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고찰: 출산 거래학➊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
인구감소세 ‘기울기’ 봐야
2006년 이후 예산만 320조원
그럼에도 아무런 성과 못 내
저출산 대책 무엇이 문제인가
아이 낳을 만한 세상 만들어야
尹 정부 출산 지향점 바꿔야

역대 정부는 수백조원을 저출산 대책에 쏟아부었지만, 아무런 성과도 거둬내지 못했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역대 정부는 수백조원을 저출산 대책에 쏟아부었지만, 아무런 성과도 거둬내지 못했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2075년 미래상 

3%를 웃돌던 세계 경제성장률이 2024~ 2029년 평균 2.8%로 꺾인다. 2050년 경제 1위 국가는 중국이다. 아시아에선 인도·인도네시아, 아프리카에선 나이지리아·이집트의 경제력이 무섭게 치고 올라온다. 

2075년 세계 5대 경제대국의 라인업은 이렇다. 중국, 인도, 미국,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그때쯤 우리는 되레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유일한 국가란 불명예를 뒤집어쓴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 ‘2075년으로 가는 길(The Path to 2075)’에서 예견한 미래다. 

# 인구란 대전제 

물론 예측은 예측일 뿐이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언제 나타날지 모를 기후 변화, 사람들의 변덕과 탐욕, 그리고 전쟁…. 실증적 경제모델이 분석한 미래를 단숨에 바꿔놓을 만한 변수는 도처에 널려 있다. 이런 맥락에서 골드만삭스의 예측이 현실화할지 아닐지는 섣불리 단정할 순 없다.

다만, 이 보고서엔 약간의 흥미를 끄는 요소가 있다. 골드만삭스가 내건 대전제, 다름 아닌 인구의 변화다. “…세계 경제성장률이 떨어진 가장 중요한 원인은 인구통계학적 요인이다. 전세계 인구 증가율은 지난 50년 동안 연간 2%에서 1% 미만으로 반토막 났다. 유엔은 이 수치가 2075년 제로에 가깝게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 애덤 스미스 vs 요시카와 히로시 

‘인구 변화’란 대전제를 파악한 뒤 보고서를 다시 살펴보면, 2075년 경제대국을 정렬한 골드만삭스의 의도가 명확하게 들어온다. 인도와 인도네시아의 합계출산율(2020년 기준)은 각각 2.1명, 2.2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6명보다 많다. 나이지리아는 무려 5.3명으로 ‘넘사벽’ 수준이다. 반면, 한국은 0.8명으로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다. 이를 단순하게 해석하면, 인구가 많은 나라가 경제도 성장할 것이란 게 골드만삭스의 결론인 셈이다. 

당연히 이 보고서는 수십년째 저출산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는 한국을 뒤흔들었다. 특히 골드만삭스가 ‘인구감소 탓에 한국은 인도, 인도네시아는 물론 파키스탄과 필리핀에도 밀릴 것’이라고 전망한 대목은 우리 사회에 충격파를 던졌다. 

그런데 이 지점에선 한가지 의문이 든다. 지금이 “나라의 번영을 보여주는 척도는 인구 증가(「국부론」·1776년)”란 애덤 스미스의 주장이 통용되던 1차산업혁명기도 아닌데, 인구감소가 뭐 그리 무서운 리스크냐는 거다.

더구나 지금은 2차도, 3차도 아닌 4차산업혁명기다. “노동자 100명이 하던 일을 로봇 1대가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차고 넘치고, “경제를 결정짓는 변수는 인구가 아니다”고 단정하는 학자도 숱하다. 

일본을 대표하는 거시경제학자 요시카와 히로시는 그중 한명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인구가 줄어들면 경제가 망할까」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인구감소는 중대한 문제지만 선진국의 경제성장을 결정짓는 건 인구가 아니라 혁신이다.” 

[자료 | 더스쿠프, 사진 | 뉴시스]
[자료 | 더스쿠프, 사진 | 뉴시스]

# 저출산과 기울기 

이처럼 인구학적 관점의 의견들이 혼재하는 상황에서 우린 ‘저출산 문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기울기(경사)’다. 인구가 완만하게 줄면 대응할 시간이 있지만, 가파르게 감소하면 골드만삭스의 예측처럼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심각한 상태다. 생산(가능)인구와 이들의 부양을 받는 종속인구(연소인구+노년인구)의 추이를 10년 단위로 살펴보자. 1971~1980년 생산인구 증가율은 31.3%였다. 1981~1990년에도 29.7%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이 증가율의 1차 둔화기는 1991~2000년에 찾아왔는데, 30% 선에서 14.9%로 반토막 났다. 2차 둔화기는 2011~2020년이다. 직전 10년(2001~2010년) 12.6%에서 6.7%로 증가율이 절반쯤 잘려나갔다. 문제는 같은 기간 연소인구 증가율이 22.5%나 추락했다는 점이다. 이는 생산인구로 유입돼야 할 계층이 ‘급속하게’ 쪼그라들었다는 뜻이다.

나라경제 측면에서든 민간경제 차원에서든 이 정도의 ‘극단적인 기울기’는 위험성을 동반한다. 생산인구가 빠르게 줄면 소비층이 급속히 얇아져 시장이 위축된다. 시장이 작아지면 제품의 공급량도 감소한다. 이런 추세가 지속하면 기업이 침체의 늪에 빠져 ‘이익 감소→기업경기 악화→일자리 감소’로 이어지는 U의 악마(Unemployment·실업)가 출몰한다. 

급격한 인구감소의 ‘연쇄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고용이 악화하면 나라의 세수稅收가 감소한다. 돈을 낼 사람은 줄고, 받을 사람은 나날이 증가하니 연금은 고갈된다. 이 위태로운 가정들은 미래 얘기가 아니다. 우리 앞에 직면한 엄연한 현실이다.

더 심각한 건 우리나라 역대 정부가 2006년 이후 320조원을 저출산 대책에 퍼부었는데도 이 모양 이 꼴이란 점이다. 이는 바로 지금이 천편일률적인 저출산 대책을 ‘피벗(Pivot·전략 변경)’해야 할 골든타임이란 걸 시사한다. 우린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여기 주목할 만한 솔루션이 있다. 

# 320조원과 구멍 

지난해 4월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출산율의 경제학:새로운 시대’란 보고서에서 출산의 거래화와 보육의 시장화라는 흥미로운 해법을 내놨다. 골자는 이렇다. “…현대사회 부부는 각자가 누릴 수 있는 출산의 편익을 계산한다. 이때 여성이 출산을 거부하지 않으려면 보육 서비스와 이를 이용할 수 있는 금전적 자원이 충분해야 한다.” 언뜻 보육을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여기엔 국가가 지금껏 견지해온 ‘출산의 지향점’을 바꿔야 한다는 함의가 담겨있다.  

NBER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선 남성이 육아에 더 많이 기여하고(greater contributions from fathers in providing child care), 일하는 엄마들에게 유리한 사회적 규범(social norms in favor of working mothers)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간 서비스의 한계를 공공 보육 정책으로 보완하는 작업도 출산율 제고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 

지난해 10월 윤석열 대통령이 나경원 전 의원에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임명장을 수여하는 모습. 이후 나 전 의원뿐만 아니라 집권여당은 내부 정쟁에 휘말렸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10월 윤석열 대통령이 나경원 전 의원에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임명장을 수여하는 모습. 이후 나 전 의원뿐만 아니라 집권여당은 내부 정쟁에 휘말렸다. [사진=뉴시스] 

이런 면에서 윤석열 정부의 ‘저출산 대책’은 우려스럽다. 포퓰리즘이 아닌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책을 만들겠다고 선언했지만, 윤 정부의 출산 지원책은 여전히 ‘금전적 지원’에 맞춰져 있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가 남성의 역할론을 육아 중심으로 재설정하거나, 워킹맘을 위한 합리적 규범을 서둘러 만들 것 같지도 않다. 정부든 사회든 출산을 둘러싼 고정관념을 바꾸는 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서다. 그러니 300조원이 넘는 돈이 엉뚱한 구멍으로 새어나갈 수밖에 없었던 거다. 

# 맬서스의 통찰 

경제를 움직이는 건 심리다. ‘아이를 낳아도 살 만한 세상’이라는 기대심리가 쌓이면 인구감소세의 매서운 기세는 한풀 꺾일 거다. 하지만 지금의 출산·보육정책으론 아이 갖기를 주저하는 이들을 설득할 수 없다. 

18세기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는 자신의 저서 「인구론」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아이를 낳아도 키울 수 없다는 공포심, 그로 인한 만혼화·비혼화는 인구 증가를 억제할 것이다.” 우린 언제쯤 ‘아이와 함께할 수 없다’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윤찬 더스쿠프 편집장 
chan4877@thescoop.co.kr
  
윤정희·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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