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민생법안 어디에 있나 
복합위기와 금배지의 태만
정쟁에 파묻힌 대한민국 국회

절기상으론 입동立冬이 막 지났지만 경기는 한겨울이다. 3고高(고물가·고금리·고환율) 여파에 민생경제가 얼어붙고 있어서다. 하지만 민생법안 중 상당수는 국회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정쟁에 매몰된 국회의원들이 한시가 급한 민생법안은 거들떠보지 않고 있어서다. 

복합위기, 외환위기, 경제위기…. 지금 한국경제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들이다. 그만큼 한국경제가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거다. 실제로 한국경제를 괴롭히는 3고高 현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10월 5.7%를 기록한 소비자물가상승률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에도 5%대를 웃돌고 있다. 특히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가 심각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10월 근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4.8% 상승했다. 한국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에 막 빠져들었던 2009년 2월(5.2%) 이후 최고치다. 

근원물가가 상승하는 건 좋은 시그널이 아니다. 중앙은행의 통제 범위에 있는 품목의 물가마저 오르고 있다는 뜻이어서다. 쉽게 말하면, 한국은행의 물가안정책(기준금리 인상)이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인지 물가가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지난 9월 4.2%로 잠시 주춤했던 기대인플레이션은 10월 4.3%를 기록하며 상승세로 돌아섰다. 기대인플레이션은 경제주체들이 예상하는 1년 후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치다. 

문제는 이같은 인플레이션이 빚 있는 이들(차주借主)에겐 이중고를 안길 수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물가가 오르면 사실상 쓸 수 있는 돈이 줄어든다. 100원으로 살 수 있던 초콜릿의 값이 120원으로 오른 상황을 가정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이유를 들어 한국은행이 물가안정책을 써도 차주에겐 손해다. 물가를 끌어내리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시장금리가 상승해 대출 원리금(원금+이자)이 커져서다. 이중고는 벌써 시작됐다. 물가는 물가대로 올랐는데, 대출금리는 서민을 옥죄는 수준까지 상승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9월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각각 4.79%, 6.62%를 기록했다. 2년 전(주택담보대출 2.44%ㆍ신용대출 2.89%)과 비교하면 두배 가까이 올랐다. 

한국경제가 처한 복합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정치권이 힘을 모아야 한다.[사진=뉴시스] 
한국경제가 처한 복합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정치권이 힘을 모아야 한다.[사진=뉴시스] 

당연히 취약차주借主도 늘어났다.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취약차주의 비중은 지난해 말 6.0%에서 올해 6월 6.3%로 커졌다. 연체율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가계의 신용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8월 0.37%에서 올해 8월 0.42%로 1년 새 0. 05%포인트 상승했다.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의 연체율도 0.01%포인트(0.11%→0.12%) 높아졌다.[※참고: 한국은행은 24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 취약차주로선 지금보다 더 어려운 시기가 몰려오는 셈이다.] 

■ 휘청이는 수출 = 이런 상황에서 시장에 활력이 돌면 다행이다. 하지만 시장은 지금 침체기에 돌입했다. 한국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던 수출은 흔들린 지 오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0월 무역수지는 67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4월 24억8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이후 7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이다. 국제경제기구들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줄줄이 하향조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9월 경제협력기구(OECD)는 내년 한국의 GDP 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2.2%로 0.3%포인트 하향조정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기존 2.1%에서 2.0%로 낮췄다.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의 전망치는 더 암울하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내년 GDP 성장률을 1.8%로 전망했고, 대신증권은 이보다 더 낮은 1.6%를 제시했다. 

문제는 하락세를 띠고 있는 성장률만이 아니다. 레고랜드 사태에서 기인한 ‘자금경색’ 기류가 강해지고 있다는 건 나쁜 변수다. 레고랜드발 쇼크가 채권시장을 덮치면서 금리가 치솟고 있어서다.

지난 9월 27일 강원도가 레고랜드 지급보증 철회 의사를 밝히기 전 5.30%였던 회사채(3년물) 금리는 이후 5.73%(10월 21일)까지 상승했다. 그러자 기업어음(CP) 금리까지 치솟고 있다. 회사채로 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워진 기업들의 자금수요가 CP로 몰리고 있어서다. 

그 결과, 9월까지 3.01%에 불과했던 CP 금리는 지난 7일 4.94%로 뛰어올랐다. 2009년 1월 15일(5.0%) 이후 13년 10개월 만에 최고치다. 회사채와 CP로 자금을 마련하는 기업들의 자금경색을 우려하는 이유다. 이런 위기는 경기침체를 부추겨 결국 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실제로 L자형 침체를 걱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경제학) 교수는 “한국경제는 이미 스태그플레이션(물가상승+경기침체)에 진입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대외환경은 물론 가계부채 문제 등 대내환경도 위태로운 상태”라고 꼬집었다. 한상일 한국기술대학교(산업경영학) 교수는 “물가가 오르고 대출금리가 치솟으면 어려워지는 건 서민”이라며 “취약계층을 보호할 수 있는 정책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싸움만 하는 국회 = 이럴 땐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정책을 수립해야 하고, 국회는 민생을 위한 입법 활동에 힘써야 한다. 하지만 지금 국회에선 민생이 보이지 않는다. 여야는 사사건건 충돌하느라 법안을 챙길 여력조차 상실한 듯하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의 통과율은 24.3%(11월 9일 기준)에 불과했다. 20대 국회 30.6%보다 6.3%포인트 낮은 수치다. 당연히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민생법안도 수두룩하다. 

■ 자영업자 손실보상 강화 법안 = 대표적인 게 코로나19 자영업자 손실보상법이다. 지난해 7월 ‘손실보상법(소상공인보호및지원에관한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시행됐지만, 자영업자들의 불만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손실보상법의 허점이 숱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법을 시행한 지난해 7월 이전 발생한 피해는 보상받을 수 없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본격화한 시기가 지난해 7월 이후라는 걸 감안하면 불만이 터져나올 법했다. 여기에 인원 제한과 면적 등 자영업자가 방역 수칙을 지키는 과정에서 입은 손실도 보상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 때문인지 국회의원들은 법이 시행된 직후인 7월부터 올해 9월까지 20건의 손실보상 강화법을 발의했다. 법안의 핵심 내용은 ▲2021년 7월 이전 피해 소급적용 ▲인원·면적 제한에 따른 피해보상 ▲경영 위기에 처한 소상공인 채무조정 지원 ▲재난 피해 입은 소상공인에 공공요금 지원 ▲자영업자 임대료 감면을 위한 임대인의 세제혜택 강화 등이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지난 8월 말 발표한 ‘정기국회 22대 민생입법과제’ 중 하나로 ‘온전한 손실보상법’을 꼽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실천도, 실속도 없었다. 자신들이 국회를 장악했음에도 관련 법안은 모두 소관위에 계류 중이다. 

국회가 낮잠 자는 사이 ‘손실보상 소급적용’은 사실상 물 건너간 듯하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 10월 24일 열린 중기부 국감에서 “손실보상금 소급적용 시기를 놓쳤다”며 “다른 방법으로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문제는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끝난 게 아니란 점이다. 계절이 겨울로 접어들면서 ‘7차 유행’ 가능성이 확산하고 있어서다. 더 늦기 전에 온전한 손실보상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 수해 피해지원 법안 = 지난 9월 1조7000억원 규모의 피해를 입힌 태풍 ‘힌남노’와 관련한 법도 마찬가지다. 힌남노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다시 한번 할퀴었다. 수많은 점포가 물에 잠겼고, 시설물이 파괴되는 피해를 입었지만 이들이 받을 수 있는 피해보상은 점포당 재해구호기금 200만원(특별교부 정부지원금 200만원)이 전부였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상 소상공인 시설은 특별재난지역 지원 대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국회의원들은 수해 발생 직후 8~10월 관련 법안 5건을 잇따라 발의했다.[※참고: 앞서 2020~2021년에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3건이나 발의된 바 있다.] 

발의 법안의 주된 내용은 특별재난지역 선포 시 유통업·소상공인·중소기업 시설 피해 지원을 강화하고, 상업용 건축물도 재난으로 피해를 봤을 때 복구비 지원 대상에 포함하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한시가 바쁜 듯 쏟아진 이 법안들 역시 소관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국회에서 계류 중인 법안은 이뿐만이 아니다. 김영주, 이학영, 김정호, 홍익표, 민홍철(이상 민주당), 하태경(국민의힘) 의원 등이 발의한 폭우와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은 반지하 주택과 아파트 지하 주차장 관련법도 소관위에 머물러 있다. 수해 등 자연재해가 매년 반복되고 있지만 국회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는 셈이다.  

경기침체 가능성으로 민생경제가 어려움에 처했지만 국회는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경기침체 가능성으로 민생경제가 어려움에 처했지만 국회는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세입자 보호 법안 = 이번엔 민생에 직결된 주거 관련 법안을 살펴보자. 2020년 7월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하면서 세입자를 보호할 제도를 마련했다. ‘계약갱신청구권(2+2년)’ ‘전월세 임대료 인상률(5%) 상한제’ 도입의 효과였다. 하지만 한계도 뚜렷했다. 임대인이 실거주하면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할 수 없는 데다, 4년의 임대기간이 지난 후 새로 계약할 땐 임대료 상한 제한이 사라졌다. 

국회의원들은 이를 보완하려는 법안을 줄줄이 발의했다. 2020년 7월 이후 발의한 법안만 25건에 이른다. 집 없는 서민을 위해 당장 필요한 법이었다. 전세 보증금이 매매가를 넘지 않도록 제한하고, 계약이 만료되면 세입자가 낸 보증금을 즉시 반환하게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이 법안들도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잠만 자고 있다.  

■청년 자산형성 지원 법안 = 이뿐만이 아니다. 청년층을 위한 법안도 미뤄졌다. 일례로, 청년층 자산형성을 위한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청년저축계좌지원금·청년취업공제금·청년희망적금 등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청년 자산격차 완화를 위한 지원법’, 정부가 지원하는 청년도약계좌 신설 등을 내세운 ‘조세특례제한법’ 등은 소관위 접수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처럼 민생법안들이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데도, 국회는 “국민을 위한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9월 20일 7대 민생법안을 중점과제로 선정했다. 국민의힘도 같은달 25일 10개의 민생법안을 선정해 최우선적으로 처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정작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국경제가 복합위기에 처했다. 서민과 취약계층엔 힘겨운 시절이다. 민생법안을 서둘러 처리해야 하는 이유다. 지금 국회는 민생을 걱정하고 있을까.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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