논쟁할 때가 아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우리를 휘감았을 때, 한국경제가 연착륙할 것인가 경착륙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불투명한 시장을 전망하는 ‘기준점’을 제시할 수 있어서다. 

# 이를 위해 더스쿠프가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던 2008~2009년과 2022년 1분기의 ▲실업률 ▲신용스프레드 ▲저축률 ▲소매판매 증가율 ▲가계부채 ▲환율 ▲기업경기실사지수 ▲소비자심리지수 등 8가지 경제지표를 비교·분석했다. 결괏값을 토대로 경기 연착륙 요인, 연착륙과 경착륙 경계선, 경기 경착륙 요인을 진단했다. 분석결과는 어땠을까.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둘러싼 시장의 갑론을박이 여전하다.[사진=연합뉴스]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둘러싼 시장의 갑론을박이 여전하다.[사진=연합뉴스]

고물가와 저성장이 함께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해소하는 건 쉽지 않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돈을 푸는 것도 어렵고, 물가를 잡기 위해 무조건 금리를 올리는 것도 악수가 될 수 있다. 돈을 풀면 물가가 뛰고, 금리를 인상하면 경기가 악화할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많은 경제전문가가 스태그플레이션을 ‘공포’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이런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한국 경제를 덮쳤다. 물가는 치솟고, 경기는 침체일로를 걷고 있어서다. 먼저 물가부터 보자. 통계청에 따르면 5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4%를 기록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4%대로 올라선 지 2개월 만에 5%를 돌파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5%대를 기록한 건 2008년 9월(5.1%) 이후 13년 8개월 만이다.

물가만 치솟는 게 아니다. 동시에 경기침체 시그널이 울리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1분기 국내 GDP 성장률은 전기 대비 0.6%를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 GDP 성장률이 1.3%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0.7%포인트 꺾였다. 예상치인 0.7%보다도 0.1%포인트 낮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최근 올해 전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5%(2021년 12월 전망)에서 3.0%로 1.5%포인트 낮추면서, 한국의 전망치도 3.0%에서 2.7%로 하향 조정했다. 한국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져들었다는 분석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김상봉 한성대(경제학) 교수는 “소비자물가 상승세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보면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일본식 장기침체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모든 의견이 그런 건 아니다. 1970년대 수준의 무시무시한 스태그플레이션 위기는 오지 않을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지난 2일 열린 ‘2022년 BOK 국제콘퍼런스’에 참석한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조사국장은 “인플레이션이 위협적인 수준이 아닌 데다 경제 위기에 대응하는 각국의 정책이 과거보다 견고해졌다”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의 가능성을 좀 더 차분하게 봐야 할 것을 주문했다. 

그렇다면 물가가 치솟고 성장률은 떨어지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선 객관적인 지표를 보는 게 좋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경제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서다. 

이를 위해 더스쿠프(The SCOOP)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던 2008~2009년과 20 22년 1분기의 ▲실업률 ▲신용스프레드 ▲저축률 ▲소매판매 증가율 ▲가계부채 ▲환율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소비자심리지수 등 8가지 경제지표를 비교·분석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경기 연착륙 요인❶ 실업률 = 경기가 얼어붙으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게 고용이다. 기업들이 고용을 줄이고 허리띠를 졸라맬 게 분명해서다. 고용이 급격하게 악화하고 있다면 경기침체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한창이었던 2009년 3월 우리나라 실업률은 4.0%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3.4%) 대비 0.6%포인트 높아졌다. 같은 기간 청년실업률은 7.6%에서 8.8%로 상승했다. 


2009년과 비교하면 2022년 현재 고용상태는 양호하다. 4월 기준 실업률은 3.0%를 기록했다. 취업자 수는 86만5000명으로 지난 1월의 113만5000명에 비해 다소 감소했지만, 실업률은 4.1%에서 3.0%로 개선됐다. 청년실업률도 7.4%로 10%를 웃돌던 지난해보다는 나아졌다. 고용의 질質을 따져봐야겠지만 고용 지표만 봐선 위기라고 꼬집기 어렵다. 

■경기 연착륙 요인❷ 신용스프레드 = 기업의 부도 위험을 판단하는 신용스프레드(회사채와 국고채의 금리차)도 살펴야 한다. 스태그플레이션과 같은 경제 위기가 발생하면 부채가 많은 기업부터 힘들어질 공산이 커진다.

신용스프레드가 벌어지면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게 힘들어진다. 기업의 부실 우려 탓에 회사채 가격이 떨어지는(회사채 금리 상승) 경우가 많아서다. 2008년 12월 회사채(3년물) 평균 금리가 8.35%까지 치솟은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국고채(3년물) 평균 금리는 3.97%로 신용스프레드는 4.38%포인트를 기록했다. 같은 기준으로 계산하면 2022년 6월 신용스프레드는 0.76%(회사채 3.89%-국고채 3.13%)에 불과하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비교하면 기업의 부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거다. 제조업 부채 비율이 지난해 1분기 71.7%에서 3분기 63.8%로 떨어졌다는 것도 연착륙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경기 연착륙 요인❸ 저축률 = 그럼 스태그플레이션을 버티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저축률은 어떨까. 한은에 따르면 올 1분기 총저축률(총저축÷국민총처분가능소득)은 35.7%를 기록했다. 코로나19의 확산세가 한창이던 지난해 1분기 37.5%보단 조금 떨어졌지만 여전히 30%를 웃돌고 있다. 이는 총저축률이 29.3%였던 2009년 1분기에 비해 6.4%포인트 높은 수치이기도 하다. 

소비지출에 쓰고 남은 돈을 얼마나 저축하는지 따지는 가계 순저축률도 2008년 3.3%에서 2020년 10.2%로 높아졌다. 물론 저축률이 높다는 게 반드시 긍정적인 요인인 건 아니다. 저축액 증가가 가계가 소비를 줄이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어서다. 

남주하 서강대(경제학) 교수는 “경기침체로 인한 소득 감소, 부채 상환에 대비하기 위해 저축을 늘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이는 가계가 소비를 줄이고 있다는 시그널일 수 있다”고 꼬집었다.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연착륙과 경착륙의 경계선❶ 소비자심리지수 = 저축률 상승의 부정적인 면을 감안하더라도 소비자심리지수가 양호한 흐름을 띠고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점이다. 지난 5월 소비자심리지수는 102.6포인트를 기록했다. 지난해 8월(102.5) 이후 가장 낮은 수치지만 100포인트를 웃돌고 있다는 건 긍정적이다.

소비자심리지수가 81포인트까지 하락했던 2008년 12월과 비교해도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참고: 소비자심리지수가 100보다 높으면 경기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고, 100 미만이면 부정적 의견이 많다는 걸 의미한다.] 

문제는 전망이 밝은 건 아니란 점이다. 가파른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소비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서다. 시장에서 소비 개선세가 짧게 끝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안재균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소비심리가 반등했고, 최소 3개월의 지속성을 보였다”며 “하지만 이번의 소비심리 개선세는 2개월 만에 끝났고, 반등폭도 제한적이었다”고 밝혔다. 

■연착륙과 경착륙의 경계선❷ 소매판매증가율 = 이런 불안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게 소매판매증가율이다. 이 증가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 비교하면 상당히 양호한 상태다. 2009년 2월 소매판매증가율이 -5.7%(전년 동기 대비)였던 데 비해 지난 4월 소매판매증가율은 0.5%를 기록했다. 

문제는 추세다. 지난해 12월 6.8%를 기록했던 소매판매증가율이 1월 4.7%, 2월 1.6%로 가파르게 떨어졌다. 3월 2.1%로 소폭 상승하긴 했지만 4월엔 다시 0.5%로 쪼그라들었다. 무섭게 치솟는 물가 탓에 지갑을 닫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건데, 이는 경기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게 뻔하다.

글로벌 경기의 영향을 크게 받는 우리나라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언덕은 내수소비여서다. 한은이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인 2.7%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은 것도 민간소비가 살아나고 있다는 배경에서였다. 소매판매증가율 둔화를 예민하게 분석해야 하는 이유다. 

■경기 경착륙 요인❶ 가계부채 = 그렇다면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높이는 요인은 무엇이 있을까. 가장 큰 변수는 올해 1분기 기준 1859조4000억원을 기록한 가계부채다. 가계부채를 둘러싼 경고음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제금융협회는 ‘세계 부채 모니터’를 통해 한국을 올 1분기 기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로 꼽았다. 실제로 조사대상 36개국 가운데 GDP 대비 가계부채가 100%를 넘는 곳은 한국이 유일했다.  

더 큰 문제는 기준금리 인상의 영향으로 원리금 상환 부담까지 커졌다는 거다. 한국은행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인상되면 이자부담액이 최소 3조3400억원 증가한다. 

GDP 넘어선 가계부채

이를 기준금리가 1.25%포인트 인상된(2021년 5월→2022년 5월) 현 상황에 적용해보면, 이자부담액은 최소 16조7000억원(3조3400억원×1.25÷0.25)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원리금 상환부담에 허덕이는 서민이 그만큼 증가했다는 건데, 이는 소비감소 국면이 시작됐음을 방증한다. 

■경기 경착륙 요인❷ 환율 = 다음은 환율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기준금리 인상은 원·달러 환율 상승(가치하락)을 부추기는 절대적 변수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기업에 유리한 건 사실이다. 같은 물건을 더 비싼 가격에 팔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 수출을 주도하는 일부 대기업의 상황일 뿐이다. 원자재 가격 인상분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대기업 협력사 등 중소기업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원자재 가격 인상분이 소비자 가격에 전가되면 민생 역시 답답해진다. 

이렇게 무서운 나비효과를 일으키는 환율은 지금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 7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1257.0원을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2008년 10월과 비슷한 수준이다.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얼마나 더 인상하느냐에 따라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웃돌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환율이 스태그플레이션의 원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주요 경제지표에서 경기둔화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주요 경제지표에서 경기둔화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경기 경착륙 요인❸ 기업의 경기전망 = 이는 기업의 경기전망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한은이 발표한 5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86으로 지난해 12월 95를 기록한 이후 계속 하락하고 있다. 

BSI가 개선세를 보인 곳은 수출기업(2022년 4월 93→5월 97)밖에 없었다. 중소기업은 4월 81에서 5월 78로 3포인트 하락했고, 내수기업은 한달 사이 5포인트(84→79)나 떨어졌다. 경영애로 요인으로 원자재가격 상승(15.6%)과 불확실한 경제상황(13.4%)이 1위와 3위를 차지했다는 걸 감안하면 기업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처럼 주요 경제지표와 소비자·기업의 전망은 경기둔화를 향하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서 한국경제가 연착륙할 것인지 경착륙할 것인지만 남아 있다는 말도 나온다. 공포론과 낙관론을 떠나 경기침체를 막을 해법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김상봉 교수는 “경기 상황과 산업에 맞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말을 이었다. “지금이라도 경기침체를 막을 세밀한 정책이 필요하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효과를 장담할 수는 없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디테일한 정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한국 경제가 일본식 장기침체에 빠질 수도 있다.”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막을 대비책을 강구하는 걸 미뤄선 안 된다는 얘기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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