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테스트 발표 신뢰할 수 없나
정부 이례적인 반박에도
통신3사 믿지 못하는 소비자
최저속도 미달해도 나 몰라라
소비자들은 불합리 느낄 수밖에

한국의 초고속인터넷 속도가 크게 떨어졌다는 통계가 발표됐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의 초고속인터넷 속도가 크게 떨어졌다는 통계가 발표됐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34위. 최근 한 인터넷 측정 사이트에서 전세계 국가 중 한국의 초고속인터넷 속도를 측정한 순위입니다. 줄곧 ‘인터넷 강국’이란 타이틀을 달아온 한국 입장에선 꽤 자존심이 상하는 결과입니다.

# 그래서인지 정부에선 즉각 이를 반박하는 자료를 냈습니다. 한국의 뛰어난 인터넷 인프라 수준을 생각하면 측정값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겁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이 광케이블 보급률 1위(86.61%), 유선 인터넷 속도 1위(2019년 기준)를 기록했던 걸 생각하면 일견 타당한 주장입니다.

# 그럼에도 소비자들은 정부의 목소리를 반신반의하는 듯합니다. 그도 그럴 게, 한국 인터넷 이용자들은 2021년 한해에만 인터넷 품질 저하, 깜깜이 개통, 불공평한 최저보장속도 등 통신사들을 둘러싼 각종 논란을 목격해 왔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강국이라고 불리기엔 한국 인터넷 산업의 어두운 면모가 꽤 짙다는 얘기입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이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한국의 초고속인터넷 평균 속도가 171.12 Mbps(2022년 11월 기준)로 178개국 중 34위를 기록했다.” 글로벌 인터넷 측정 사이트 ‘스피드테스트’가 지난 3일 발표한 내용입니다. 국내 통신업계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참고로 1위는 모나코(320.08Mbps)였고, 싱가포르(295.78Mbps)가 뒤를 이었습니다.

스피드테스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참고할 정도로 공신력이 있는 곳입니다. OE CD는 ‘2020~2021년 회원국별 초고속인터넷 다운로드 평균 속도’를 발표하면서 스피드테스트의 운영사 우클라(Ookla) 등 민간업체 3곳의 통계를 인용했습니다. 당시 우클라가 집계한 한국의 인터넷 속도는 171.3Mbps로 38개국 중 6위였죠.

OECD는 2021년까지만 자료를 집계했지만 우클라는 그 이후에도 인터넷 속도 순위를 계속 발표해 왔습니다. 여기서 한국의 순위는 2019년 2위→2020년 4위→2021년 7위로 조금씩 밀리는가 싶더니, 지난해 8월 19위→11월 34위로 크게 주저앉았습니다. 이게 바로 1월 3일 발표된 내용입니다.

사회적 파장을 우려해서인지 한국 정부는 즉각 반박에 나섰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스피드테스트가 구체적인 측정방식을 공개하지 않았다”면서 “스피드테스트의 자료로 국가별 인터넷 속도를 비교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한국은 매년 꾸준히 인터넷 속도 수준을 개선하고 있고, 관련 인프라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간단히 말해 ‘스피드테스트의 측정을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이었는데, 과기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도 있습니다.

2.5Gbps 이상의 초고속인터넷을 가능케 하는 광케이블 보급률이 86.6%(OECD· 2021년 기준)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습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전문가들도 “스피드테스트의 통계 결과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신민수 한양대(경영학) 교수는 “스피드테스트의 측정 방식은 소비자들이 인터넷 속도가 궁금할 때 온라인 사이트에서 측정하는 방식과 동일하다”면서 “데이터센터와의 거리, 모바일 환경 등 다양한 변수가 있어 균일한 결괏값을 보장하진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적극적인 해명에도 소비자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합니다. 스피드테스트의 발표자료를 공유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그럴 줄 알았다’ ‘어쩐지 인터넷이 느려 터졌더라’는 등 누리꾼들의 조롱 섞인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해당 내용을 담은 한 언론사의 유튜브 영상에도 하루 만에 수백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인터넷을 서비스하는 통신3사를 비판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정부가 구체적인 데이터까지 인용해 반박 입장을 내놨음에도 한국 소비자들이 차가운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뭘까요?

[사진 | 뉴시스, 자료 | 스피드테스트]
[사진 | 뉴시스, 자료 | 스피드테스트]

■ 그림자❶ ‘잇섭 사태’ = 여기서 잠시 시곗바늘을 2021년으로 되돌려보겠습니다. 그해는 통신사 KT가 ‘인터넷 속도 논란’으로 곤욕을 치른 때이기도 합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잇섭’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요금제를 내고 있는데도 KT 인터넷 속도가 현저히 떨어진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불거졌죠. 당시 잇섭은 8만8000원짜리 10Gbps 인터넷을 쓰고 있었는데, 속도 측정을 해보니 103.49Mbps에 불과했던 겁니다. 사실상 2만2000원짜리 100Mbps 요금제와 같은 속도의 인터넷을 쓰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해당 내용을 담은 유튜브 동영상은 48시간 만에 조회수 100만회를 넘기며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여기에 다른 이용자들이 비슷한 경험담을 풀어놓으면서 논란은 일파만파 커졌습니다.

결국 KT가 4월 21일 “인터넷 장비를 증설하고 교체하는 과정에서 속도 정보를 설정하는 데 오류가 있었다”며 잘못을 시인하는 사과문을 게시하면서 속도 품질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했습니다.

■ 그림자❷ 깜깜이 개통 = ‘잇섭 사태’가 불러온 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속도 논란이 잠잠해지자 이번엔 인터넷 개통 문제로 KT가 또다시 구설에 올랐습니다. 그해 5월 KT의 계열사인 KT서비스(KTS)가 인터넷 설치기사들에게 ‘인터넷 개통 기준 속도를 하향하라’는 지시를 문자로 보낸 게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입니다. 예를 들어, 1GB의 개통 기준을 기존 800Mbps에서 600Mbps로 낮추는 식입니다. 이 지시대로라면 하향 전의 기준치에 미달하더라도 인터넷을 개통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KT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해 7월 방송통신위원회와 과기부가 통신3사를 대상으로 실태점검을 한 결과, KT 2만4221건, LG유플러스 1401건, SK브로드밴드 155건 등 2만5777건에서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이는 인터넷 개통 시 인터넷 속도 측정을 아예 하지 않거나, 통신사 약관에서 명시한 ‘최저보장속도(Service level agree ment·SLA)’에도 미치지 않음에도 개통을 강행한 건수입니다.


이 때문에 통신3사는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을 이유로 방통위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았습니다. 이는 통신3사가 가입자 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꼼수’를 부려왔다는 걸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사진 | 뉴시스, 자료 | OECD·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사진 | 뉴시스, 자료 | OECD·과학기술정보통신부]

■ 그림자❸ 최저보장속도 = 한국 인터넷의 어두운 면은 또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SLA입니다. 2002년 SLA 제도를 도입할 당시 정부는 통신사의 약관에 인터넷 요금제가 표시한 속도의 30~50%를 SLA로 규정하도록 했습니다. 통신사는 인터넷 속도가 SLA를 밑돌면 요금감면 등의 보상을 해야 합니다.

문제는 SLA가 의무사항이 아닌 권고사항이란 점입니다. 의무가 아니기에 통신3사는 SLA보다 인터넷 속도가 떨어지더라도 해당 고객에게 알리지 않아도 됩니다. 바꿔 말하면 인터넷 품질이 떨어진다고 느꼈을 경우 고객 스스로가 이를 증명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인터넷 개통을 돕는 대리점의 한 관계자는 “고객이 인터넷 속도를 테스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온라인 측정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뿐인데, 그마저도 모르는 고객이 많다”면서 “사실상 소비자가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십수년간 유지돼온 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불합리 느낀 소비자들

그나마 다행인 건 정부가 나서서 문제점을 보완했다는 겁니다. 2021년 6월 과기부는 통신3사가 모든 초고속인터넷 상품의 SLA를 50%까지 높이도록 통신사의 이용약관을 개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잇섭 사태’ 이후 정부가 소비자를 위해 만든 후속조치였죠. 이에 따라 KT와 LG유플러스가 SLA 기준을 기존 30~50%에서 50%로 상향했습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남습니다. 여전히 의무사항이 아닌 권고사항이어서 속도 저하로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소비자가 이를 발견해 증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지침에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한국 소비자들은 2021년 한해에만 ▲속도 저하 논란 ▲개통 꼼수 논란 ▲불공평한 최저보장속도 등 한국 인터넷 서비스의 각종 어두운 면들을 접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모든 과정은 소비자 입장에 있던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고발에서 시작됐죠.

스피드테스트의 측정 결과를 ‘일개 사이트의 잘못된 통계’로 가볍게 넘겨선 안 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신민수 교수는 “스피드테스트의 통계가 시사하는 점이 있다면 일반 소비자가 접하는 인터넷 환경을 토대로 자료를 수집했다는 것이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습니다.


“모든 변수가 통제된 상황에서 테스트를 하면 당연히 최적의 속도값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와 다르게 스피드테스트의 측정 환경에선 각종 변수들이 인터넷 속도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는 바꿔말하면 스피드테스트가 소비자의 입장에서 한국 인터넷 속도를 따져봤다는 얘기가 된다. 통신3사나 정부가 주장하는 속도에 크게 못 미치는 속도감을 체험한다면 소비자로선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이번 스피드테스트의 통계를 단순한 해프닝으로 여겨선 안 되는 이유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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