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이상한 택시 셈법❹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 팩트파인딩
10월 택시공급책 혼선 빚어
시장참여자 각각의 니즈 충돌
택시요금 인상 또다른 부담
‘부제’ 풀린 개인택시 날개
인력 못 구하는 법인택시
택시업계 눈물의 출혈경쟁
공론의 장서 니즈 조율해야

# 2021년 겨울, 밤거리에서 택시가 사라졌다. 시민 사이에선 ‘택시가 없어서 못 탄다’는 불만이 나돌았다. 이른바 ‘택시 대란’의 시작이었다. 시민의 불만이 갈수록 커지자 정부는 2022년 10월 택시 공급 확대책을 내놨다. 골자는 다음과 같았다. ▲택시요금 인상 ▲개인택시 부제 해제 ▲심야할증 시간·요율 조정 등이다.

# 하지만 이 정책은 시민·법인택시·개인택시 등 시장참여자의 서로 다른 욕구를 충돌하게 만드는 ‘태생적 맹점’을 안고 있었다. 이 때문인지 택시 정책은 고작 5개월 만에 삐걱거리고 있다. 시민의 택시 수요는 되레 줄어들고, 택시업계 내부에선 때아닌 공방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정부 대책은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 정부의 이상한 셈법 마지막 편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에선 논의의 폭을 넓혀서 택시정책의 오류와 개선 방향을 짚어봤다. 

지난해 10월 정부가 내놓은 택시 정책은 이해관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10월 정부가 내놓은 택시 정책은 이해관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단순과반 금지 원칙 

단순과반. 100을 기준으로 절반을 겨우 넘은 51, 52 등 아슬아슬한 수치를 의미하는 조어助語다. 우리에게 다소 낯선 이 단어는 미 상원에선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곳의 의결 정족수는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 상원의 의원 수가 100명이니, 법안이 통과하려면 통상 ‘60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달리 해석하면, 51명이나 52명과 같은 단순과반으론 법안이 상원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는 뜻이다. 언뜻 다수결이란 민주주의 대전제를 흔드는 듯한 ‘단순과반 금지’의 취지는 무엇일까. 

# +1과 승자의 자리

사실 다수결은 간단한 의사결정 시스템이다. 50대 50 상황에서 경쟁자보다 ‘+1’만 더 얻어도 승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정치 권력이든 경제 권력이든 예외란 없다. 하지만 단순과반을 인정하지 않는 순간, ‘+1’의 위력은 곧바로 사라진다.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고 싶다면 그게 누구든 설득과 공론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이는 생각보다 녹록지 않은 길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추앙하는 미국 상원에서도 단순과반을 인정하느냐 그러지 않느냐를 두고 끊임없이 논쟁한다. 그럼에도 21세기 정부는 단순과반을 지향하기보단 ‘설득과 공론의 장’을 펼쳐놔야 한다.

그래야만 미래에 발생할지 모를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예방하고, 좀 더 효율적인 정책을 국민 앞에 내놓을 수 있다. 다만, 이 순간에도 정부가 수행해야 할 선결과제가 있다. 다름 아닌 ‘잠재적 편견’을 지우는 일이다.

# 잠재적 세가지 편견

갈등관리전문가 장 푸아트라스(Jean Poitras)와 피에르 르노(Pierre Renaud)는 공저 「갈등조정의 ABC」에서 정부·지자체·공공기관 등 갈등의 조정자가 가져선 안 될 ‘잠재적 편견’을 세가지로 분류했다. 첫째는 조정자의 주관과 성향을 투영해 의사 결정을 내리는 ‘절차적 편견’이다. 

둘째는 조정자 스스로 최상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담론을 끌고 가는 ‘해결책의 편견’이다. 마지막은 조정자가 특정한 관계자에게 호의나 적대감이 있는 상태로 의견을 조율하는 ‘당파적 편견’이다. 

조정자가 이런 편견을 없애지 않으면, 공론의 장은 ‘갈등과 분열의 도가니’로 변질할 게 분명하다. 그 속에선 조정자가 ‘호의적’으로 여기는 집단만 이득을 누릴 공산도 크다. 그럼 조정자는 이해관계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어떻게 취합하고 선별해야 할까. 조정자의 ‘잠재적 편견’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있을까. 

# 팩트 파인딩의 함의  

답은 간단하다. ‘팩트 파인딩(Fact Finding)’이다. 그 방법을 단계별로 살펴보자. 조정자는 우선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성과 이해관계자의 욕구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주관이 들어가면 편견이란 씨앗이 움틀 수밖에 없어서다.

그다음 과학적 모델에 입각해 다양한 욕구를 분석하고, 일련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한다. 사실적 기반 위에 세워진 가이드라인은 ‘신뢰의 장’을 제공한다. 그 안에서 이해관계자는 충동적 욕구를 조절하고, 이를 통해 조정자는 ‘합의된 정책’을 도출해낸다. 

장 푸아트라스는 캐나다 퀘벡주의 ‘캔디악(Candiac) 변전소 설립 사업’을 통해 팩트 파인딩의 효율성을 설파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시 변전소를 세우는 과정에서 시민과 사업자는 극단적으로 대립했다. 시민들은 ‘전자파의 영향을 받는 게 싫다’는 이유로 변전소 건설을 반대했다. ‘전자파의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란 사업자의 항변은 좀처럼 통하지 않았다.

팽팽하게 대립하던 상황에서 양측의 갈등을 풀어준 단초는 ‘팩트 파인딩’이었다. 시민과 사업자는 변전소 전기선과 전자파가 얼마나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지 함께 조사했다. 각종 통계는 누구에게든 오픈했고, 자료는 공유했다. 이를 통해 도출한 정확한 수치를 바탕으로 양측은 원점에서 재논의를 시작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객관적 근거를 확인한 시민 중 누구도 ‘변전소 건설’을 반대하지 않았다.  자! 그럼 관점을 돌려 우리나라의 상황을 살펴보자. 퀘벡주처럼 우리 정부는 팩트 파인딩에 기초해 정책의 장을 펼쳐놓고 있을까. 아니면 누군가에게만 호의적인 정책의 틀을 만들고 있을까. 국내 택시 시장의 사례를 들춰보자.

# 충돌과 맹점  

2021년 겨울밤, 택시가 사라졌다. 시민들 사이에선 ‘택시가 없어서 못 탄다’는 말이 나돌았다. 개인택시는 이틀 운행 후 하루 휴식이란 ‘부제’에 묶여 있었고, 인력난에 시달리던 법인택시는 차고지에 빈 차를 쌓아두고 있었다. 

‘택시 대란’이란 말이 여론의 심기를 건드리자,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등 소문이 꼬리를 물던 2022년 10월, 마침내 정부는 ▲택시요금 인상 ▲개인택시 부제 해제 ▲심야할증 시간·요율 조정을 골자로 내건 택시 공급 확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정책은 시장참여자들의 욕구(니즈)를 이리저리 충돌시키는 맹점을 안고 있었다. 지긋지긋한 고물가 국면에서 택시요금 인상을 태연하게 받아들일 시민은 많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난방비 폭탄까지 터지면서 ‘비싸진’ 택시를 탈 만한 이유마저 사라졌다. 

택시업계의 희비도 엇갈렸다. 3일에 한번씩 의무적으로 쉬어야 했던 개인택시는 ‘부제’가 풀린 덕을 톡톡히 누렸다. 반면 법인택시는 딜레마에 빠졌다. 개인택시와 경쟁하기 위해선 운행 대수를 늘려야 하는데, 인력난으로 택시기사를 수급하는 데 애를 먹었다. 설사 기사 수급이 이뤄진다고 해도 고수익을 확보하리란 보장이 없었다. ‘부제’가 풀린 개인택시와 출혈경쟁을 각오해야 했기 때문이다. 

# 혼란 속 택시 정책 

시장참여자의 분노를 자극한 택시 정책은 고작 5개월 만에 삐걱거리고 있다. 거리에 택시는 늘었지만 정작 차를 타는 승객은 줄었다. 시민들이 “택시요금이 너무나 가파르게 올랐다”며 신음한 결과다.

택시업계는 완전히 다른 ‘입장’ 앞에서 충돌하고 있다. 벼랑에 몰린 법인택시는 ‘부제 재도입’을 요구하고 나섰다. 개인택시는 시민의 편익을 위해서라도 ‘부제 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택시요금 인상책은 고물가 국면과 겹치면서 부작용을 빚고 있다. [사진=뉴시스]
택시요금 인상책은 고물가 국면과 겹치면서 부작용을 빚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만하면 심각한 혼선이다. 공감대를 얻지 못한 ‘졸속대책’이 이해당사자 간의 갈등을 부추긴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택시 사태는 예견된 결과일지 모른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여전히 “수차례 회의를 거쳐 대책을 발표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객관적 틀’ 위에서 얼마나 많은 대안을 숙의했는지는 알 수 없다. 

# 또다른 택시대란  

1999년 캐나다 퀘벡주는 브롬프턴빌(Bromptonville)에서 강으로 향하는 55번 도로를 두배로 확장할 방침을 세웠다. 이를 위해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요구하는 소음 기준(55㏈·대화소리)을 충족해야 했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혔고, 갈등과 분열이 일어났다. 

고심 끝에 퀘벡주 환경공청회 사무국은 시뮬레이션 모델을 만들어 다양한 환경에서 소음을 측정했다. 과학적 모델을 통해 취합한 통계와 자료는 빠짐없이 주민들과 공유했다. 이런 절차를 거쳐 얻은 결론은 다소 극단적이었다. “…소음 기준을 맞추려면 거주자가 도로에서 먼 쪽으로 이주하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주정부·사업자·주민들은 ‘객관적 틀’에서 나온 해법을 군말 없이 받아들였고, 주민 대부분은 여지없이 이주를 선택했다. 팩트 파인딩이 명료한 해결책을 제시한 셈이었다. 

택시 시장이 또 어지러워졌다. 승차난은 끝난 듯 보이지만, 또다른 택시난이 시작됐다. 그때는 공급난이더니, 이번엔 공급과잉이다. 이해당사자들은 ‘정책을 바꾸라’고 아우성인데, 정부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정부로선 정책 시행 후 5개월 만에 오답만 내놓은 꼴이 됐다. 자! 이제 어찌할 텐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 텐가. 지금이라도 객관적 틀을 세워 ‘공론의 장’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떤가. 수수방관하는 사이 빈 차는 오늘도 거리를 메우고 있다.  

이윤찬 더스쿠프 편집장 
chan4877@thescoop.co.kr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 참고: 이 기사는 2월 27일 발간된 더스쿠프 535호 커버스토리 ‘이상한 택시 셈법’의 총론입니다. 일반 승객과 택시업계의 반응, 지금 고민해야 할 대안 등은 파트 기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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