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이상한 택시 셈법➌ 
정부 심야 승차난 완화 대책 후폭풍
공급 과잉 현상으로 업계는 갈등 중
법인택시 “개인택시 부제 다시 해야”
개인택시 “부제 해제로 편의성 증대”
정부, 부작용 대비한 조치 마련 미흡

정부가 정책을 시행한 이후 택시 업계는 또다른 혼란에 빠졌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심야 승차난 대책을 발표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사진=뉴시스] 
정부가 정책을 시행한 이후 택시 업계는 또다른 혼란에 빠졌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심야 승차난 대책을 발표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사진=뉴시스] 

대책을 시행했는데, 후폭풍이 일고 있다. 아픈 곳을 치료했다는데, 진통이 사라지지 않는다. 국내 택시 시장의 얘기다. 여기엔 정부의 잘못된 문제풀이 방식이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의 이상한 택시 셈법, 마지막 편이다. 

국내 택시 시장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파트2에서 살펴봤듯, 정부는 심야 승차난을 해결하기 위해 택시요금을 인상하고 개인택시 부제를 해제했다. 그 결과, 승차난은 해소됐지만 공급 과잉으로 인한 택시 업계의 갈등이 촉발됐다. 정부가 ‘심야 택시난 완화 대책’을 시행한 지 5개월 만이다. 

갈등부터 살펴보자. 법인택시 업계는 시장의 공급 과잉이 법인택시 기사들의 영업 건수 감소→소득 불안정→신규 종사자 유입 정체→법인택시 가동률 하락이란 악순환을 초래할 것이라고 본다. 이들은 개인택시 부제를 다시 도입해 공급량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개인택시 업계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서울개인택시운송조합 관계자는 “소비자 관점에서 봤을 때 부제 해제로 이동 편의성이 증대한 건 사실”이라면서 “법인택시 업계의 경영난은 부제 해제 이전부터 지속했던 일인데, 단순히 부제를 재도입한다고 해서 경영 상태가 나아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민들의 편익을 위해 공급을 최대한 확보하는 측면에서 부제를 계속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살펴봤듯 택시 업계는 정부 정책이 수반한 또다른 혼란 속에 놓여 있다. 심야 승차난이란 당면과제는 해결됐지만, 택시 공급난 해소책의 여진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 후속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원인은 정부가 문제를 푸는 방식에 있다. 김현명 명지대(교통공학) 교수는 “우리 정부는 한마디로 ‘중재형’ 관리자”라면서 말문을 열었다. 김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우리나라 정부는 시장의 이해당사자들이 충돌하면 일단 각각이 주장하는 사안을 모두 한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그리곤 원하는 걸 하나씩 가져가게 하고, 다른 하나는 양보하게 한 뒤 적당한 수준에서 협의를 끝낸다. 마치 부모가 ‘너 하나 갖고 얘도 하나 가졌으니까 됐지’라며 적정선에서 자녀의 싸움을 중재하듯 갈등을 조정하는 거다.”


혹자는 ‘정부 중재로 문제를 해결하면 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택시 업계에선 정부의 조치가 애당초 ‘미완성’이었다고 보고 있다. 이현로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정책부장은 “이번 정부 조치는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땜질식 처방에 가깝다”면서 이렇게 분석했다. 

“개인택시 기사들은 부제가 있던 시절에 익숙하기 때문에 ‘한달 동안 이 정도 운행, 이 정도 수입이면 생활이 유지된다’는 일종의 패턴이 정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택시 기사들이 지금 만큼 운행을 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그러면 또다시 승차난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법인택시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도 아니니, 종국에는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 택시가 공급난 해소를 위한 대안으로 거론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지금은 분열돼 있는 개인택시와 법인택시가 나중엔 공통적 위협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택시 업계를 쇄신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바라보는 정부의 관점부터 달라져야 한다.[사진=뉴시스]
택시 업계를 쇄신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바라보는 정부의 관점부터 달라져야 한다.[사진=뉴시스]

당장 눈앞의 문제를 없애는 데만 급급하면 더 큰 위험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얘기다. 관건은 정부가 어떤 태도를 갖고, 어떤 관점에서 정책을 세워 시장의 혼란을 잠재우느냐다.

김현명 교수는 “정부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고 거시적 관점의 청사진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면서 “시장에서 가능하거나 불가능한 것들의 경계선을 명확히 그어준다면, 이해당사자들도 논쟁이 생겼을 때 정부만 쳐다보지 않고 상호 협의와 조율을 해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말을 달리 해석하면, 정부가 이해당사자들이 가져온 안건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더라도 확실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는 객관적 데이터에 근거한 정확한 판단을 통해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갈등관리전문가 장 푸아트라스와 피에르 르노의 공저 「갈등조정의 ABC」에 따르면, 이상적인 중재자는 어느 한쪽에 호의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일종의 진단 모델을 만들어 여러 가지 대안의 효과를 정교하게 측정하고, 가장 효율적인 단 한가지 방책을 도출한다.

정부 정책이 불러온 혼란  

자, 그럼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져보자. 과연 우리 정부는 정밀한 데이터와 객관적 판단 아래 심야 택시난 완화 대책을 내놓은 걸까. 만약 그렇다면, 승객 수요 감소와 택시 공급 과잉이란 후유증까지 예측해 후속 조치를 만들어 뒀을까. 

우선 정부는 나름의 데이터를 참고해 택시 시장의 실태를 조사 ㆍ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가 발표한 심화 택시난 완화 대책에는 ▲시간별 택시 수급 동향 ▲법인택시 기사 수 변화 ▲OECD 기준 국내 택시요금 현황 ▲연료비 변동 추이 등의 자료가 담겨 있다.

아울러 국토부 관계자는 “(이해당사자들과도) 수십 차례 회의를 통해 승차난 대책을 발표한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까지 보면 정부가 일련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적절한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정책을 입안한 듯 보인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의 후속 조치 마련은 미비하다. 심야 택시난 완화 대책을 설계하는 데 참여했던 국토부 관계자는 “매일매일 수급 상황에 100% 맞춰 운송수단을 공급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면서 “업계에선 통상 요금 인상 후 2~3개월은 수요가 감소했다가 그 이후 다시 정상화한다고 보고 있고, 국토부에서도 수급 현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국토부에선 일반 국민들이 얼마나 편리하게 택시를 이용할 수 있느냐에 방점을 찍고 기본 원칙을 수립했다”면서, 공급 측면의 대책에 관해서는 “법인택시 업계의 어려움은 알고 있고 거기에 맞춘 다양한 방안을 준비 중이지만 아직 공개하기에는 이른 단계”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중재에도 택시 업계의 혼란이 반복되는 이유로 “택시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이용자들의 편익을 위해선 무엇이 중요한지에 관한 큰 틀에서의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택시 승차난 대책에서도 마찬가지다. 김현명 교수는 “정부는 장기적 안목으로 시장의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규칙 혹은 정확한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국내 택시 시장은 매번 갈등의 도돌이표를 찍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택시 시장의 소모적 논쟁을 줄이기 위해서는 결국 정부가 변해야 한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과 해결책을 수립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 그것이 지금 정부가 가야 할 길이다.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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