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에 빠진 아모레퍼시픽
라네즈 앞세워 일본시장 공략
포스트 중국 찾을 수 있을까

“포스트 중국을 찾아라.” 아모레퍼시픽에 내려진 특명이다. 2016년 한한령限韓令으로 시작된 중국시장에서의 부진이 회복될 조짐이 보이지 않아서다. 그래서 아모레퍼시픽이 눈을 돌린 시장 중 한곳은 일본이다. 중저가 스킨케어 브랜드 ‘라네즈’를 앞세워 일본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을 포스트 중국으로 키울 수 있을까. 

포스트 중국을 찾는 아모레퍼시픽에 일본시장의 중요성이 커졌다.[사진=연합뉴스]
포스트 중국을 찾는 아모레퍼시픽에 일본시장의 중요성이 커졌다.[사진=연합뉴스]

쁘띠프라(プチプラ). 최근 일본 화장품 시장의 주된 트렌드다. 쁘띠프라이스(プチプライス)의 줄임말로 ‘가성비 좋은 화장품’을 일컫는다. 이같은 쁘띠프라 트렌드에 강점을 갖고 있는 화장품은 대부분 한국산産이다. 중저가 가격대에 톡톡 튀는 아이디어 상품들이 많아서다. 여기에 한국 아이돌ㆍ영화 등 ‘K-컬처’의 인기를 더하면서 일본에선 한국 화장품이 붐을 일으키고 있다. 

‘쁘띠프라’로 대표되는 가성비 트렌드는 ‘등 돌린’ 중국 말고 다른 시장을 찾는 아모레퍼시픽에 기회를 주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9월 14일 “라네즈 브랜드를 통해 일본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겠다”고 밝혔다. 라네즈가 일본 온·오프라인 화장품 플랫폼 ‘아토코스메(@cosme)’에 입점한 게 그 신호탄이다. 라네즈가 둥지를 튼 아토코스메는 소비자의 ‘리뷰’ 기반의 온라인 플랫폼으로 시작해 오프라인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아모레퍼시픽이 일본에 진출한 게 처음은 아니다. 2006년 사명을 그대로 딴 프리미엄 브랜드 ‘아모레퍼시픽’을 선보이며 일본에 진출했지만 시장에 안착하는 데 실패했다. 2014년엔 일본 내 아모레퍼시픽 매장을 모두 철수했다. 2011년 이후 중저가 브랜드 ‘에뛰드하우스’ ‘이니스프리’ 등을 론칭했지만,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해외 주력 시장인 중국 매출이 실적을 좌우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의 한한령限韓令(2016년)부터 현재의 코로나19 봉쇄조치까지 지속되면서 아모레퍼시픽의 실적은 고꾸라졌다. 2019년 5조5801억원이던 매출액은 지난해 4조8631억원으로 12.8% 감소했다. 

힘겨운 국면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올해 2분기 아모레퍼시픽의 해외 매출액은 2555억원으로 전년 동기(4186억원) 대비 38.9% 줄었다. 해외 매출의 50%가량을 차지하는 중국 매출이 쪼그라든 게 나쁜 영향을 미쳤다. ‘포스트 중국’을 찾아야 하는 아모레퍼시픽으로선 과거보다 일본 시장의 중요성이 더 커진 셈이다. 

그렇다면 이 회사는 일본에서 새로운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까. 언급했듯 일본에서 한국 화장품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건 기회요인이다. 일례로 지난해 대일對日 화장품 수출액은 7억8411만 달러로 사상 처음 1조원을 넘어섰다. 화장품 수출 국가 중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6.1%에서 현재(2022년 8월) 9.9%까지 높아졌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일본 소비자들이 화장품을 온라인에서 구입하는 비중이 높아졌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진열 매대가 한정적인 오프라인 매장과 달리 온라인에선 더 많은 소비자를 만날 수 있어서다. 아모레퍼시픽이 온라인을 주력으로 하는 아토코스메에 라네즈를 입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박종대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일본 MZ세대 사이에서 화장품을 구입할 때 SNS·유튜브를 확인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면서 “‘리뷰 플랫폼 어워드’에서 수상했는지 여부도 브랜드를 선택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호재는 또 있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2019년)로 경색했던 한일 관계도 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김주덕 성신여대(뷰티산업학) 교수는 “정권 교체 이후 일본과의 외교관계가 개선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은 기업 입장에선 긍정적인 요인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계도 적지 않다. 한국 화장품의 인기는 MZ세대가 선호하는 중저가 화장품에 국한해 있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일본에서 한국 화장품이 인기를 끄는 건 가성비가 좋고, 트렌디하기 때문”이라면서 “다시 말해 지금의 인기가 ‘반짝 효과’에 그칠 우려가 적지 않다”고 꼬집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지난해 일본이 수입한 화장품의 국가별 비중(일본수입화장품협회)을 보면,  프랑스에 이어 한국이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일본 인기 화장품 순위에선 한국 브랜드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온ㆍ오프라인 화장품 플랫폼 아토코스메가 발표한 ‘스킨케어 제품 톱10(2022년 2월 기준)’ 순위에 따르면, 1위 데코르테(일본), 2위 입사(일본), 3위 에스티로더(미국), 4위 랑콤(프랑스), 5위 가네보(일본)가 차지했다. 10위 내 한국 브랜드는 브이티 코스메틱(8위)이 유일했다. 같은 기간 ‘메이크업 제품 TOP 10’ 순위에 한국 브랜드는 없었다. 

김주덕 교수는 “한국 화장품의 브랜드력이 그만큼 약하다는 방증”이라면서 “아모레퍼시픽으로선 한국 화장품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을 바꾸는 것(중국→일본 등)만큼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는 일침이다. 중국 시장에서 일본·프랑스 등 프리미엄 브랜드에 밀리고, 중저가 중국 로컬 브랜드에 치여 설자리를 잃었던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김 교수의 말을 더 들어보자. “일본은 시세이도·고세 등 자국 브랜드의 품질이 뛰어나고, 그만큼 소비자 선호도가 높다. 결코 공략하기 쉽지 않은 시장이다. 제품 품질 개발과 철저한 브랜드 전략이 뒷받침돼야 하는 이유다. 일본 화장품 기업 등과 적극적인 인수ㆍ합병(M&A) 등도 필요하다.”

과연 아모레퍼시픽은 좀 더 복잡하고 까다로운 일본시장에서 중국에서만큼 성공할 수 있을까. 아직 예측하긴 어렵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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