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천태만상 [세태+]
고물가 속 명품의 경제학
해마다 몇차례씩 가격 인상
그럼에도 줄지 않는 오픈런
불황이 부른 달라진 심리
MZ세대 과시욕 때문인가

‘그림의 떡’이던 명품이 5초마다 눈에 띈다. SNS엔 명품 구매 인증 사진이 홍수처럼 쏟아져서다. 난방비 폭탄, 고물가 행진이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상황과 대비되는 풍경이다. 불황에도 두둑한 배를 두드리는 명품 브랜드 업체, 그리고 그들의 배를 살찌우는 명품 소비자들. 이런 기묘한 현상은 왜 나타나고 있는 걸까.

경기침체 속에서도 명품 소비가 줄지 않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경기침체 속에서도 명품 소비가 줄지 않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168억 달러(약 21조8000억원). 지난해 한국인이 명품에 쓴 돈이다. 인구 1인당 308달러(약 40만원)를 지출한 셈이다. 중국인(55달러), 미국인(280달러)과 비교하면 얼마나 많은 돈을 명품을 사는 데 썼는지 알 수 있다. 이 통계를 발표한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세계에서 1인당 명품 지출이 가장 높은 나라는 한국”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1년 글로벌 명품 시장은 2942억 달러(약 381조원)를 기록했다. 2025년엔 3947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명품 시장도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스태티스타는 2021년 58억 달러 규모였던 한국의 명품 시장이 2025년까지 연평균 6.7 %씩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국내 명품 시장은 활력이 넘친다. 명품 소비가 주로 이뤄지는 백화점 매출을 보자. 2020년에는 명품 매출이 전년 대비 15.1% 늘었지만 2021년엔 37.9%나 뛰었다(산업통상자원부). 지난해에도 백화점 업체별로 20%대 성장률을 기록했다. 

명품 브랜드 업체들의 배도 갈수록 두둑해진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명품 3대장인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에·루·샤)이 한국시장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명품 위의 명품이라 불리는 에르메스는 2020년 4181억원이던 국내 매출이 2021년 5275억원으로 늘었고(25.9%), 루이비통 매출은 1조468억원에서 1조4681억원으로 40.2% 증가했다.

샤넬도 9296억원이던 매출이 1조2238억원으로 늘어났다(31.6 %). 영업이익은 더 크게 늘었는데, 이 기간 에·루·샤의 영업이익 신장률은 각각 27.8 %, 98.7%, 66.9%에 이른다.

■ 왜 자꾸 오르나 = 명품 브랜드 업체들이 이처럼 폭발적으로 몸집을 키울 수 있었던 건 1년에도 몇차례씩 가격 인상을 단행하며 배를 불려온 덕이다. 매년 1월 가격을 올리는 에르메스는 지난해 가격을 4% 올린 데 이어 올해는 인상폭을 5∼10%로 확대했다.

샤넬은 지난해에만 총 4차례(1·3·8·11월) 가격을 끌어올렸다. 그 결과, 2021년 11월 1124만원이던 클래식 플랩백 미디엄은 1316만원이 됐다. 1년 만에 192만원이 오른 셈이다. 루이비통도 조만간 큰 폭으로 가격을 올릴 거란 소문이 돌고 있다.

어디 에·루·샤뿐일까. 2021년과 2022년에 각각 4차례, 2차례 가격을 올렸던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불가리는 지난 1일에도 주요 제품의 가격을 4~7%가량 끌어올리며 올해 가격 인상의 포문을 열었다. 펜디 역시 지난해 10월 가격을 6% 올린 데 이어 또 한차례 가격 인상을 예고했다. 

 

[사진|뉴시스, 자료|스태티스타, 참고|2025년은 전망치]
[사진|뉴시스, 자료|스태티스타, 참고|2025년은 전망치]

그렇다면 명품 브랜드 업체는 왜 자꾸 가격을 올리는 걸까. 그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늘 거기서 거기다. ‘원부자재 가격 상승’ ‘인건비 상승’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가격을 아무리 올려도 그걸 사려는 사람들이 언제나 줄을 서기 때문이라는 거다. 

고물가 기조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올해는 명품 소비가 다소 주춤할 거란 분석이 나오긴 하지만, 신상품만 론칭하면 오픈런 행렬이 줄지 않는다. 계속 가격을 올려도 살 사람은 사기 때문에 명품 브랜드 업체들이 배짱 장사를 이어간다는 얘기다.

그래도 고물가로 서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업계 관계자는 “불로소득이 많아진 MZ세대가 명품 시장에 진입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과거의 명품은 중장년 여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으나 최근 2~3년 사이 코인 등으로 MZ세대의 불로소득도 많아졌다. 그들에게 명품소비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으며 지금의 시장이 형성됐다.”

■ 왜 계속 사나 = 하지만 그것만으론 이런 현상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영애 인천대(소비자학) 교수는 ‘경기 침체’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무슨 말일까. “경제가 어려우면 중저가 상품이 팔리지 않고, 소비가 양극화한다. 기능이 중요한 상품들은 초저가, 초초저가 가격대 소비가 늘어나지만 그와 동시에 스스로에게 보상한다는 심리로 명품을 구매하려는 과시형 소비도 나타난다.”

이영애 교수가 말을 이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사람들은 다른 소비를 참으면서 억제한다. 그렇다고 계속 쥐어짤 수만은 없으니 본인에게 보상을 주기도 한다. 점심값을 아끼면서 분위기 좋은 카페엔 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데다 최근 몇 년 사이 SNS가 일상화하며 그걸 매개로 명품을 과시하는 방법이 더 용이해졌다. 이영애 교수는 “가처분소득이 줄면서 소비가 전반적으로 위축되긴 했지만 그것을 개의치 않는 세대도 많다”면서 “그들의 소비 행태가 SNS를 타고 확산하고, 또 그걸 보고 모방하려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MZ세대는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그들에게 명품은 ‘이미지’ ‘브랜드 파워’다. 소비재로서의 기능이나 구성은 중요하지 않다. SNS에 명품 소비를 과시하고, 그걸 통해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싶어 한다.”

그런 그들에게 명품 브랜드의 신상품은 또 새롭게 소비할 수 있는 가치다. 가격이 오를수록 희소의 가치는 높아진다. 명품 브랜드가 가격을 올리면 ‘희소성’이란 가치를 소비하고, 그것으로 존재 가치를 과시하며, 거기서 자극받아 모방 소비하는 쳇바퀴가 무한 반복되는 거다. 기존 경제원리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기묘한 현상이 불황의 시대에 나타나고 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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