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고찰: 출산의 거래학➌
전미경제연구소 저출산 솔루션
현대 부부 출산 교섭서 남녀 권력 비등
여성이 출산거부권 행사 안 하려면
남성 육아, 여성 임금, 공공 보육
NBER 진단과 정반대인 우리의 현실

추락하고 있는 한국의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정부에서 공공 보육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사진=연합뉴스]
추락하고 있는 한국의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정부에서 공공 보육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사진=연합뉴스]

271조원. 역대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6년부터 2021년까지 16년간 투입한 예산액이다. 결과는 처참한 수준이다. 2006년 45만1514명이었던 출생아 수는 2021년 26만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정부의 정책은 왜 실패했을까. 그 많던 예산은 다 어디에 쓰인 걸까. 더스쿠프가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보고서를 통해 해답을 찾아봤다.

불과 2년 전 우리나라는 출산율 부문에서 ‘꼴등’을 기록했다. 가임기(15~49세) 여성 한명이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 수를 ‘합계출산율’이라고 하는데, 2021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8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를 차지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6년 저출산ㆍ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한 후 2021년까지 271조원을 쏟아부었는데도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이 질문의 답은 지난해 4월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발표한 보고서(출산율의 경제학: 새로운 시대)에서 찾을 수 있다. 

흥미롭게도 NBER은 시장주의적 관점에서 저출산 문제를 분석했다. 보고서의 핵심은 두가지다. 하나는 출산의 거래화, 또다른 하나는 보육의 시장화다.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자. 

■ 변화➊ 출산의 거래화 = NBER의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전통적인 사회에선 남성이 독점적인 출산결정권을 가졌다. 여성에겐 사실상 선택권이 없었다. 하지만 현대 경제체제에서 출산은 부부의 ‘교섭’을 통해 결정된다. 여성의 노동참여율과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출산결정권을 둘러싼 남녀의 권력은 비등해졌다. 

이 때문에 부부 중 한사람이 ‘출산거부권’을 행사하면, 그대로 자녀를 갖지 않을 확률이 높아졌다. 달리 해석하면, 두명의 파트너가 모두 아이를 갖는 것에 동의할 때, 이를테면 부부의 의견이 일치할 때 출산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중요한 건 여기서부터다. NBER은 현대사회 부부들이 출산 여부를 결정할 때 ‘총효용’을 따진다고 분석했다. 아이를 가졌을 때와 갖지 않았을 때 편익을 따져본 뒤 이득을 보는 쪽을 선택한다는 거다.

이런 출산셈법에서 여성이 ‘육아 부담’이란 고정 변수를 일방적으로 떠안으면 부부 사이 의견이 불일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NBER의 보고서에선 부부의 의견 충돌이 결국 한 국가의 출산율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강조한다. 

■ 변화➋ 보육의 시장화 = 부부가 출산을 두고 벌이는 교섭 과정에서 마찰을 줄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남성이 아이를 돌보는 데 더 많은 기여를 하기로 약속해서 여성의 육아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외부에서 육아를 위한 노동력을 조달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주목할 곳이 바로 미국이다. NBER에 따르면 과거에는 여성의 소득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낮은 경향을 보였다. 지금은 다르다. 미국과 같은 고소득 국가의 합계출산율(2021년 기준 1.66명)은 우리나라의 두배에 달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육아에 필요한 추가 노동력을 공급받을 수 있는 ‘보육의 시장화’가 잘 이뤄진 덕이다. 

NBER은 여성이 보육을 ‘아웃소싱’할 수 있으면 시간의 기회비용을 금전적 비용으로 치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가령, 여성이 베이비시터에게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하면 시터에게 지출한 비용을 상쇄할 만큼의 수입을 올릴 수도 있다. 여성이 육아로 인해 포기해야 했던 편익을 되찾아 누릴 수 있게 되는 셈이다. 

■ 시장화의 한계와 보완점 = 여기서 관건은 여성이 보육 서비스를 위탁할 수 있는 여력을 가졌느냐다. NBER의 분석에선 여성의 월급이 생활비를 충당하기에 부족할 경우 스스로 육아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높았다.

반면 소득이 높은 여성일수록 시장에서 더 많은 보육 서비스를 구매하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바탕으로 NBER은 여성의 임금이 낮을 경우 보육 서비스를 이용하기 여의치 않기 때문에 출산을 제어해 결국 출산율이 줄어드는 현상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시장만능주의가 정답인 것만은 아니다. NBER은 보고서에서 “보육의 시장화에도 한계는 있다”며 “설사 고소득 여성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상당한 시간을 육아에 소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NBER은 이어 “시장화의 한계점을 메우기 위해선 공공 보육이 뒷받침돼야 한다”면서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공공 보육의 증가는 여성에게 더 많은 자유시간을 허락한다. 여성은 추가로 확보한 시간을 더 많은 자녀를 낳고, 더 많이 일하며, 더 많이 소비하는 데 사용한다. 공공 보육이 늘어날수록 여성의 출산율도 높아질 것이다.”

■ 한국의 저출산 현실 = 자! 이쯤에서 지금까지 내용을 정리해보자. NBER의 연구에 따르면 오늘날 부부들은 상호 교섭을 통해 출산 여부를 결정한다. 가족계획에 관한 여성과 남성의 의견이 일치해야 출산이 이뤄질 확률이 높다. 

이때 여성이 출산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려면 남성이 육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거나, (여성에게) 외부의 보육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금전적 자원이 충분해야 한다. 그마저도 불가능하다면 정부가 공공 보육을 확대해 민간 시장의 빈틈을 메워야 한다. 이 모든 전제가 충족돼야 비로소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NBER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초저출산 국면에 접어든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떨까. 답은 예상한 대로다. 여성가족부의 ‘가족실태조사(2021)’를 살펴보자. 조사 결과에 따르면, 12세 미만 자녀의 돌봄 분담을 묻는 질문에 ‘남편이 돌봄을 주도한다’는 답변은 평균 3.9%에 불과했다. ‘남편과 아내가 똑같이 분담한다’는 경우는 22.8%에 그쳤다. 

반면 ‘아내가 돌봄을 주도한다’는 응답은 69.3%에 달했다. 아직까진 여성에게 육아 부담이 집중돼 있다는 방증이다.[※참고: 돌봄 유형엔 ▲식사ㆍ취침ㆍ외출준비ㆍ위생 관리 등 일상생활 ▲아플 때 돌봐주기ㆍ병원 데려가기 ▲숙제나 공부 봐주기 등 자녀 학습 관리 ▲함께 놀아주거나 책 읽어주기 ▲자녀 등하원ㆍ등하교 등의 5가지가 있다.]

여성의 소득 수준도 남성에 비해 낮다. 일단 총근로시간부터 성별에 따른 격차가 뚜렷하다. 우리나라 여성 근로자의 총근로시간은 155.4시간으로 남성(170.4시간)보다 15시간 적다(2021년 기준ㆍ고용노동부).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적으니 여성의 월임금총액(247만6000원)도 남성(383만3000원)보다 135만원7000원 적다. 시간당임금총액 역시 여성은 1580만2000원, 남성은 2263만2000원으로 700만원 가까이 차이가 난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더 많은 돈을 벌기 어려운 상황에선 그나마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공공 보육 서비스의 도움이 절실하다. 

하지만 정부(보건복지부)의 2023년 예산을 들여다보면 ▲영유아 보육료 지원(3조1781원억→3조251억원) ▲시간제보육 지원(208억8200만원→204억1300만원) ▲어린이집 확충 및 환경개선(647억6200만원→526억4300만원) ▲육아종합지원센터 지원(49억4200만원→10억원) 등의 항목에선 1년 전보다 예산액이 줄었다. 공공 보육 여건이 개선되기는커녕 위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출산 환경을 조성하지 않고 출산율이 높아지기를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출산 환경을 조성하지 않고 출산율이 높아지기를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자, 어떤가. 통계에서 살펴봤듯 우리나라 여성들은 국가의 도움이 부족한 환경 속에서 남성보다 낮은 수입으로 ‘독박육아(혼자서 전담하는 육아)’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NBER이 제시한 출산율 제고 방안과는 정반대의 현실이다. 

출산의 조건(▲남성의 협력 ▲노동시장에서의 지위 상승 ▲정부의 공공 보육 지원)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출산율이 높아지기를 바라는 건 모순이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는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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