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수출 · 내수 동반 감소
뒷전으로 밀린 예산안 심사

늦었지만 이제라도 예산안 심사 및 처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사진=뉴시스]
늦었지만 이제라도 예산안 심사 및 처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사진=뉴시스]

끝내 10월 생산이 확 꺾였다. 감소폭(-1.5 %)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가장 크다. 한국 경제를 떠받쳐온 수출 엔진이 식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경기가 침체의 혹한기로 진입했다는 신호다. 이태원 참사와 화물연대 파업 등 돌발 악재는 반영되지 않은 수치가 이 지경이니 앞으로가 더 문제다.

실물경제 지표들이 코로나19 사태 직후인 2020년 봄 수준으로 회귀하는 모습이다. 제조업 등 광공업 생산이 지수 하락을 이끌었다. 미국의 금리인상과 중국의 경기둔화 여파로 수출이 부진해지자 재고를 털어내야 하는 기업들이 공장을 덜 돌린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이 2.7%포인트 급락했다. 공장 가동이 줄어든 가운데 반도체 등 주요 업종의 재고는 자꾸 쌓이고 있다. 

제조업만 부진한 게 아니다. 올해 들어 수출 못지않은 엔진 역할을 해온 내수도 주춤거리고 있다. 10월 서비스업 생산이 0.8% 줄었다. 감소폭이 2020년 12월(-1.0%) 이후 22개월 만에 가장 크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회복되던 숙박·음식점업과 예술·스포츠 등 개인 서비스업 생산이 동반 감소했다. 

10월 소매판매액(소비)도 0.2% 줄며 두달 연속 감소했다. 물가가 전반적으로 오른 가운데 금리가 계속 오르자 대출 원금과 이자 상환 부담이 커진 가계의 소비 여력이 줄어든 결과다.

10·29 이태원 참사는 경제 측면에서도 악재다. 대형 참사에 따른 사회적 우울감은 소비를 위축시킨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 소매판매액 증가율은 0.7%로 직전 3월(2.2%)의 3분의 1 수준으로 둔화했다. 그해 5~7월 소매판매액 증가율도 1%대로 연간 증가율(2.1%)을 밑돌았다. 이태원 참사도 마찬가지로 11월부터 연말, 내년 초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수출 전선은 이미 초비상이다. 11월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14.0% 급감했다. 주력인 반도체와 석유화학 제품 수출이 30% 가까이 줄고, 중국 수출도 4분의 1 토막이 날아간 결과다. 수출은 10월에 이어 두 달 연속 감소했다. 

반면 수입은 에너지를 중심으로 계속 증가했다. 그 결과 수출입차인 무역수지는 지난 4월부터 내리 적자다. 4월부터 11월까지 8개월 연속 무역적자는 1997년 외환위기 후 25년 만의 일이다.

11월 무역적자는 70억 달러, 올해 들어 누적 적자가 426억 달러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 297억 달러 흑자였던 것과 비교하면 1년 새 700억 달러 이상이 금고에서 빠져나간 셈이다. 이처럼 수출보다 수입 증가세가 크다 보니 수출이 경제성장에 기여하기는커녕 갉아먹는다.

3분기 경제성장률이 0.3%로 2분기(0.7%)의 절반으로 꺾인 가운데 가까스로 역성장을 면했다. 그나마 민간소비와 설비투자가 떠받쳐서 이 정도지, 수출의 성장기여도는 마이너스 1.8%포인트였다. 

수출과 내수가 동반 감소하며 비상등이 켜진 가운데 레고랜드 사태가 촉발한 자금시장 경색이 기업들을 옥죈다. 설상가상으로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 거부 사태까지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건설·자동차·철강·석유화학 등 산업 피해 규모가 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수출이 급감하고,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면 경기는 가라앉기 마련이다. 한국은행을 비롯해 대다수 국내외 경제예측기관들이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대로 낮춰 잡은 이유다. 당장 올해 4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란 우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산업생산이 가파르게 꺾인 10월, 수출이 급감한 11월에다 화물연대 파업이 장기화하는 현실을 보면 12월, 올해 마지막 달에 수출을 만회하기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실물경제에 한파가 몰려올수록 재정의 조기 집행을 통한 경기 자극이 긴요하다. 여야 정치권이 지금이라도 정쟁을 멈추고 민생에 집중해야 한다.[사진=뉴시스]
실물경제에 한파가 몰려올수록 재정의 조기 집행을 통한 경기 자극이 긴요하다. 여야 정치권이 지금이라도 정쟁을 멈추고 민생에 집중해야 한다.[사진=뉴시스]

수출과 소비·투자 등 민간 경제활동이 위축되면 정부 재정이 제대로 기능하며 보완재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의 책임 소재와 관련해 행정안정부 장관의 거취 문제를 놓고 여야 정당이 대립하면서 내년 예산안 심사가 뒷전에 밀려 법정시한(12월 2일) 내 처리가 어려워졌다.  

실물경제에 한파가 몰려올수록 재정의 조기 집행을 통한 경기 자극이 긴요하다. 여야는 입으로만 민생안정과 경제회복을 외치지 말고, 늦었지만 이제라도 예산안 심사 및 처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깜깜이·졸속심의’ ‘쪽지예산’ 같은 뒷말이 또다시 터져 나오지 않도록. 정부도 자금시장을 조기에 안정시키고, 비상 상황에 맞춘 새해 경제정책 방향을 짜야 할 것이다.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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