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드라마 연상되는 경영권 분쟁
행동주의펀드 얼라인이 쏜 신호탄
지배구조 개선 과정서 불거진 분쟁
각 진영간 비방과 폭로전 이어져
소송, 금감원 진정 등 분쟁 잇따라
법원, 카카오 SM 지분 취득에 제동
주총 앞두고 소액주주 설득에 총력

행동주의펀드 얼라인이 띄운 SM엔터테인먼트(SM엔터)를 둘러싼 낯 뜨거운 경영권 싸움이 치열합니다. 전현직 경영진과 인수희망기업이 얽혀 이전투구를 벌이느라 정신이 없죠. 여기에 최근 법원이 카카오의 SM엔터 지분 취득에 제동을 걸면서 분쟁은 더욱 혼전 양상을 띠게 됐습니다. 흥미로운 건 SM엔터 경영권 분쟁을 통해 행동주의펀드의 역할과 한계를 짚어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럼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SM엔터 경영권 분쟁의 현장으로 들어가 보시죠.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는 하이브에 보유 지분을 매각했다.[사진=연합뉴스]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는 하이브에 보유 지분을 매각했다.[사진=연합뉴스]

요즘 주식시장에 SM엔터만큼 뜨거운 회사가 있을까요. 하루가 멀다고 새로운 소식과 자료가 쏟아지는 데다, ‘처조카의 반란’ 같은 자극적인 키워드도 나옵니다. 이야기의 개연성이야 어떻든 경영권만 틀어쥐면 된다는 식의 막장 드라마가 연상됩니다. 

그런데 SM엔터를 유명 연예기획사로만 알고 있는 우리가 보기엔 그 내용이 퍽 복잡합니다. 끝맺음 없이 쟁점만 늘어나는 SM엔터 분쟁 드라마의 핵심을 천천히 들여다볼까요. 

■ 역대급 캐스팅의 드라마 = 일단 화려한 캐스팅이 눈길을 끕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플레이어가 전선에 참여했습니다. 먼저 SM엔터의 창업주이자 상징으로 꼽히는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PD)가 전면에 등장해 있습니다. 이수만 전 PD의 처조카이자 현 SM엔터의 핵심 경영진인 이성수 공동대표의 이름도 엿보입니다. 

최고의 K-팝 아티스트인 ‘BTS’와 역대급 신인 아티스트인 ‘뉴진스’를 보유한 하이브와 한국을 대표하는 빅테크업체 카카오도 주연급 배우입니다. 영화였다면 ‘1000만 관객 동원’, 드라마였다면 ‘시청률 대박’을 보증할 만한 출연진이죠.

이들은 하나같이 SM엔터의 경영권을 갖기 위한 욕망으로 똘똘 뭉쳐 있습니다. 배우는 여럿인데, 구도는 ‘하이브+이수만 전 PD’ 대 ‘SM엔터 현 경영진+카카오’로 간단합니다. 하이브는 이수만 전 PD의 SM엔터 지분 일부를 사들였습니다. SM엔터 경영진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 형태로 카카오에 SM엔터 지분을 넘기는 걸 결정했습니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는 기존 주주가 아닌 특정인을 콕 집어서 신주를 판매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요약하면 ‘하이브 진영’ 대 ‘SM엔터 진영’의 싸움인 거죠. 흥미로운 건 이 극엔 전개를 주도하는 신스틸러가 따로 있다는 점입니다. 이수만과 하이브, 카카오처럼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이가 아닙니다. 바로 SM엔터 지분 1% 안팎을 보유한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얼라인)입니다. 

얼라인은 드라마 초반의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이며 극의 시작을 열었습니다. 지난해 2월 SM엔터 측을 상대로 이런 내용의 주주제안서를 발송하면서였죠. “SM엔터는 K-팝 산업의 선구자로 전세계 한류 열풍을 이끌며 뛰어난 사업성과를 창출하고 있지만 지배구조 측면에서 주식시장에서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당시 SM엔터는 업계 1위로 꼽히는 업체인데도 기업가치는 변변치 않았습니다. 실적과 업력은 SM엔터를 따라갈 곳이 없었지만, 엔터테인먼트 업계 대장주 타이틀은 시총이 11조원에 육박하던 하이브가 꿰차고 있었습니다. SM의 시총은 1조원 안팎으로 하이브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했죠. 이는 연간 매출 규모가 절반에도 못 미치는 JYP엔터테인먼트와 비슷한 규모였습니다. 

경영권 분쟁 이슈가 불거지면서 SM엔터의 주가가 요동쳤다.[사진=연합뉴스]
경영권 분쟁 이슈가 불거지면서 SM엔터의 주가가 요동쳤다.[사진=연합뉴스]

얼라인은 “전문성 있는 감사를 선임하면 저평가 현상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새 감사 후보를 추천했습니다. 재계에서 재무관리 전문가로 꼽히는 곽준호 감사후보였습니다. 곽 감사후보는 지난해 3월 열린 SM엔터 주총에서 감사로 선임됐습니다. 주총 표 대결에서 얼라인 측이 승리한 결과였죠. 

이후 얼라인은 압박의 수위를 높였습니다. 특히 SM엔터의 주가 리스크로 꼽히던 ‘라이크기획’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죠. 이쯤에선 ‘라이크기획’의 실체가 궁금하시겠군요. SM엔터는 1990년대 후반부터 라이크기획이란 회사와 프로듀싱 자문 용역계약을 맺고 매출의 일부분을 떼줬습니다. 규모는 매년 수백억원에 달했죠.

문제는 이 라이크기획이 이수만 전 PD의 개인회사라는 점이었습니다. SM엔터가 그간 이 전 총괄의 주머니를 채우느라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게 얼라인의 비판이었습니다. 

급기야 얼라인은 지난해 8월 라이크기획 관련 거래 문제를 해결하라며 SM엔터 이사회를 타깃으로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으름장을 놨습니다. 궁지에 몰린 SM엔터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올해 초  ‘SM 3.0’이란 새로운 경영전략을 발표했는데, 주요 내용은 멀티 프로듀싱 도입과 이사회 개편이었습니다. 라이크기획과의 계약 종료도 선언했습니다. 그간 SM엔터의 프로듀싱을 도맡았던 이수만 전 PD의 회사 내 영향력을 대폭 축소하는 계획이었죠. 

여기서 ‘SM엔터 이사회가 이수만 전 PD와 대척점에 섰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앞서 언급했던 분쟁 구도가 완성됐습니다. SM엔터 이사회는 ‘SM 3.0’을 전개할 파트너로 카카오를 낙점했고, 이수만 전 PD는 백기사로 하이브를 끌어들인 결과였습니다. 

이처럼 신스틸러 얼라인의 활약은 대단했습니다. 적은 지분으로 SM엔터를 흔들고 경영권 분쟁극을 만들어냈습니다. 그사이 SM엔터의 주가는 승승장구했습니다. 올해 들어서 66.88%(3월 2일 기준) 상승했습니다.

통상 경영권 분쟁 이슈는 주가에 호재로 작용합니다. 왜 싸우는데 주가가 오르냐고요? 답은 간단합니다. 경영권을 확보하는 건 누가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하느냐의 싸움입니다. 그사이 인수 희망 기업의 매수 물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기업가치도 재평가될 공산이 커집니다. 

■ 해피엔딩 어려운 드라마 = 그럼 이 드라마는 회사와 주주가 함께 웃는 해피엔딩으로 끝날까요? 글쎄요, 지금까진 해피엔딩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하이브+이수만 전 PD’ 대 ‘SM엔터 현 경영진+카카오’의 싸움이 지나치게 격화한 탓입니다. 2월 마지막주 들어 SM엔터의 주가 상승세가 한풀 꺾인 건 이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더 큰 문제는 양측의 다툼이 더 격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양측은 폭로와 비방을 이어가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SM엔터 이성수 공동대표가 이수만 전 PD의 역외탈세 의혹을 제기함과 동시에 ‘나무심기’ 캠페인과 관련한 부동산 사업 의혹을 폭로한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수만 전 PD 역시 앉은자리에서 당하진 않았습니다. 지난 2월 8일 SM엔터를 상대로 카카오에 3자 유상증자와 전환사채를 발행하지 말라는 취지의 가처분 신청을 하면서 맞불을 놨습니다. 현재 SM엔터가 경영권 분쟁 상태인 만큼 3자 유상증자는 위법이라는 겁니다.

지난 3일 법원은 이수만 전 PD의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그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법원은 “이 사건의 신주와 전환사채가 발행될 경우 이수만 전 PD가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을 우려가 있어 보인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로써 카카오로선 SM엔터 지분을 취득하는 게 어려워졌습니다. 

하이브도 공세에 합세했습니다. ‘SM 3.0’을 실현하려는 SM엔터의 현 경영진은 카카오와 전략적 사업협력 계약을 맺었는데, 하이브는 이를 두고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계약”이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습니다. 계약에 따르면 카카오는 SM엔터가 추가로 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할 경우 신주를 우선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습니다. 특정 주주에만 우선권을 부여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게 하이브의 지적입니다. 

그러자 이번엔 카카오가 응대했습니다. 카카오는 “하이브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전제한 뒤 “계약서의 일부 문구를 자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왜곡해 불필요한 혼란을 야기한 하이브 측에 유감을 표한다”면서 대립각을 세웠습니다.

카카오가 SM엔터의 국내 음반 및 음원 유통 권리를 이어받는 것을 두고도 두 진영은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습니다. 카카오는 “3사(카카오ㆍ카카오엔터ㆍSM엔터)가 보유한 사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수평적 시너지를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하이브는 “SM엔터 아티스트의 권리를 제약하며 구성원의 미래를 유한하게 만드는 계약”이라면서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반박과 재반박이 하루에도 수건씩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두 진영은 ‘서로 다른 미래 청사진’을 두고도 옥신각신합니다. 모두 SM엔터의 성장을 회사의 미래 전략으로 주주를 설득하고 있지만, 그 방향이 완전히 반대입니다. 하이브의 핵심 키워드는 글로벌입니다. 하이브는 북미 시장에서 존재감이 뚜렷하고, SM엔터는 아시아 시장에서의 영향력이 상당합니다. 두 회사가 손을 잡으면 양사 모두 글로벌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게 하이브의 주장입니다. 

박지원 하이브 대표가 “하이브와 SM엔터가 힘을 합쳐 세계 3대 메이저 음악회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고의 기업을 만들어 보자”고 선언한 배경입니다. 반면 카카오는 ‘플랫폼 시너지’를 강조합니다. 카카오의 국내외 플랫폼 네트워크, 음원 유통 역량과 노하우를 더하면 SM엔터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거죠. 

여기에 인공지능(AI), 메타버스 등 카카오가 보유한 고도의 IT 기술 지원도 기대할 만합니다. SM엔터 측은 “SM은 카카오가 보유한 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K-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어떤 사업을 해야 더 돈을 많이 벌지를 둘러싼 생각은 각자가 다른 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분쟁이 장기화하면 두 진영의 미래 전략도 당분간 표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복잡한 드라마의 결말은 SM엔터의 주주총회가 열리는 3월 31일에 방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양측은 서로에게 유리한 정관 변경과 이사ㆍ감사 선임을 총회 안건으로 제시해 놨습니다. 결국 SM엔터 주식의 70%가량을 거머쥔 소액주주를 누가 얼마나 설득하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겁니다. 

SM엔터를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SM엔터를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안타까운 건 이 드라마가 ‘시즌제’로 전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주총이 끝나고 분쟁의 추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더라도 소송전과 여론전이 펼쳐질 공산이 큽니다. 트렌드가 급변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상황을 고려하면 분쟁 상태가 계속되는 게 SM엔터에 도움이 될 리 없습니다. 

SM엔터의 기업가치 상승을 노리는 신스틸러 얼라인의 취지도 무색해지는 셈이죠. SM엔터의 성장을 기대하는 주주들도, K-팝을 사랑하는 팬들도 그때쯤이면 이 막장극에 마침표가 찍히길 바랄지 모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 ‘누굴 위한 싸움’이냐는 비판이 거세질 게 뻔할 테니까요. 우리도 3월 31일 이 드라마의 함의를 한번 더 리뷰해볼 생각입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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