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尹의 처방전➏ IRA 대처
美 IRA에 요동치고 있는 자동차 시장
북미산 전기차에 보조금 혜택이 집중
잘나가던 현대차·기아 성장세 급제동
정부, 고위급 회담 등 물밑 협상 진행
소기의 성과에도 정부 평가는 엇갈려

‘미국에서 전기차를 만들어야 보조금을 준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의 요지다. 갑자기 나타난 장벽을 허물기 위해 세계 각국 정부가 발 벗고 나선 지금, 우리나라 윤석열 정부는 어떤 행보를 보이고 있을까.

미국 정부가 IRA를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혼란을 겪고 있다. 사진은 IRA에 서명한 낸시 펠로시 미 하원 의장(가운데).[사진=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IRA를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혼란을 겪고 있다. 사진은 IRA에 서명한 낸시 펠로시 미 하원 의장(가운데).[사진=연합뉴스]

2022년 8월 16일, 자동차 시장에 거대한 파도가 덮쳤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서명으로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ㆍInflation Reduction Actㆍ이하 IRA)’이 정식 발효하면서다. 미 정부가 IRA에 새로운 전기차 보급 대책을 포함하면서 글로벌 완성차기업들은 사업 운영에 직격탄을 맞았다.

문제의 중심에는 전기차 보조금이 있다. 이전까지 완성차기업들은 미국 시장에서 전기차를 판매할 때 차종에 상관없이 최대 7000달러의 보조금을 받았다.

하지만 IRA의 적용으로 이제는 다음 네가지 조건을 충족해야만 보조금(7500달러)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해당 차종을 북미에서 최종 조립할 것 ▲해당 차종에 사용한 핵심 광물이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를 원산지로 하거나 북미에서 재활용한 광물일 것 ▲배터리 부품은 북미 지역에서 조립 혹은 제조할 것 ▲출처가 ‘해외 우려 대상 기관’인 부품을 금지할 것 등이다. 

완성차 업계로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었다. 대부분 기업이 미국 외 국가에서 만드는 차종의 비중이 큰 데다, 중국산 광물 의존도 역시 높았기 때문이다. 미국에 수출하는 전기차 모델(아이오닉5ㆍEV6) 전량을 국내에서 생산하는 완성차 기업인 현대차ㆍ기아의 사정은 더욱 좋지 않았다. IRA의 첫번째 요건(북미에서 최종 조립한 자동차)에서부터 ‘실격’이니 두 회사가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이대로라면 현대차ㆍ기아가 미국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을 게 분명했다. 보조금 유무에 따라 차값이 최대 1000만원까지 차이가 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차ㆍ기아는 졸지에 판매량과 매출 감소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2022년 1~9월 미국 전기차 시장점유율 2위(양사 합산 9%)를 달리던 두 회사의 성장 가도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윤석열 정부가 IRA 적용을 유예하고, 보조금 지원 요건을 완화하기 위해 직접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럼 정부의 행보를 살펴보자. IRA 발효 이후 15일 만인 2022년 8월 30일 산업자원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를 중심으로 긴급 통상추진위원회가 열렸다. 산자부는 범부처 합동대책반을 조직하고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책을 논의했다.

9월엔 이창양 산자부 장관이 고위급 협상을 위해 미국을 찾았다. 이 장관은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 미 상ㆍ하원 의원들과 만나 IRA 문제의 실질적 해결을 촉구했다. 10월부터 정부는 민관합동 TF를 만들고 업종별 간담회를 개최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후 정부ㆍ국회 합동대표단을 구성해 12월까지 미 행정부의 주요 인사들과 공식 협상 및 물밑 교섭을 이어갔다.

현대차·기아는 상업용 전기차 부문에선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사진=현대차 제공]
현대차·기아는 상업용 전기차 부문에선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사진=현대차 제공]

8월부터 12월까지 5개월간 벌어진 ‘IRA 레이스’의 결과는 어땠을까. 2022년 12월 30일 미국 정부는 ‘IRA 이행을 위한 가이던스(하위규정)’ 일부를 발표했는데, 여기엔 ‘상업용차를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한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었다. 우리 정부와 기업의 요구대로 ▲리스 ▲렌털 ▲승차공유(우버ㆍ리프트) 영역에선 (현대차ㆍ기아가) 전기차에 주어지는 7500달러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된 거다. 

정부가 미 행정부와 의회에 제시한 법 개정안(IRA 적용 3년 유예)은 채택되지 않았지만, ‘빈손’으로 돌아온 건 아니었다. 업계 전문가들도 “현대차ㆍ기아로선 아무것도 없는 ‘제로베이스’보단 일부분이라도 보조금을 받는 편이 낫다”며 이번 가이던스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정부 움직인 공 vs 기업 목소리 덕

하지만 정부의 역할론을 두곤 의견이 엇갈렸다. 먼저 부정적 견해부터 들어보자. 익명을 원한 전문가 A씨는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했다기보단 기업(현대차ㆍ기아)의 목소리가 통한 것이라고 본다”고 평했다. 

그에 따르면, 지금의 IRA 국면은 ‘민족주의적 국제산업논리’의 산물이다. 미국의 국익과 다른 나라의 국익이 충돌하고 있다는 얘기다. A씨는 “만약 우리가 미국의 입장이었어도 다른 나라를 위해 우리의 이익을 양보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IRA 국면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그의 분석을 계속해서 들어보자. 

“우리 정부의 힘이 셌다면 법 자체가 개정됐을 거다.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이번 가이던스 결과를 자세히 따져보면 우리는 여전히 얻은 게 거의 없는 수준이다. 보조금을 아예 못 받는 것보단 낫지만, 리스나 렌트 물량이라고 해봐야 상업적 용도가 아닌 개인 물량을 제외하면 현대차ㆍ기아의 전체 판매량에선 미미한 수준이다. 더구나 우버ㆍ리프트 같은 승차공유 업체는 안전과 경영효율성을 위해 차량 등록대수를 제한한다. 현대차ㆍ기아가 확보할 수 있는 플릿(fleetㆍ자동차를 한번에 대량으로 판매하는 것)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미국 정부에서도 ‘상업용 자동차를 보조금 대상에 포함한다’는 한줄짜리 조항을 기업이 ‘확대 해석’ 할 수 있게 해준 것뿐이다.”

반면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IRA는 본질적으로 미국 제조업의 뿌리를 탄탄하게 만들기 위한 밑작업의 일환이다. 자동차산업과 연계할 수 있는 기타 산업은 무궁무진하다. 가령, 자동차 소프트웨어만 해도 제조업에 IT기술을 더한 결과다. 미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융복합 제조업’의 미래를 그려왔다. 따라서 (자동차 관련 공급망을 구축하는) IRA도 순간에 그치는 ‘반짝’ 정책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항구 위원은 주장을 이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상대국은 어느 한 부분에서라도 챙길 수 있는 건 챙기는 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상업용차와 관련한 가이던스의 경우 정부가 미국에 연내(2022년) 발표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으니, 기업과 함께 발맞춘 정부의 공이 없다고 할 순 없다.” 

다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앞으로의 미래”라는 데엔 한목소리를 냈다. 김필수 대림대(미래자동차학) 교수는 “현재 IRA 가이던스는 최종 확정안이 아니다”면서 “정부는 오는 3월 IRA의 전면적인 시행전까지 불리한 요건을 완화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항구 위원은 IRA 대응을 포함한 자동차산업 관련 정책을 추진할 때 ‘실행전략’과 ‘전문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산자부에서 ‘자동차 산업 글로벌 3강 전략’을 발표했는데 정책만 내놓으면 무엇을 하냐”면서 “세부적인 실행전략이 있어야 정책을 현실화할 수 있는데, 2년에 한번씩 보직을 변경하는 공직사회의 특성상 그런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전문가가 부족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협의체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또다른 전문가 역시 “윤석열 정부는 최근 국토교통부에 모빌리티자동차국을 신설하는 등 자동차산업을 향한 나름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관료들의 전문성을 제고하려는 노력 없이는 과거 정부들처럼 ‘정책을 위한 정책’을 내놓는 실수를 반복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