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법 개정하며 일하는 국회 되겠다더니…
민생 살릴 법안들 국회 문턱 넘지 못해
채용비리 근절법안 82건 중 80건 계류 중
국회에 국민 목소리 대변할 자격 있나

293명. 21대 국회의원 수다. 국민을 대신해 법을 만들고, 정부를 감시하고, 민생을 챙기라고 만들어준 자리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21대 국회 3년차에 접어들었지만 ‘민생법안’은 줄줄이 낮잠만 자고 있어서다. 이러니 국회의 권한을 박탈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국회는 과연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할 자격이 있는 걸까.

정치인 자녀의 ‘아빠 찬스’ 논란이 청년층의 공분을 사고 있지만 채용비리 근절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정치인 자녀의 ‘아빠 찬스’ 논란이 청년층의 공분을 사고 있지만 채용비리 근절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각종 SNS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쉽게 낸다.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만나 목소리를 결집하기도 한다. 불공정한 기업엔 불매운동으로 맞서고, 앞뒤 다른 정치인에겐 질타를 쏟아낸다. 바야흐로 국민 목소리의 시대, 변화는 우리가 체감할 만큼 빠르고 깊다. 

하지만 한계는 뚜렷하고 갈길은 멀다.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목소리에 더 큰 힘이 붙으려면 법적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한껏 거세진 ‘목소리의 시대’, 민의民意의 대변자라는 국회의 역할이 중요해진 이유다. 그런데 지금 국회의 모습을 보면 ‘이들이 정말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다. 선거철만 되면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 “민생부터 챙기겠다”며 고개를 숙이지만, 그때뿐이어서다. 

실제로 20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진 지 2개월이 훌쩍 지난 데다 새 대통령까지 취임하지만 달라진 건 없다. ‘민생’을 뒷전으로 던져버린 국회는 그동안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싸움만 이어왔다. 검수완박 법안을 밀어붙이는 쪽이든 저지하는 쪽이든 하나같이 ‘국민’을 내세웠지만, 이 싸움에 박수쳐줄 국민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여야 국회의원들의 말대로 ‘모든 게 국민을 위해서’라고 애써 눈감아주더라도 의문이 남는다. 검수완박, 그것 말고 국회가 대체 뭘 했느냐는 거다. 실제로 21대 국회가 2020년 5월 개원한 지 어느덧 3년차를 맞았지만, 민생의 숨통을 텨줄 법안 중 상당수는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공교롭게도 21대 국회는 ‘일하는 국회’란 기치를 내걸고 출범했다. 이른바 ‘상시 국회’를 열겠다며 국회법까지 개정(2020년 12월 9일)했다. 개정 국회법에 따르면 각 상임위원회 전체회의는 매달 2회 이상 개회(국회법 제49조의 2), 법안심사소위원회는 매달 3회 이상 열어야 한다(제 57조).  

그런데 지난 1년간(2021년 4월~2022년 3월) 14개 상임위(국회법이 예외를 인정한 국회운영위·여성가족위·정보위·특위 제외) 중 약속을 지킨 상임위는 단 한곳도 없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가 ‘제21대 국회 상임위 전체회의·소위원회 의무 개회 현황’을 조사한 결과, 전체회의 월 2회 이상 개회를 모두 준수한 상임위는 0곳이었다. 발의된 법률안을 심사하는 ‘법안심사소위’ 개회 현황 역시 낙제점이었다. 월 3회 이상 법안심사소위를 개회한 상임위는 14곳 중 한곳도 없었다. 

참여연대 측은 “회의 개회 여부는 국회가 성실하게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지표”라면서 “국회 스스로가 일하는 국회가 되겠다고 국민과 약속해놓고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가 이렇게 ‘직무유기’를 대놓고 했으니, 민생 법안이 제대로 통과했을 리 없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소상공인 손실보상 법안, 거대해지는 온라인 플랫폼을 견제할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 법안, 청년층에 공정한 취업 기회를 보장할 채용비리 근절 법안, 장애인의 기본권인 이동권 보장 법안, 끊이지 않는 아동학대 근절법안까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법안은 1만529건에 이른다. 전체 발의 법안의 70.1%가 국회 안에서 맴돌고 있다는 거다. 더스쿠프는 이중 민생과 직결되는 ‘소상공인 손실보상 법안’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 법안’ ‘채용비리 근절 법안’의 자화상自畵像을 곱씹어봤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작은 목소리를 모아 큰 목소리를 내야 하는 자리다.[사진=뉴시스]
국회의원은 국민의 작은 목소리를 모아 큰 목소리를 내야 하는 자리다.[사진=뉴시스]

■낮잠❶ 손실보상 법안 = 소상공인 손실보상 법안(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대표적 민생법안 중 하나다. 이 법안은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진 지 1년 반여가 흐른 지난해 7월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시행 초기부터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을 만큼 한계가 뚜렷했다. 무엇보다 법이 시행된 2021년 7월 이전에 발생한 피해는 소급적용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아울러 집합금지·영업시간 제한 조치 외에 모임 인원이나 면적 제한 등으로 타격을 입은 소상공인은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점, 여행업·숙박업을 비롯해 사실상 영업제한을 당한 업종을 보상 대상에서 제외한 점은 한계로 꼽혔다. 이 때문인지 손실보상법 시행 이후에도 이를 보완할 관련 법안 발의가 줄을 이었다. 지난해 7월 이후 지금까지 추가로 발의된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13건에 달한다. 

발의 의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우원식·정태호·김성환 의원, 국민의힘 이철규·김승수·최승재 의원 등이 대표 발의한 법안엔 ▲2021년 7월 이전 피해도 소급적용 ▲인원·면적 제한에 따른 피해 보상 ▲여행업·공연업·숙박업종도 손실 보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법안별로 구체적 내용엔 차이가 있지만 더욱 폭넓고 충실하게 소상공인을 지원하자는 게 골자다. 

하지만 이들 법안 중 국회에서 논의된 법안은 한건도 없다. 1건(최승재 국민의힘 의원 발의안)은 ‘철회’됐고 나머지 12건은 계류 중이다. 법안이 낮잠만 자는 사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대선 공약보다 후퇴한 손실보상안을 내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4월 28일 발표된 인수위 손실보상안에는 소상공인들의 첫번째 요구사항이자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사항이던 ‘소급적용’ 내용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인수위는 “손실보상을 소급적용하는 대신 피해지원금으로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여행업·공연업 등 손실보상의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참고: 인수위 측은 여행업·공연업·전시업 등은 손실보상이 아닌 피해지원금 방식으로 지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인수위 관계자는 “손실보상 소급적용은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으로, 관련 자료를 모두 확인해야 하는 만큼 행정적 부담도 크다”고 설명했다. 소상공인 업계는 즉각 반발했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피해지원금은 사실상 위로금일 뿐”이라면서 “소상공인이 입은 직접적인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도록 (손실보상을) 소급적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가 제 할 일을 하지 않은 사이 소상공인의 어려움은 커졌고, 인수위는 공약을 지키지 않아도 될 ‘핑곗거리’를 얻은 셈이다. 

■낮잠❷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 법안 = 소상공인이 코로나19에 허덕이는 사이 온라인 플랫폼 시장은 급성장했다. 지난해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192조원. 국내 소매시장의 규모가 400조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온라인의 비중이 ‘절반’까지 차지한 셈이다. 

문제는 온라인 플랫폼의 영향력이 막강해지면서 ‘갑질 논란’이 커졌다는 점이다. 배달앱 업체들이 소상공인에게 과도한 수수료를 부과하거나, 쇼핑앱 업체가 광고 노출 알고리즘을 조작한 건 단적인 예다. 온라인 플랫폼 업체의 불공정 행위를 막을 이른바 ‘온플법(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사실 온플법이 처음 발의된 건 2020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법안을 대표 발의한 송갑성(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온라인 쇼핑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오프라인을 규제하는 현행법으로는 온라인 판매중개업자의 과도한 수수료·광고비 지급 요구 등 불공정 거래 문제에 대응하기 어려운 만큼 온라인 플랫폼의 특징을 반영한 새로운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

소상공인 손실보상 등 숱한 민생법안이 발의됐지만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사진=뉴시스]
소상공인 손실보상 등 숱한 민생법안이 발의됐지만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사진=뉴시스]


이 법안에는 ▲온라인판매중개업자, 온라인판매업자 등 용어 정의 ▲온라인판매중개업자에 검색·순위 결정 원칙 공개 의무 부과 ▲온라인 중개거래 계약 시 계약서 제공 의무 부과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를 기점으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온플법 발의가 줄을 이었고, 정부는 이를 수렴해 정부안(2021년 1월 28일)을 내놨다.[※참고: 정부안은 매출액 100억원 이상 중개플랫폼을 대상으로 ▲필수기재사항을 포함한 계약서 작성·교부 의무 ▲계약내용 변경 사전 통지 의무 ▲분쟁조정협의회 설치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네이버·카카오·쿠팡·배달의민족 등 30여개 업체가 대상이다.] 

법 제정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국회는 이 법안의 논의를 진행하지 않았다. 온라인 플랫폼 업계가 거세게 반발했기 때문이라지만, ‘법안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도 약했다. 실제로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온플법 9건은 소관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발의된 지 2년 넘게 처리되지 못한 온플법은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을 공산이 크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온라인 플랫폼은 자율규제를 원칙으로 한다”고 밝혀왔기 때문이다. 온플법을 추진해온 공정거래위원회 측은 “(온플법 관련) 균형 있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정책 방향은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과거 대형마트에 밀려 동네슈퍼가 설자리를 잃었던 것처럼 소상공인이 이번엔 ‘온라인 플랫폼’의 늪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낮잠❸ 채용비리 근절 법안 = 여야 국회의원이 뒷전으로 던져버린 민생법안은 또 있다. 청년층에게 공정한 취업기회를 담보해줄 채용비리 근절 법안이다. 21대 국회에선 채용비리 근절 법안이 30건이나 발의됐다. 대표적인 게 류호정(정의당) 의원이 지난해 1월 대표발의한 ‘채용비리 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이다. 

류호정안案의 골자는 ▲성별·출신지역·출신학교·구직자의 재산 등을 고려하는 행위를 채용비리로 규정 ▲채용비리 피해 시 구직자가 구인자에 손해배상 청구 가능 ▲채용비리 행위 시 혹은 채용비리 약속 시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밖에도 ▲정당한 사유 없는 근로조건 변경 금지 ▲채용 과정에서 직무와 무관한 개인정보 요구 금지 ▲채용 관련 금전 제공 요구·약속 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관련 법안이 숱하게 발의됐지만 모두 계류 중이다. 더 큰 문제는 30개에 달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빛을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20대 국회에서도 52건에 달하는 채용비리 근절 법안이 발의됐지만 이중 50건이 임기만료폐기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취업문은 더 좁아졌다. 임기 내내 ‘불공정 이슈’에 시달린 문재인 정부를 넘어 윤석열 정부로 이어진 ‘아빠 찬스 논란’에 청년층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화려한 금배지를 단 이들은 말로만 ‘청년’을 외치면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다. 

20·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채용비리 근절법안 82건 중 단 2건만 국회의 문턱을 넘었다는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쯤 되면 국회의원 293명 전원이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해도 무방하다. 이렇게 민생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국회가 국민의 작은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을까. 참고로 국회의원 293명이 받는 돈은 451억9919만원(2022년 연봉 기준)이다. 모두 국민의 돈이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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