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고찰: 출산의 거래학➎
덧대기 저출산 정책의 폐해
17년간 320조원 쏟아부어
그럼에도 출생아 절반으로 감소
비슷비슷한 저출산 정책의 한계

271조원. 2006년부터 2021년까지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입한 자금이다. 지난해 50조원가량을 썼다는 걸 감안하면 17년간 320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돈을 쓰고도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3분기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경기침체·고용불안·내집 마련 등 결혼과 출산을 막는 요인은 뒤로한 채 비슷비슷한 지원책만 덧붙였기 때문이다. 더스쿠프가 역대의 저출산 정책을 살펴봤다. 

정부가 2006년부터 320조원의 예산을 저출산 정책에 사용했지만,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치인 0.79명으로 떨어졌다.[사진=뉴시스] 
정부가 2006년부터 320조원의 예산을 저출산 정책에 사용했지만,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치인 0.79명으로 떨어졌다.[사진=뉴시스] 

“포퓰리즘이 아닌 과학과 데이터에 기반한 실효성 있는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지난해 9월 27일 윤석열 대통령이 이전 정부의 저출산 정책을 꼬집으면서 한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저출산 정책이 본격화한 2006년 이후 16년간 정부가 쏟아부은 저출산 정책 관련 예산은 271조90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저출산 예산의 규모가 50조원가량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17년간 320조원의 재원을 투입한 셈이다.

[※참고: 문재인 정부는 국제표준을 활용한 새로운 예산분류체계인 사회복지지출통계(Social Expen diture Database·SOCX)를 도입하면서 저출산 관련 예산을 가족·노인·주거·고용·교육·보건·기타 등 7개 분야에 포함했다. 지난해 SOCX 관련 예산은 총 78조9348억원이다. 이중 노인 관련 예산(20조392억원)을 제외한 50조원가량을 저출산 관련 예산으로 계산했다.]

2006년 이후 300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는데도 출산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기준 출생아 수는 23만1863명이었다. 2006년 출생아 수가 45만1759명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16년 만에 출생아 수가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지만 출산율을 높이는 데는 실패한 셈이다.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3분기 0.79명으로 감소했다. 2009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저치다.

총 인구도 감소세로 돌아섰다. 2020년 51 83만6239명으로 정점을 찍었던 우리나라 인구는 2021년 5174만4876명으로 줄었고, 지난해(11월 기준)엔 5162만8177명으로 감소했다. 이 속도로 가다간 2017년 우리나라 인구는 3766만명으로 쪼그라들 전망이다(통계청 장래인구추계 기준). 

좀 더 직관적으로 통계를 살펴보자. 언급했듯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2006년부터 쓴 예산은 320조원이 넘는다. 2006년부터 2022년(11월 기준)까지 결혼한 484만5767쌍의 부부에게 지급했다면, 6600만원이 넘는 돈을 지원할 수 있는 규모다. 태어난 아이에게 직접 지원을 했으면 어땠을까. 

같은 기간 태어난 신생아 수는 675만3892명이다. 아이 한명당 4738만원의 예산을 집행한 셈이다. 차라리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4000만원씩 지원하는 게 훨씬 효과가 좋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 답은 간단하다. 정부의 저출산 정책이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2017년과 2020년의 통계를 비교해보자. 2017년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들은 저출산 해소를 위해 시행해야 할 정책으로 출산과 육아지원 확대(26.1%)를 가장 많이 뽑았다. 다음으로 일·가정 양립(19.5%), 결혼·가족 가치관 인식 개선(15.3%), 일자리 확충(12.8%) 등이 있었다. 

최근 인식은 완전히 다르다. 202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성인 남녀 8000명에게 ‘가장 필요한 저출산 정책은 무엇인가’라고 물어본 결과, 37.1%가 청년들의 결혼 기피와 지연 원인 해소를 꼽았다. 2위는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근로환경과 문화 조성(25.6%)이 차지했다. 

기존에 높은 순위에 있었던 출산·양육 비용 절감과 육아시설 확충 등은 각각 17.7%, 14.3%로 3위와 4위에 머물렀다. 출산과 양육비 지원이란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청년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정부의 저출산 정책은 여전히 출산과 양육비용 지원 정책에 초점을 맞추고있다. 이는 과학과 데이터에 기반을 둔 실효성 있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윤 정부도 다르지 않다. 부모급여 신설, 보육서비스 질 제고, 촘촘한 아동돌봄체계 마련 등 기존 정부가 답습했던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관점을 전환하지 않는 덧대기식 정책으로는 출산율을 높이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윤경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고령화정책기획센터장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청년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며 말을 이었다. “저출산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경기침체 장기화, 청년의 고용불안, 내집 마련 문제 등 복합적인 요인이 영향을 미쳐서다. 이젠 아이를 낳으면 무엇을 해주겠다는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이는 사회가 함께 키운다는 관점으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더불어 청년 세대의 어려움을 없앨 수 있는 정책도 마련해야 한다. 청년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불안이 만혼과 출산율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저출산 정책을 ‘피벗(Pivot)’하라는 일침이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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