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➋
기로에 선 컬리의 딜레마
기업가치 하락에 IPO 철회
적자 해소 위한 사업 영역 확대
컬리가 추구해온 본질 흔들렸나

신선식품 새벽배송 업체 컬리는 2015년 혜성처럼 등장했다. ‘샛별배송’이라는 전에 없던 서비스를 선보이면서다. 그 중심엔 창업자 김슬아 대표가 있었다. “먹을 것에 진심”이라는 그가 직접 고른 상품들은 3040대 여성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랬던 컬리는 지금 ‘컬리다움’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업가치가 하락하면서 기업공개(IPO)까지 연기했다. 달라진 컬리는 어떤 길을 걸을까. 

컬리는 2022년 11월 ‘뷰티컬리’를 론칭하면서 플랫폼명을 ‘마켓컬리’에서 ‘컬리’로 변경했다.[사진=뉴시스]
컬리는 2022년 11월 ‘뷰티컬리’를 론칭하면서 플랫폼명을 ‘마켓컬리’에서 ‘컬리’로 변경했다.[사진=뉴시스]

2022년 기업공개(IPO) 시장의 대어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컬리’가 결국 상장 계획을 연기했다. 컬리는 지난 4일 “글로벌 경제 상황 악화와 투자 심리 위축을 고려해 코스피 상장을 연기한다”면서 “기업가치를 온전히 평가받을 수 있는 최적의 시점에 상장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한 컬리로선 오는 2월까지 상장 절차를 완료해야 했다. 하지만 주식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기대했던 몸값을 받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지자 상장을 미뤘다. 

컬리는 2021년 12월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를 통해 앵커에쿼티파트너스로부터 25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기업가치는 4조원을 평가받았다. 당시 투자자들이 기대한 상장 후 기업가치는 6조~7조원대였지만 지금 거론되는 컬리의 몸값은 1조원대에 불과 하다.

컬리가 IPO를 완주하지 못할 거란 전망이 끊임없이 새어 나왔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컬리 측은 반박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상장철회설을 일축했다. 결과적으로 상장 연기를 공식화하면서 컬리는 상장예비심사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서용구 숙명여대(경영학) 교수는 “끝까지 고수했던 상장 계획을 연기한 건 김슬아 대표가 고심 끝에 내린 결정으로 보인다”면서 “컬리로선 다음 IPO를 추진할 때까지 수익 모델을 만들어내면서 버텨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설명했다. 관건은 컬리가 다음 IPO 때까지 몸값을 끌어올릴 수 있느냐다. 기업가치를 스스로 증명해내는 게 컬리의 과제가 된 셈이다. 

■ 현주소➊ 팔수록 적자 = 서용구 교수의 설명처럼 컬리는 수익 모델을 만들어 내야 한다. 2015년 새벽배송(샛별배송) 서비스를 시작한 컬리는 현재까지 9000억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유치했지만 지난 7년간(2015~2021년) 누적 적자도 4952억원으로 불어났다. 신선식품을 직매입해 판매하는 만큼 원가 부담이 큰 데다 새벽배송의 특성상 물류비·인건비가 많이 들어서다. 

물론 ‘유니콘 특례상장(기업가치 1조원 이상일 경우 별도의 재무조건 없이 코스피 상장 가능)’을 추진해온 컬리로선 적자여도 IPO엔 큰 무리가 없다. 그렇더라도 매출이 늘수록 적자가 커지는 상황에서 흑자전환은 컬리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컬리 측은 “계획 중인 신사업을 무리 없이 펼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외부의 시각은 불안하기 만하다. 업계 관계자는 “컬리는 2021년에도 역대 가장 큰 규모의 적자(2177억원)를 기록 했다”면서 “당장 흑자전환이 어려운 만큼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선 추가 투자 유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료|금융감독원, 사진 | 뉴시스]
[자료|금융감독원, 사진 | 뉴시스]

■ 현주소➋ 흔들린 본질 = 물론 컬리도 수익성 개선을 위한 작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11월 화장품 카테고리인 ‘뷰티컬리 ’를 공식 론칭한 건 대표적인 예다. 식품에 비해 단가가 높고 재고관리가 손쉬운 화장품을 통해 수익성을 개선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뷰티컬리 모델로는 톱스타 제니(블랙핑크 멤버)를 기용했다.[※참고: 컬리는 지난 10월 기존 서비스명 ‘마켓컬리’를 컬리로 바꿨다. 컬리는 식품 카테고리인 ‘마켓컬리’와 화장품 카테고리인 ‘뷰티컬리 ’로 나뉜다.] 

뷰티컬리 공식 론칭 3개월여 후인 지난 10일 컬리는 “명품 뷰티 제품 판매량이 (뷰티컬리 가오픈 기간 2022년 9~10월) 대비 3.2배 증가했다”면서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뷰티컬리를 선택했고, 뷰티컬리의 장점을 고객들도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다각화 전략이 컬리의 본질을 흔들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례로 컬리는 화장품뿐만 아니라 가전제품·여행상품·반려동물용품까지 판매하고 있다. 당초 프리미엄 식품을 주력으로, ‘백화점 식품관’을 콘셉트로 했던 컬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식품과 화장품이 뒤섞여 있어 보기에 불편하다” “새로운 것보다 컬리가 잘하는 걸 했으면 좋겠다” 등 고객들의 불만도 나온다.

김병규 연세대(경영학)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컬리는 ‘304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한 ‘프리미엄 식품’이라는 뚜렷한 색깔을 지닌 플랫폼이었다. 하지만 규모를 키우기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상품을 다양화하면서 컬리만의 색깔을 잃었다. 이는 컬리에 열광했던 기존 소비자에겐 실망감을 줄 수 있고, 새로 유치한 고객은 컬리 외에도 대안이 많다는 점에서 컬리가 성장하는 데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 ” 

■ 현주소➌ 치열한 경쟁 = 컬리가 야심차게 뛰어든 화장품 시장의 경쟁도 치열하다. H&B스토어 올리브영은 옴니채널 전략을 펼치고 있다. SSG닷컴(신세계), 롯데온(롯데) 등 백화점 계열사를 보유한 플랫폼도 숱하다. 뷰티컬리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백화점급 명품 화장품 브랜드와 손을 잡아야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높기만 하다. 

업계 관계자는 “샤넬·디올 등 한단계 높은 명품 브랜드가 뷰티컬리 플랫폼에 들어와야 (뷰티컬리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면서 “하지만 이들 브랜드는 주로 백화점 온라인 채널(외 카카오)에 입점할 만큼 콧대가 세다”고 말했다. 뷰티컬리의 성패에 의문부호가 찍히는 건 이 때문이다. 

서용구 교수는 “컬리는 수도권 3040대 여성 고객의 마음을 얻었지만 그들의 충성도가 식품에서 화장품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면서 “새로운 분야(화장품)에 경쟁력이 있어 사업을 확대하는 것과 고객의 충성도를 믿고 영역을 넓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주영 숭실대(중소벤처기업학) 교수 역시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컬리는 식품 분야에서 경쟁력은 검증됐지만, 식품과 화장품은 전혀 다른 분야다. 이미 시장에 진출한 경쟁사가 많은 데다 컬리의 기존 소비자로선 이질감을 느낄 수 있다.” 

[자료|금융감독원, 사진 | 연합뉴스]
[자료|금융감독원, 사진 | 연합뉴스]

초창기 컬리는 마니아층이 생길 만큼 매력 있는 플랫폼이었다.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편하게 먹고 싶어 창업했다”는 김슬아 대표의 진심은 3040대 여성의 공감을 이끌어 냈다. 그 후 빠른 성장을 선택한 컬리는 지속적인 투자를 유치하면서 외형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고객 1000만명에 매출액 2조원을 앞둔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아쉽게도 ‘컬리다움’은 잃었다. 

김병규 교수는 “컬리가 마니아층을 만족시키면서 차근차근 사업을 키워갔다면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투자를 유치하면서 창업자가 추구하는 가치 보다 외형적 성장에 주력하게 되는 게 국내 스타트업의 공통적인 현상이기도 하다”고 꼬집었다. 

컬리의 DNA나 다름없는 김 대표의 지분율은 2018년 27.94%에서 현재 5.75%(2021년 기준)로 낮아졌다. 초창기 컬리처럼 ‘김슬아’의 색깔을 내기도 쉽지 않다는 거다. 딜레마에 빠진 컬리, 과연 다음 IPO에선 성공할 수 있을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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