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업 화장품 앞 3社3色
본업에 집중하는 빙그레
돌다리 두드리는 국순당
신사업 본격화한 모나미

누구나 뛰어들 수 있지만, 아무나 성공할 수는 없는 곳, 화장품 시장이다. 그래서인지 신사업으로 ‘화장품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정작 뛰어들지는 못하는 업체들도 숱하다. 빙과 업체 빙그레나 전통주 업체 ‘국순당’이 대표적이다. 반면 공격적으로 뛰어드는 곳도 있다. 대표적인 업체가 볼펜으로 유명한 ‘모나미’다. 화장품을 두고 각기 다른 선택을 한 이들 업체의 현주소를 분석했다. 

‘모나미’는 화장품 시장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을 계획을 세웠다. [사진=뉴시스]
‘모나미’는 화장품 시장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을 계획을 세웠다. [사진=뉴시스]

코로나19 시대의 필수품 마스크도 ‘K-화장품’의 인기를 가리진 못했다. 지난해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92억 달러(약 11조4300억원)를 기록했다. 코로나19란 몹쓸 변수가 터졌는데도, 수출액은 전년(75억 달러·약 9조2400억원) 대비 22.6%나 늘었다.

수그러들지 않는 한국 화장품의 인기만큼 화장품 시장을 기웃대는 업체들도 줄지 않고 있다. 개중엔 아이스크림, 전통주, 볼펜 업체도 있다. 이들은 과연 화장품 시장에서 어떤 행보를 떼고 있을까.

■발 뺀 자 = ‘바나나맛 우유’ ‘메로나’ ‘투게더’….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장수제품을 보유한 빙과업체 빙그레는 2017년 신규사업 목적에 ‘화장품 제조·판매업’을 추가했다. ‘CJ올리브영’과 콜라보레이션해 만든 ‘바나나맛 우유 화장품(2016년 11월 론칭)’이 히트를 친 직후였다.

바나나맛 우유 화장품은 빙그레의 대표 제품인 바나나맛 우유 패키지를 활용한 바디케어 제품이었는데, 품귀현상을 빚을 만큼 인기를 끌며 3개월여 만에 30만개가 판매됐다. 

빙그레로선 화장품 시장에서 가능성을 엿본 셈이었다. 실제로 당시 빙그레는 “(화장품 시장 진출)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지금 분위기는 다르다. 빙그레 관계자는 “당시 마케팅의 일환으로 화장품을 출시한 것”이라면서 “화장품 시장 진출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빙그레가 화장품 시장에서 발을 뺀 셈인데, 이유는 숱하다. 익명을 원한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분석했다. “바나나맛 우유 화장품은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인기를 끈 사례다. 하지만 화장품과 접점이 없는 빙그레가 반짝 인기를 등에 업고 시장에 안착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주덕 성신여대(뷰티산업학) 교수도 “화장품의 유통·마케팅 방식은 식품업과는 다르다”면서 “기존 방식을 과감히 바꾸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화장품 ‘봄꿈’을 접은 빙그레는 경쟁사 ‘해태아이스크림(20 20년 10월)’을 인수하는 등 본업에 집중하고 있다. 

■망설이는 자 = 빙그레와 비슷한 시기 “화장품 시장 진출이 임박했다”는 전망이 나온 업체가 있다. 전통주 전문업체 국순당이다. 이 회사는 2018년 주주총회를 거쳐 신규 사업목적에 ‘화장품 제조·판매업’을 추가했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었다. 당시 막걸리 등 전통주의 인기가 주춤하면서 실적이 악화일로를 걸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2015년 774억원이던 이 회사의 매출액은 2017년 627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국순당으로선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게 과제였던 셈이다. 더욱이 국순당엔 화장품 시장에서 차별화를 꾀할 만한 ‘비장의 카드’도 있었다. 전통주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박·누룩 추출물을 활용해 ‘발효 화장품’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양질의 원료를 손쉽게 확보하는 게 가능한 국순당으로선 일석이조였다. 

벤치마킹할 만한 사례도 있었다. 대표적인 게 일본의 화장품 브랜드 ‘SK-Ⅱ(제품명 피테라 에센스)’다. SK-Ⅱ는 일본 전통주 ‘사케’를 빚는 주조사의 피부가 곱다는 데 착안해 만든 발효 화장품이다. 업계 안팎에서 국순당이 ‘제2의 SK-Ⅱ’를 출시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쏟아진 이유다. 

‘빙그레’는 2016년 CJ올리브영과 콜라보한 ‘바나나맛 우유 화장품’으로 인기를 끌었다.[사진=뉴시스]
‘빙그레’는 2016년 CJ올리브영과 콜라보한 ‘바나나맛 우유 화장품’으로 인기를 끌었다.[사진=뉴시스]

하지만 그 후 4년이 흐른 지금 국순당은 여전히 ‘돌다리’를 두드리고 있다. 국순당 관계자는 “자체 연구소를 통해 꾸준히 화장품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면서도 “아직까지 브랜드 출시 계획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뛰어든 자 = ‘발 뺀’ 빙그레, ‘주춤거리는’ 국순당과 달리 화장품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곳도 있다. 흥미롭게도 문구업체 모나미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29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사업목적에 ‘화장품·판매업’ ‘화장품·화장용품 도소매업’을 추가하는 안건을 처리했다. 이 안건이 주총 문턱을 넘은 건 2020년 이후 2년 만이었다. 

사실 모나미는 2019년부터 화장품 시장 진출을 추진해왔다. 이 과정엔 송하경 모나미 대표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지만, 주주들의 반대에 막혀 번번이 무산돼 왔다. 2년 넘게 ‘화장품 밑그림’을 그려왔기 때문인지, 모나미의 시장 진출 프로젝트는 체계적으로 진행 중이다. 

모나미는 지난해 8월 188억원을 투자해 화장품 생산공장을 설립하고, 화장품 사업 담당부서인 ‘모나미 코스메틱’을 설립했다. 사업 계획도 공격적으로 짰다. 제품기획만 직접하고 제조는 OEM·ODM 업체에 맡기는 다른 업체들과 달리 모나미는 직접 OE M·ODM 사업에 진출할 방침을 세웠다. 문구류 제조업체의 강점을 살려 ‘펜슬형 색조 화장품’을 직접 생산하겠다는 거다. 

모나미 관계자는 “그동안 문구류를 제작하며 쌓아온 금형 기술 노하우 등을 활용한 제품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면서 “화장품 사업 계획이 주총을 통과한 만큼 더욱 적극적으로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다만, 모나미의 빠른 행보를 둘러싸고 우려의 시각이 없는 건 아니다. 

안승호 숭실대(경영학)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문구류 시장이 침체하면서 모나미로선 사업 다각화가 필요한 게 사실이다. 모나미가 금형 노하우를 활용해 틈새시장을 공략하겠다는 플랜을 세운 게 이 때문인 듯한데, 문제는 문구류와 화장품의 제조·유통 방식이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얼마나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화장품을 탐했거나 여전히 탐하고 있는 세 업체 중 마지막엔 누가 웃을까. 발을 빼거나 망설이는 곳일까 적극적으로 시장을 공격하는 곳일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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