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자체 집중호우 대비책 점검
반지하 제로 선언한 서울시
대비 가능한 기간은 5개월
재난관리기금 어떻게 쓰였나

2022년 8월 서울시는 모든 반지하 주택을 없애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하지만 선언한다고 현실이 되는 건 아니다. 서울시가 제시한 ‘반지하 주택 제로’란 슬로건은 올해 다시 돌아오는 여름까지 이룰 수 없는 꿈에 불과하다. 그럼 서울시 자치구들은 집중호우 예방을 위해 어떤 정책을 펼치고 있을까. 집중호우가 6개월 전 쏟아졌고, 5개월 후면 또다시 물폭탄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수해를 겪었던 서울시는 반지하 제로를 선언했다.[사진=뉴시스]
수해를 겪었던 서울시는 반지하 제로를 선언했다.[사진=뉴시스]

​​​​​​2022년 8월 서울시는 ‘반지하 제로’를 선언했다. 8월 8일 내린 집중호우에서 기인한 피해를 예방하겠다면서 내건 슬로건이었다. 이 기간 내린 비로 서울 반지하 주택 수만호에 물이 들이닥쳤다. 재산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목숨을 잃은 사람들까지 있었다.

2021년 기준 20만3000호에 이르는 ‘반지하 주택’을 없애겠다면서 서울시가 내건 정책은 ‘이사’와 ‘재건축’이었다. 이사 방식은 두가지다. 지상층으로 이사했을 때 월 임대료 20만원을 2년간 지원하는 반지하 바우처다. 다른 하나는 반지하 거주 가구를 위해 공공임대 주택을 제공하는 거다.

그럼 두 대책의 성과를 하나씩 살펴보자. ‘반지하 바우처’ 제공 정책은 2022년 12월에야 돛을 올렸다. 바우처를 지급한 지 2개월이 갓 넘은 상황에서 정책 효과를 따지기엔 아직 이르다. 반지하 주택 ‘재건축’ 역시 이주ㆍ철거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실질적으로 효과를 내기 어렵다. 반지하 주택 거주자가 재해를 피할 수 있는 이주ㆍ철거는 통상 사업 시작 후 3~4년씩 걸린다.

이런 맥락에서 집중호우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단기대책이 필요한 때다. 다시 집중호우가 시작되는 기간인 8월까지 5개월 남짓 남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시점에선 초기 대책쯤은 마련돼 있어야 한다. 지난해 침수 피해가 컸던 곳들은 대비를 마쳤을까. 2022년 여름 호우 피해를 크게 입었던 지역 중 한곳인 관악구를 가봤다.

2월 27일 관악구 신림동 골목길에 들어섰다. 청록색의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든 수해 방지 차수막들이 반지하 주택 창문 앞에 설치된 모습이 보였다. 일부 반지하 주택에는 구청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설치한 차수막들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런 차수막들이 지난해 집중호우 이후 설치된 건 아니었다. 포털 로드맵의 과거 사진들과 비교해보니, 신림동 골목길에 있는 대부분의 차수막은 2022년 8월 이전에 설치된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관악구가 2022년 호우 이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신림동 골목길 2층 단독주택 앞에서 지팡이를 짚고 골목길을 쓸고 있던 한 주민을 만났다. 지난해 집중호우 이후의 상황을 묻자 70대 주민은 “여름에 비가 많이 왔지만 큰 피해를 당하지는 않았었다”며 “그 이후에 공무원들이 나와서 차수막을 지하실 앞에 설치하고 갔다”고 설명했다. 주택 마당 안쪽으로 들어가니 골목에서 봤던 다른 반지하 주택처럼 차수막이 설치돼 있었다.

[사진 | 더스쿠프 포토, 자료 | 각 자치구 기금운용계획서, 참고 | 반지하 주택 수는 2021년 기준]
[사진 | 더스쿠프 포토, 자료 | 각 자치구 기금운용계획서, 참고 | 반지하 주택 수는 2021년 기준]

2023년 여름 또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집중호우 대응책은 차수막이 전부가 아니다. 관악구는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가장 많은 재난관리기금을 반지하 주택의 침수설비를 마련하는 데 투입했다. 반지하 주택의 침수 예방에 가장 적극적이라는 거다.

관악구청에 따르면 2022년 침수된 반지하 주택은 4816호, 상가는 2040호다. 구청은 지난해부터 반지하에 물이 밀려들어 올 때 열고 나갈 수 있는 ‘개폐형 방범창’과 ‘역류방지시설(역지변ㆍ체크밸브)’ 설치를 계획했다.

2022년 10~12월에 침수 피해가 있었던 반지하 주택 중 장애인 거주자가 있는 주택 22가구(총 83가구 중 26.5%)에 개폐형 방범창을 설치했다. 올해 6월까지는 안전 취약계층이 거주하는 침수 피해 1000가구 중 600가구에 개폐형 방범창을 추가 설치한다.

올해 12월까지는 침수방지시설(역류방지시설)도 설치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관악구는 재난관리기금의 대부분을 투입하기로 했다. 재해ㆍ재난관리를 위한 재난관리기금 38억8400만원 중 ‘지하주택침수방지역지변설치’ 사업에 34억5200만원(비중 88.9%)을 사용한다.

관악구는 여기에 같은 규모의 서울시 재난지원기금 지원을 요청해 총 69억400만원어치의 역류방지시설을 설치한다. 대상은 침수 피해 가구의 70%다. 반지하 주택 3372호, 상가 1428호다. 1호당 100만원 정도 쓰는 셈이다.

관악구처럼 재난관리기금을 반지하 침수 피해 예방에 적용한 경우는 얼마나 될까. 일단 반지하 주택의 규모부터 살펴보자. 반지하 주택은 관악구에 1만6265호가 몰려있고 강북구(1만4121호), 중랑구(1만2793호), 성북구(1만2604호), 은평구(1만2499호), 광진구(1만1165호), 동작구(1만553호)에도 각각 1만호가 넘게 있다. 이중 관악구처럼 지하주택 침수방지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별도로 기금을 운용하는 자치구(반지하 주택 1만호 이상)는 6곳 중 3곳이었다.

중랑구는 재난관리기금 7억6098만원 중 39.4%인 3억원을 지하주택 침수방지시설(차수판ㆍ체크밸브 설치)에 투입하기로 했다. 광진구는 역시 재난관리기금 21억8800만원 중 13.7%인 3억원을 저지대 지하주택 침수방지시설 설치에 투입한다. 동작구도 같은 명목으로 11억2249만원 중 1억원(8.9%)을 사용할 계획을 세웠다.

강북구, 은평구, 성북구는 별도로 지하주택만을 위한 기금을 설정하지는 않았다. 대신 재난 대응 복구를 위한 기금을 큰 규모로 설정하거나 구 예산 내에서 지하주택 관련 사업을 계획했다.

강북구는 재난관리기금 14억8000만원 중 49.3%인 7억3000만원을 전방위적 재난 대응 복구에 투입하고 은평구 역시 같은 명목으로 10억1500만원 중 2억원(19.7%)을 편성했다. 기금이 아닌 예산 내에서는 희망집수리 상업으로 총 9000만원, 구 예산으로 추진하는 침수방지시설은 3억2000만원까지 투입한다.

성북구도 다른 2개 구와 마찬가지로 15억2233만원의 기금 중 3억원(19.7%)은 재난 대응 복구에 편성했다. 대신 구 예산으로 8억원을 투입해 하수관 개량 공사에 나서기로 했다.

5개월 후에 다시 비는 쏟아질 거다. 준비할 기간이 5개월은 더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여유 시간이 많이 남은 것도 아니다. 집중호우를 막기 위한 대비책은 골든타임을 넘기지 않을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