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의 최대 미분양 발생
부도 우려에 정부 자금 투입
정부 자금은 곧 국민 세금
미분양 해소책 제기됐지만
논의 않은 채 미봉책만 남발

급등했던 부동산 가격은 1년 만에 완전히 정반대로 움직였다. 가격이 내려가자 시장에서 돈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당장 부메랑이 날아왔는데, ‘미분양’이었다. 정부는 건설업계가 붕괴하는 걸 막기 위해 5조원의 혈세를 ‘대출 보증’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런 미봉책으로 미분양 사태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을진 의문이다.

미분양 위험이 커지자 정부는 5조원 규모의 대출 보증을 하겠다고 발표했다.[사진=연합뉴스]
미분양 위험이 커지자 정부는 5조원 규모의 대출 보증을 하겠다고 발표했다.[사진=연합뉴스]

6만8107호. 2022년 12월 기준 우리나라 미분양 주택 수다. 11월 미분양 주택 5만8027호보다 17.4% 늘었다. 2021년 12월과 비교하면 더 심각하다. 1만7710호였던 미분양 물량은 1년 만에 3.8배가 됐다. 2001년 미분양 물량 집계 시작 후 10년 만의 최대치다.

미분양이 늘어난다는 건 부동산 시장이 불황의 늪에 빠지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주택 시장의 대부분이 ‘선先분양’으로 이뤄져서다. 건설업자들은 사업 성공 가능성을 담보로 돈을 빌리고(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ㆍPF), 이 돈을 상환하기 위해 계약금, 중도금, 잔금을 받는다.

쉽게 말해, 미분양이 발생했다는 건 이같은 자금 상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는 뜻이다. PF 대출 상환에 문제가 발생하면 도미노처럼 사업 관계자들이 쓰러지기 시작한다. 여기엔 사업을 시작한 시행사와 돈을 빌려준 투자자가 모두 포함된다. 부동산 시장의 위험이 금융을 넘어 실물경제에도 번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인지 정부도 정책의 초점을 ‘미분양이 부도로 이어지는 걸’ 차단하는 데 맞췄다. 1월 2일 정부는 준공 전 미분양이 발생한 현장의 PF 대출 위험을 해소하기 위해 대출 보증을 확대했다.

정부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해 보증하겠다고 밝힌 대출 규모는 5조원이다. 미분양 위험으로 대출받지 못해 부도나는 사업자가 발생하는 걸 일단 막겠다는 의도다. 정부가 선심을 쓰긴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돈은 국민돈이다. 추가예산을 HUG에 투입하거나 청약저축, 국민주택채권 등으로 이뤄진 주택도시기금을 재원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 허술한 미분양 관리체계 = 그런데 이 지점에선 의문이 생긴다. 미분양이 발생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고, 부동산 시장의 속성상 미분양은 필연적 부산물인데, 국민 혈세를 부랴부랴 투입할 정도로 ‘방어 시스템’이 허술한 걸까. 쉽게 말해, 미분양에 먼저 대비할 수 있는 조치는 전혀 만들진 않은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진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직후인 2008년 12월(16만5599호) 최대 규모의 미분양이 발생하자 정부는 미분양을 관리할 제도를 만들었다. 2008년 운영을 시작한 국토부 ‘부동산시장 조기경보시스템(EWS)’과 2016년 시행된 HUG의 ‘미분양관리지역제도’ 등이 대표적이다. 

부동산시장 조기경보시스템의 목적은 주택ㆍ토지 등 부동산 가격의 급격한 변동이나 수급 장애로 경제에 위기가 생기는 걸 사전에 감지하고 대응하는 거였다. HUG의 미분양관리지역 선정은 미분양이 늘어나고 있는 지역을 구분하고 그 지역에서만은 분양 보증을 더 까다롭게 하겠다는 게 취지다. 

문제는 미분양에 대비한 두 시스템의 한계가 뚜렷하다는 점이다. 부동산 조기경보시스템은 지자체가 주택 사업 인허가를 내줄 때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강제력이 없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이나 민간 사업자에게 공개도 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깜깜이 정보다. 

HUG의 미분양관리지역제도 역시 미분양 사태를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대구다. 대구의 주택보급률은 2020년 102.0%를 기록했다.

이미 수요를 훌쩍 넘은 상태였지만, HUG는 이곳을 2022년 7월에야 미분양 관리지역으로 선정했다. 그렇다고 달라진 건 없었다. 2022년 대구의 인허가 실적은 2만8135호로 2021년 2만4678호보다 14.0%나 더 많았다. 미분양관리지역제도가 공급을 통제하진 못했다는 방증이다.

■ 개선 요구도 있었지만 = 그렇다면 두 미분양 관리책의 부실함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없었을까. 당연히 있었다. 지역별로 주택 수요와 공급을 살피고 관리해야 한다는 요구는 2018년부터 제기됐다.

국무총리실 산하 국토연구원은 그해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및 재고주택 관리방안 연구Ⅰ: 지역별 수요 대응 주택공급 방안’이란 보고서를 내놨는데, 다음과 같은 점을 꼬집었다. “주택 인허가권을 가진 지자체가 인허가 과정에서 지역 내 주택 공급량을 고려할 의무가 없다는 점은 개선해야 할 점이다.”
 
보고서의 주장을 좀 더 쉽게 설명해보자. 지자체는 건설 인허가권을 갖고 있다. 그 과정에서 지자체 내 도시계획위원회 등은 건축법 위반 여부, 교통영향을 주로 파악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지자체는 인허가 과정을 빠르게 진행한다. 문제는 인허가 과정에서 해당 지역에 얼마나 많은 수요자가 있고 어떤 주택을 필요로 하는지까진 세부적으로 분석하지 않는다는 거다.

정부의 미분양 대책은 '사후 대처'에만 집중됐다.[사진=연합뉴스]
정부의 미분양 대책은 '사후 대처'에만 집중됐다.[사진=연합뉴스]

이 보고서를 작성한 변세일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다음과 같은 제언을 남겼다. “해외에서는 민간과 공공이 사용할 수 있는 지역별 주택 수급 지표가 존재한다. 국내에서도 지역별 주택 수급 지표를 만들고 인허가권자인 지자체가 이를 바탕으로 인허가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분양은 결국 공급을 줄인다. 그렇게 줄어든 공급은 또다시 시장에 부메랑처럼 날아올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지금 정부가 집중하고 있는 건 당장 부도를 막기 위한 ‘자금 투입’이다. 미분양을 효율적으로 막을 대책은 그 어디에서도 논의하지 않는다. 전문가와 학자들만 ‘종이’ 속에서 숙고할 뿐이다. ‘외양간 고치기’는 성공할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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