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➍
아직도 갈 길 먼 경찰 수사
제대로 힘 못 받는 국정조사
안전시스템 허점도 못 메워

159명(생존 후 사망자 포함)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는 112녹취록 등 다양한 정황을 통해 인재人災임이 드러났다. 그동안 숱한 사고를 겪었음에도 우리나라의 안전시스템에 큰 구멍이 뚫려 있었던 셈이다. 가족이나 친지를 잃은 유족들의 가슴에도 멍에가 남았다. 하지만 여야 정치권은 이태원 참사의 후속조치를 뒷전으로 미뤄놓은 채 정쟁에 몰두하고 있다. 

국회의원 상당수가 이태원 참사 재발 방지를 위한 법률 개정안을 내놨지만 처리된 건 하나도 없다.[사진=뉴시스]
국회의원 상당수가 이태원 참사 재발 방지를 위한 법률 개정안을 내놨지만 처리된 건 하나도 없다.[사진=뉴시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두달이 다 돼 간다. 하지만 수습은커녕 진상규명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수습을 위한 수사를 강조했지만 의미 있는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정부 관계자들과 정치인들의 상식 밖 언행들은 또다른 논란을 재생산하고 있다. 참사의 재발을 막겠다며 국회의원들이 무더기로 내놓은 각종 법률 개정안은 하나도 처리되지 못한 채 정쟁 속에 묻혀 있다. 서울시의회 의원들이 발의한 조례안들도 멈춰 있다. 

하나씩 곱씹어보자. 정부와 집권여당이 우선시했던 경찰(경찰청 특별수사본부) 수사가 시작된 지 두달이 지나서야 겨우 주요 피의자들을 구속했다. 먼저 특수본은 12월 13일 이태원에 핼러윈 인파가 몰릴 것으로 우려한 보고서의 삭제를 지시하고, 이 지시를 실행한 경찰 3명 중 2명을 구속 송치했다. 

반면 부실대응 혐의를 받는 주요 피의자인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과 송병주 전 용산서 112상황실장을 구속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한번의 기각을 거쳐 12월 23일에야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27일에는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의혹을 받는 박희영 서울 용산구청장과 용산구청 안전재난과장이 구속됐다. 

물론 이들이 구속됐다는 건 혐의 입증이 어느 정도 됐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혐의 입증을 통한 재판이 남았고, 그게 얼마나 길어질지 가늠할 수 없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11월 24일 우여곡절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는 21일에야 첫 현장조사를 시작했다. 국정조사를 밀어붙였던 더불어민주당이 ‘2023년 예산안 처리 직후 본격적인 국정조사 시작’을 방침으로 세웠는데, 예산안 합의가 진통을 겪으면서 국정조사도 뒤로 밀린 거다. 국민의힘이 예산안과 국정조사를 협상테이블에 올린 탓도 있다.

이 바람에 국정조사 기간 45일(2023년 1월 7일 만료) 중 27일을 날려버렸다. 더불어민주당은 기간 연장을 요구하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반대의 뜻을 밝히고 있어 경찰 수사보다 충실한 국정조사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정조사가 쉽게 흘러가지 않을 거라는 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을 솎아내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12월 27일 국회 국정조사에 출석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야당 국회의원들이 ‘늑장 대응’을 지적하자 “이미 골든타임이 지난 시간이었다”면서 “그 사이에 놀고 있었겠느냐”고 따졌다. 정부의 무능을 스스로 시인하면서도 되레 큰소리를 친 셈이다.[※참고: 여기서 ‘늑장 대응’이란 이 장관이 수행기사가 일산에서 압구정까지 오는 걸 기다렸다가 현장에 85분이나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는 최근에야 첫 현장조사를 진행했다.[사진=뉴시스]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는 최근에야 첫 현장조사를 진행했다.[사진=뉴시스]

그런 가운데, 정부 관계자들과 일부 여당 정치인들의 비상식적 언행은 멈추지 않고 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가) 세월호처럼 정쟁으로 소비되다가 시민단체의 횡령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10일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자식 팔아 장사한다, 나라 구하다 죽었냐(12일 김미나 국민의힘 창원시의원)” “이태원 시민대책회의는 국가적 비극을 이용한 참사 영업을 하려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19일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 등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12월 19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한덕수 국무총리는 “분향소에 온 이유가 무엇이냐”는 유족들의 질문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결국 한 총리는 헌화도 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떴다. 반면 분향소 앞에서 ‘사실상 맞불집회’를 하는 보수단체 회원들과는 악수를 했다.

한 총리는 이태원 참사 직후 가진 외신기자간담회에서 농담을 늘어놓고, 참사 후유증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고등학생을 향해선 “좀 더 굳건하면 좋았을 것”이라는 등의 발언을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이태원 참사로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유가족들의 뚫린 가슴은 메워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여야 정치권이 안전시스템의 허점을 메운 것도 아니다. 이태원 참사 이후 국회의원들은 안전시스템을 개선할 법안을 경쟁하듯 쏟아냈다. ▲주최자가 없거나 불분명한 비공식 행사라도 지방자치단체장이 사고 예방을 위한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관리가 쉬운 곳에 배치된 공공기관용 심폐소생장치를 접근성이 쉬운 곳에 배치하게끔 하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재난 발생으로 영업에 심대한 피해를 입었거나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는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소상공인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이다. 

이런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만 해도 242명(13개 개정안ㆍ이태원 참사 관련)이고, 그중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9개 개정안)’을 공동발의한 이들은 185명에 달한다. 전체 국회의원이 300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법이 당장 개정돼도 이상할 게 없다. 법 개정에 필요한 정족수는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의 과반수 찬성이다. 

하지만 이 법률 개정안은 여전히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국회의원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법률 개정안도 이런 상황인데, 다른 법률 개정안들은 오죽할까. 대부분은 해당 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서울시의회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 다중밀집사고 관련 서울시 재난 사고조사위원회 구성ㆍ운영 요구 결의안 ▲서울시 옥외행사의 안전관리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김춘곤 등) ▲서울시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에 관한 조례안(국민의힘) 등의 결의안과 조례안이 위원회 회부조차 안 되거나 소관위 심사도 못한 채 계류 중이다. 

지방세특례제한법에 따라 재해를 입은 이들에게 지방세를 감면해주는 ‘이태원 희생자 가족에 대한 지방세 감면 동의안(오세훈 서울시장)’, 이태원 참사 신속 대응과 유사 사고의 재발 방지를 위해 행정적ㆍ제도적 대책을 마련하려는 ‘서울특별시의회 이태원 사고 대책 마련을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박환희 운영위원장)’을 가결했다는 점에서 국회보단 나은 상황이다. 

이태원 참사 이후 불법 증축과 불법 구조물이 사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각 지자체가 일제히 단속에 나선 것도 다행이긴 하지만 이같은 단속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아쉽게도 이태원 참사와 비슷한 사고를 예방할 장치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태원 참사 유족들을 향한 2차 피해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치권이 정쟁에 빠진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다. 여야 모두의 책임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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